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 행정이 뒷걸음질하고 있다. 노동시간이나 최저임금 위반에 대한 처벌유예 조치로 비판받고 있는 가운데 정권 초기 추진했던 근로감독 기조마저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업무보고 뒤 시행 안 해 … 노동부 “검토만 했다”

6일 노동부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회의 자료에 따르면 김영주 전 장관 시절 계획했던 근로감독 실효성 강화 방안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은 채 사실상 폐기됐다. 노동부는 지난해 1월 국무총리에게 새해 업무보고를 하면서 근로감독행정 혁신방안을 발표했다. 핵심 내용은 사전 예방감독과 근로감독 실효성, 근로감독관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다.

노동부는 근로감독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노동법 위반시 현행 ‘시정지시’ 중심에서 ‘사법처리 원칙’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근로감독에서 사용자 위법행위가 적발될 경우 곧바로 사법처리하지 않는다. 위법행위 정도에 따라 2주나 한 달 기간을 두고 시정명령을 한다. 그러고도 시정이 되지 않으면 사법처리 절차를 밟는다. 위법행위가 심하거나 악의적이면 시정명령 없이 곧바로 사법처리하는 사례도 드물게 있다.

시정명령을 먼저 하는 것은 피해 노동자 구제에 무게를 두기 때문이다. 사법처리를 하면 사용자는 처벌받아도 노동자들이 받은 피해를 원상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단점이 있다.

반면 시정명령을 먼저 하는 것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사법처리를 피한 사용자들의 위법행위가 줄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을 포함해 노동관계법에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는 근거도 없어 노동부는 근로감독관 집무규정에 따라 시정명령을 하고 있다.

노동부가 지난해 1월 업무보고에서 사법처리 원칙을 강조한 배경이다.

그런데 노동부는 업무보고 내용을 시행조차 하지 않았다. 이재갑 노동부 장관은 후보자 시절이던 지난해 9월 국회 환노위에 제출한 인사청문회 서면답변에서 “노동자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근로감독 실효성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검토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노동시간단축 관련 근로기준법 위반 처벌을 6개월 유예한 것은 노동부 업무보고 내용에 반한다”는 지적에 내놓은 답변이었다.

노동부 관계자는 <매일노동뉴스> 통화에서 “노동관계법 위반에 대해 엄격한 조치를 하기 위해 업무보고를 하면서 검토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업무보고 내용에 포함됐지만 검토만 했을 뿐, 결정한 적도 없고 시행도 안 했다는 얘기다.

국무총리에게 업무보고를 하고 언론에도 발표했는데 검토만 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단축에 대한 재계 반발에 떠밀려 방침을 바꾼 것으로 풀이된다.

시정기회 중복 부여 … 근로감독관 왜 늘렸나

이재갑 장관은 지난달 근로감독관들에게 “사업주 분들의 경영상황과 고용지표가 호전되기 쉽지 않은 점을 고려해 노동관계법 위반사항에 대해 적발 중심으로 추진돼 온 근로감독을 내년에는 자율시정 중심으로 실시해 주길 바란다”고 지시했다. 전체 감독건수 2만5천건 중 2만여건에 이르는 정기감독의 경우 1~2개월 전에 통보해 자율시정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근로감독관 집무규정에 명시된 열흘의 계도기간보다 대폭 늘렸다.

불시근로감독을 원칙으로 하라는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 권고와 충돌한다. 근로감독에서 위법사실을 적발하고도 대부분 시정명령만 내리고 있는데 또 시정기회를 주는 것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시정기회를 중복해서 주는 것이 아니라 사업주들이 자체적으로 점검해서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정권 초기 세웠던 근로감독행정 혁신이 후퇴하고 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근로감독관을 대폭 늘린 취지도 무색해졌다. 정부는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근로감독관 765명을 충원했고 올해는 413명을 추가 증원한다.

고용노동행정개혁위에서 활동했던 이종수 공인노무사(법무법인 화평)는 “노동부의 근로감독 방침이 경제사정을 이유로 오락가락하고 있다”며 “최저임금 인상이나 어렵게 도입한 노동시간단축,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같은 노동개혁 정책을 후퇴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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