▲ 자료사진. 청와대

지난해 '최저임금 1만원' 공약 포기선언을 한 정부가 최저임금 제도개편에 나섰다. 정부는 최저임금위원회를 '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로 이원화하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방침이다. 2월 임시국회 처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 바뀐 결정구조에서 내년 최저임금을 정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안은 전문가로만 구성된 구간설정위원회가 경제상황을 고려해 최저임금 인상 폭 상·하한선을 정하고 노사는 공익위원이 제시한 가이드라인 범위에서 논의하라는 취지다. 노사 교섭 대신 정부에 최저임금 결정권한을 쥐어주라는 재계의 오랜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노동계는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하면서 노사 자율성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최저임금 결정구조 이원화, 정부 입김 더 세지나=6일 정부에 따르면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 초안'을 7일 발표한다. 정부는 초안을 바탕으로 전문가 토론회와 노사 의견수렴, 대국민 공개토론회 같은 공론화 과정을 거쳐 이달 중 최종안을 확정한다. 2월 임시국회 일정에 맞춰 법안을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지난 4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열린 '2019년 1차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4차 경제활력대책회의'에서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공론화 계획(안)'을 논의하면서 이 같은 밑그림을 밝혔다.

정부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안의 핵심은 최저임금 결정구조 이원화다. 노사정이 각각 추천한 전문가로 구성된 '구간설정위원회'가 최저임금 인상 폭의 상·하한선을 먼저 설정하고, 노·사·공익위원으로 구성된 '결정위원회'가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현재 최저임금 결정구조는 국제기준에 따라 사회적 교섭에 초점을 두고 있다. 노·사·공익위원 각 9명씩으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에서 노사가 각각 요구안을 제출하고 이를 토대로 논의를 시작한다. 노사 간 이견이 끝내 좁혀지지 않으면 공익위원이 노사 요구안에 근거해 '심의촉진구간'을 설정하고, 표결로 결정한다. 현행 방식은 심의 과정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는 공익위원을 정부가 추천하기 때문에 정부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이원화 방식은 정부 개입력을 더 높인다. 구간설정 단계부터 정부 추천위원이 참여하고 구간설정위원들 간 의결합의에 실패했을 때 정부 추천 위원이 심의구간을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 사실상 정부가 정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최저임금 인상 폭이 결정될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 결정시 경기와 고용 등 '경제적 상황'을 고려하겠다는 게 정부 방침인 만큼 인상폭 상·하한선이 보수적으로 정해질 여지가 크다.

재계 주장도 다르지 않다. 한국경총은 2007년 '최저임금 결정방식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에서 최저임금위가 아닌 정부가 최저임금을 직접 결정하거나 최저임금 결정구조를 공익위원이 안을 제시해 결정하는 방식으로 개선하자고 요구했고,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까지 '답정너'?=정부는 설정된 구간 내에서 최저임금을 최종 결정하는 결정위원회 위원에 청년·여성·비정규직, 중소기업·소상공인 대표 등이 포함하도록 법률에 명문화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양대 노총과 경제단체들이 갖고 있는 위원추천 몫을 축소하고, 청년·여성·비정규직, 중소기업·소상공인으로 위원 구성을 다변화하겠다는 얘기다.

문제는 대표성이다. 최저임금법은 "근로자위원은 총연합단체인 노동조합에서 추천한 사람 중에서 제청하고, 사용자위원은 전국적 규모의 사용자단체 중 고용노동부장관이 지정하는 단체에서 추천한 사람 중에서 제청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금도 청년이나 비정규직은 양대 노총이, 소상공인은 경총이 추천하는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정부가 어떤 기준과 근거로 청년·여성·비정규직 대표를 선정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정부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방안에 반발했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부터 최저임금제도 개편까지 노동계를 배제한 채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해)' 식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지난 4일 성명을 내고 "정부가 노동과 밀접한 제도 개편을 추진하면서 당사자와 충분한 사전협의 절차 없이 언론에 설익은 계획을 터뜨려 답을 정해 놓은 뒤 타협을 요구하고 있다"며 "최저임금위를 소집해 노사 당사자와 충분한 사전협의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노총도 같은날 "전문가들이 미리 구간을 설정하는 것은 노사 자율성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라며 "노·사·공익위원은 사실상 거수기로 전락하고 만다"고 우려했다. 양대 노총은 9일 최저임금위 노동자위원 워크숍을 열고 대응방안을 논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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