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나영 기자
“방송제작 스태프들은 대부분 고용이 불안정한 비정규 노동자다 보니, 문제 인물로 공유되면 이 바닥에서 퇴출될 위험이 있어요.”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 커피숍에서 만난 김두영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장(49·사진)은 쉽지 않았던 지부 설립 과정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방송스태프지부는 지난해 7월 출범했다. 조명·장비·카메라·분장·작가 등 여러 분야 방송제작 스태프들이 하나의 노조로 뭉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루 20시간 넘는 초장시간 노동·턴키계약 같은 불합리한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먼저 나선 이들은 연차가 15년 이상 된 스태프들과 방송사 정규직이었다. 김두영 지부장은 “처음부터 노조를 설립하면 사측 방해가 있을까 봐 한국방송스태프협회를 먼저 만들어 준비한 뒤 지부를 출범했다”며 “처음 협회 창립 때부터 뜻을 모은 5인은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희생자가 되겠다는 각오로 뭉쳤다”고 설명했다.

희생 덕분일까. 지부 창립총회를 한 뒤 6일 만에 1천300명이 온라인으로 지부 가입 의향을 알려 왔다. 서면으로 가입신청서를 낸 사람도 현재 수백 명이다. 장시간 노동과 방송사나 제작사가 스태프와 개별 계약을 맺지 않고 감독급과 도급계약을 맺는 턴키계약 관행도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김두영 지부장은 “사측이 유연근로시간제를 이용해 여전히 장시간 노동을 이어 가기도 하지만, 익명으로 제보가 들어올 때마다 지부가 제작사·방송사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며 “턴키계약에서 개별 계약으로 바꾼 곳도 지금까지 8~9곳 정도 되고 계속 확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부는 올해 상반기까지 노동시간단축과 개별 근로계약 체결에 주력할 계획이다. 방송스태프 통계 만들기·표준근로계약서 의무화 요구 같은 활동도 한다.

김두영 지부장은 “노동시간단축과 개별 근로계약을 2019년 상반기쯤 정착하면 스태프의 절반 정도가 지부에 가입할 것으로 보인다”며 “지부 일부 임원이 일명 블랙리스트에 올라 업무에서 배제되고 있는 문제도 지부가 점차 힘을 키우면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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