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자은 기자
새해를 맞아 한 살씩 나이를 먹었지만 한 달 전 일터에서 목숨을 잃은 청년 비정규 노동자 고 김용균씨는 스물다섯 살이 되지 못했다. 새해 첫 주말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 다시 촛불을 들었다. 지난해 12월27일 국회를 통과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시행되더라도 발전소에서 일하는 하청노동자들의 안전은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촛불추모제에 참석한 시민들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를 위해 갈 길이 멀다"고 입을 모았다.

◇"김용균법이라 이름 붙이기 부끄러운 법"=태안 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 고 김용균씨를 기억하는 3차 범국민 추모제가 지난 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렸다.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가 주최했다. 최영준 시민대책위 공동집행위원장은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통과됐다고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말하지만 김용균법이라고 이름 붙이기에 낯부끄러운 법”이라며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돼도 발전 비정규 노동자 현실은 달라질 게 없다”고 비판했다. 지난달 27일 국회를 통과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은 도급금지 대상을 화학물질을 다루는 일부 작업에 국한하고 있다. 화력발전소가 고인이 했던 작업을 계속해서 하청에 맡길 수 있다는 얘기다.

시민대책위 공동집행위원장인 한인임 일과건강 사무처장은 2016년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 김군 사망 이후 구성된 진상조사단 위원으로 활동한 경험을 털어놓았다. 그는 "기업들이 위험업무를 외주화하기도 하지만 정규직이 하면 위험하지 않을 일을 외주화해서 위험해지는 측면이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며 "진상조사단이 권고한 100여개 조항을 서울시가 해결의지를 갖고 현재까지 이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의역 사고로 희생된 김군의 동료 박창수씨는 이날 무대에 올라 사고 이후 변화한 현장을 이야기했다. 당시 외주업체에 맡겼던 지하철 스크린도어 수리업무를 진상조사단 권고에 따라 서울시는 원청이 직접 운영하도록 했다. 박씨는 “고 김용균님의 비보를 들었을 때 김군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교통공사에 직접고용 정규직으로 전환된 뒤 2인1조 수칙이 무조건 지켜지고 위험작업을 거부할 권한도 주어졌다”며 “외주업체가 담당했더라면 이런 변화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주간에 하기 위험한 수리작업은 운행 종료 후 작업을 할 수 있게 됐다. 원·하청 구조가 유지됐더라면 하청업체가 원청에 요구하기조차 힘든 사안이다. 박씨는 “태안 화력발전소 1~8호기 하청노동자들은 작업을 거부할 수 없을 것”이라며 “목숨을 담보로 일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으려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상조사단 꾸려 기업처벌법 만들자"=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는 “아직도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에서는 용균이의 잘못으로 사고가 났다고 주장한다”며 “진상규명을 제대로 해서 책임자들이 최대한 강력한 처벌을 받게 하고 싶다”고 호소했다. 김씨는 “지금 나서지 않으면 우리 후세들도 처참하게 일하다 죽어 갈 수밖에 없다”며 “기업을 단죄할 수 있는 처벌법을 만들어 다시는 인간 생명을 함부로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시민대책위는 현재 정부와 진상조사단 구성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촛불추모제 참가자들은 청와대 앞까지 행진한 뒤 마무리 집회를 열었다. 고인의 동료 고일수 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기술지부 여수지회장은 “비정규직 당사자인 우리가 직접 나서 투쟁해야 한다”며 “유가족 원한을 풀 수 있도록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다짐했다. 고 지회장은 고 김용균씨 어머니에게 큰절을 하고 안아 드렸다

시민대책위는 12일 전국 16개 지역에서 촛불추모제를 연다. 19일에는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 이어 대규모 추모제를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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