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연민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 <살아남은 자의 슬픔>

한국서부발전 태안 화력발전소 하청업체 노동자 고 김용균씨가 일하다 죽었다. 어떤 기시감이 느껴진다. 불과 2년 반쯤 전 마찬가지로 일하다 죽은 서울교통공사(옛 서울메트로) 하청업체 노동자 고 김군의 사망이 반사적으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애도·추모·반성의 시간은 그것대로 흐르지만, 비슷한 사고는 반복된다. ‘김용균법’으로 명명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지난달 27일 저녁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슬프게도 우리는 개정법이 미래의 비슷한 사고를 원천차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다만 그런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하는 것이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다.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표현이 범람하고 있다. 유사품으로 ‘적폐청산’도 있다. 모든 정치적 구호는 얼마간 추상적이기 마련이지만 무엇이 ‘비정상’이고 ‘적폐’인지에 대해 모종의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 있는 것 같진 않다. 다만 두 노동자의 목숨을 앗아 간 근본 원인인 ‘위험의 외주화’가 비정상이나 적폐임은 확실하다고 말하고 싶다. 수익성 제고에 도움이 되는 핵심역량만을 직접고용으로 유지하고 수익과 무관한 그 밖의 영역들은 ‘털어’ 버리는, 이른바 ‘균열일터’에 대한 자본의 제어되지 않은 욕망이, 외주화된 영역에서 노동하는 노동자들의 목숨까지 ‘털어’ 버리는, 그러면서도 그에 대한 책임은 회피해 가는 결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노동의 과실은 취하되 그에 수반되는 위험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겠다는 행위는, 그것을 아무리 점잖게 이름 붙인들 정상일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지에 대한 기준이 요동하는 세상을 살고 있다.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지 끊임없이 소리 내어 외치지 않으면 어느 미래에는 직접고용이 생경하고 외주화가 정상으로 간주되는 세상이 돼 있을지 모른다. 또 어쩌면 현실은 이미 그런 미래를 닮아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모든 살아남은 자들은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일터에서의 삶과 죽음을 언제까지 운에 맡겨 둘 수는 없는 일이다. '운'의 자리에 '책임'이 들어서야 한다. '외주화' 자리에 '직접고용 정규직화'가 들어서야 한다. 그것이 그 무엇보다 시급한 노동에서의 비정상의 정상화이고 적폐청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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