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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부석 된 거리 위 노동자 2018년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장기투쟁 사업장 사태 계속, 새로운 노사갈등도 불거져 … "비정규직 양산·친자본 정책 있는 한 노동자 저항 안 끝나"
▲ 공무원노조 해직자들은 지난 8월부터 청와대 인근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최근 겨우살이를 위해 비닐 한 장을 덧대어 놨다.<매일노동뉴스 자료사진>

"지회장 딸이 있어요. 이제 고3 올라갑니다. 부모 손길이 많이 필요한 고1 때 농성을 시작했는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습니다. 며칠 전 농성장에 왔다가 조용히 돌아가더라고요. 아흔한 살 노모는 아프세요. 투쟁하는 사람의 가족 이야기는 하는 게 아닌데…." 김영만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장이 말끝을 흐렸다.

거리로 나온 노동자의 삶이 얼마나 힘겨운지는 지켜본 사람이면 안다.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 복직하기 위해서 시작한 투쟁이 장기화하면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만든다. 내 가족을 위해 시작한 싸움이건만 가족과 멀어지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김영만 지부장의 말처럼 투쟁하는 노동자에게 가족 얘기를 묻는 것은 이 바닥에서 금기다.

지난 28일 오후 김재주 지부 전북지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왜 무거운 짐을 계속 지려고 하냐"고 물었다. "전주시를 비롯해 전국 모든 지자체에서 택시 전액관리제를 정착시키기 위해 이번에 끝장을 봐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택시노동자 김재주 하늘살이 곧 500일
“위에서 끝장 보겠다”


1997년 개정된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여객자동차법)에 따라 택시회사는 전액관리제를 시행해야 한다. 택시 수입금은 모두 회사가 받아서 관리하고 택시기사들에게는 월급을 지급하는 제도다. 택시회사들은 소송에 돌입했다. 2007년 대법원이 택시 수입금 배분이나 노동조건은 노사 자율협의로 결정할 수 있다고 판결하면서 여객자동차법의 기능은 사실상 마비됐다. 생계비를 벌기 위해 택시기사들은 승차거부·불친절·난폭운전 원흉이라는 손가락질을 감내하며 오늘도 도로 위를 달린다.

김재주 지회장을 비롯한 택시지부 노동자들은 사납금제 폐지를 요구했다. 지난해 9월4일 김 지회장은 전주시를 상대로 전액관리제를 시행하지 않는 택시사업주를 처벌하라고 요구하며 전주시청 앞 조명탑에 올랐다.

오랜 투쟁은 조금씩 성과를 만들고 있다. 올해 8월 전주시는 관내 택시회사 21곳 중 전액관리제를 시행하지 않는 19곳에 1차 과태료 처분을 내렸다. 7곳만이 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냈다.

동료들은 성과를 내고 있으니 내려와서 싸우는 방안을 강구하자고 설득하고 있다. 김재주 지회장은 완강하게 거부한다.

"최근 국회와 정부에서도 사납금제의 폐단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공론화하기 위해 전주시 전체 기업이 사납금제를 폐지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요. 혹시 제가 포기해 버려서 사납금제 폐지와 전액관리제 도입이 물거품이 되면 어떻게 하나, 이런 압박이 생겼습니다. 여기서 끝끝내 버텨서 확약서를 다 받아 내야 다른 곳으로 확장할 기반이 만들어집니다. 이미 제 몸은 망가진 것 같아요. 내려가서 무슨 투쟁을 할 수 있겠습니까."

김 지회장은 동료들이 원하지 않을 답변을 기어이 꺼내고 만다.

노동자 투쟁에도 지역차별이 있는 것일까. 김재주 지회장의 고공농성은 31일로 484일째를 맞는다. 지난 25일 세계 최장기 고공농성 기록을 경신했다고 알려진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노동자들보다 69일 먼저 하늘에 올랐다. 1월16일이면 500일이 된다. 파인텍 노동자들은 최근 김재주 지회장과 지부쪽에 수차례 "미안하다"는 인사를 해 왔다. 파인텍 농성만 주목받고 있어 죄송하다고 했단다.

▲ 콜트·콜텍 해고노동자의 복직투쟁은 만 12년이 된다. 2017년 광화문 세종로공원에 차린 농성장은 올해도 그 자리를 지켰다.<매일노동뉴스 자료사진>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는 아직도 광화문에
청와대 농성장은 공무원노조 해직자들이


서울 광화문광장과 청와대 인근에서 노숙하는 노동자들의 풍경은 1년 전과 다르지 않다. 금속노조 하이디스지회 옛 농성장이 있던 청와대 앞에는 공무원노조가 다시 천막을 쳤다. 광화문 세종로 공원에 세워진 금속노조 콜트·콜텍지회 농성장은 아직도 그 자리에 있다.

한파주의보가 발효된 지난 27일. 비치파라솔 위로 비닐을 2장 겹쳐 놓은 공무원노조 농성장은 냉장고나 다름없었다. 비닐을 고정하는 용도로 사용하려 물을 채워 놓아둔 1.5리터 물병은 돌덩이처럼 변했다.

2002년 공무원노조 설립 후 노조활동을 하다 파면·해임된 공무원은 530명. 이 중 136명이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95명은 노무현 정부 당시인 14년 전 하루 연가투쟁에 참여했다가 해임됐다. 71명은 이후 대정부 투쟁을 하거나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는 등의 이유로 쫓겨났다.

14년의 복직투쟁 중 3명이 숨지고 25명은 정년퇴직 연령을 넘겼다. 올해 말이면 또 다른 4명의 조합원이 정년퇴직 나이를 넘긴다. 공무원노조는 정부가 해직기간의 경력·임금·연금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자 8월21일 천막을 세웠다. 정년퇴직자와 투병 중인 조합원 10여명을 빼고 해직자 80여명이 농성에 결합했다. 3개조를 꾸려 1주일씩 철야농성을 한다. 행정안전부 장관을 쫓아다니며 시위를 하고, 대통령비서실장 관사 앞에서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농성장에서 만난 김민호 노조 회복투 부위원장은 "관료들이 대통령의 눈과 귀를 막고 있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해직자 해결을 수차례 강조했는데도 노정 대화에서 징계취소와 원직복직을 불수용하고 있는 이유는 관료들의 저항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공무원노조 해직자 문제는 내년 1~2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더불어민주당은 당·정·청·노조·전문가 참여하는 논의기구를 만들어 1월 중 입법 방향을 잡겠다고 약속했다. 김민호 부위원장은 "해직기간 경력 인정과 원직복직이 가능한 법을 제정해야 한다"며 "해고노동자를 국가·사회가 책임지는 법이 탄생할 수 있도록 사명감을 가지고 투쟁하고 있다"고 말했다.

12년 투쟁 콜트·콜텍 사태, 교섭으로 해결책 찾을까

콜트악기와 콜텍 해고노동자들의 복직투쟁은 만 12년이 된다. 세계 시장의 30%를 점유하고 연간 100억원 이상 흑자를 내던 회사가 갑자기 폐업한 것이 2007년이다. 두 회사를 소유하고 있던 박영호 사장은 중국과 인도네시아에 공장을 세우고 일감을 넘겼다. 한순간에 길거리로 내몰린 콜트악기와 콜텍 노동자들이 100여명이나 됐다. 위장폐업이라고 반발했지만 법원은 '경영상 위기'라는 사용자의 주장을 수용했다. 복직투쟁을 시작할 때 동참했던 50여명은 2012년 7월께 8명으로 줄었다. 그중 4명이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시작하면서 이제 방종운·이인근·김경봉·임재천씨만 남았다. 방종운 금속노조 콜트악기지회장은 지난 7월2일부터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

대법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이 지난 5월 발표한 조사 결과에는 대법원과 박근혜 정권의 재판거래 의혹 사건 중 하나로 콜텍 재판이 언급됐다. 방 지회장은 "대법원은 콜텍 판결로 있지도 않은 미래 경영위기를 들먹이며 무차별 정리해고의 길을 터 줬다"고 비판했다. 그는 최근 급성 뇌경색으로 쓰러져 2주간 입원치료를 했다. 이달 중순 퇴원하자마자 농성을 재개했다.

서울 세종로공원 농성장을 중심으로 농성하고 있는 콜트악기 해고자들은 매일 똑같은 일과를 반복한다. 아침 청와대 인근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서울 강서구 콜텍 본사 앞에서 선전전을 한다. 화요일은 농성장에서 문화제를 개최한다. 최근 서울시 중부공원녹지사업소는 농성장에 퇴거를 요구하는 계고장을 부착했다. 이인근 콜텍지회장은 "종로구청과 경찰 관계자들이 쌀쌀하다"며 "문재인 정권이 노동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모습을 보이자 예민한 공무원들이 벌써 반응하는 것 같다"고 했다.

콜트·콜텍 정리해고 사태는 조심스러운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최근 사측과 지회가 이 문제로 교섭을 시작했다. 26일 상견례를 갖고 28일 교섭을 했다. 지회는 해고자 명예회복과 정리해고에 대한 공식사과를 요구안으로 제시했다. 회사는 모두 거부했다. 지회는 조만간 본사 앞에 농성장을 또 꾸린다.

▲ 조합원 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2013년 5월 시작한 세종호텔노조 목요집회는 5년이 넘었다. 지난 27일 올해 마지막 집회를 했다.<윤성광 사진작가>

복수노조 설립 후 촉발한 노사갈등
세종호텔노조 5년간 매주 목요집회


세종호텔노조 집회는 두 가지 면에서 유명하다. 2013년 5월부터 시작한 목요집회가 장기화하고 있다는 점과 먹을 것이 많다(?)는 점이다.

세종호텔에서는 2011년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설립이 허용된 뒤 노사갈등이 촉발했다. 같은해 노사교섭은 곧바로 결렬됐다. 이듬해 1월 노조가 파업을 하자 회사는 조합원들만 전보배치하거나 임금삭감·해고 같은 불이익을 줬다. 노조는 2013년 5월 부당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목요집회를 시작했다.

노조는 27일 오후 서울 명동 세종호텔 앞에서 올해 마지막 목요집회를 열었다. 체감온도 영하 20도. 노래로 연대하는 활동가 3명이 초대됐다. "손가락 얼어붙어서 기타 못 치겠다"는 항의도 잠시 "노래 빨리 부르고, 빨리 밥 먹겠다"며 신나게 줄을 튕긴다.

목요집회는 빨간색 입간판이 명물이다. 한쪽 면에는 '해고자 원직복직' '강제전보 철회' '성과연봉제 폐지' 같은 노조 요구사항을 분필로 적어 둔다. 다른 면에는 오늘의 메뉴가 있다. 김치전을 바로 부쳐 먹거나 두루치기를 하고, 치즈와 토마토를 얹은 샌드위치가 나오기도 한다. 특별한 날이면 와인도 등장한다. 이날은 치킨과 부대찌개, 동치미가 등장했다. 동치미 국물은 금세 살얼음이 생겼다. 참가자들은 "얼음 동치미와 치킨 조합이 묘하다"며 웃음꽃을 피운다. 웃프다. 언제쯤 명동 세종호텔 앞 빨간 입간판이 사라질까.

2018년 거리 위 노동자의 삶은 과거와 달라지지 않았다. 불법파견 판정까지 나왔지만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은 구미공장 앞 농성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이어 갔다. 매년 연말 하청업체 계약해지로 일자리를 잃는 한국지엠 비정규직도 어김없이 거리로 나오고 있다. 외국계 회사인 탓에 교섭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오라클 노동자들은 성실교섭을 요구하며 노조간부 파업을 하고 있다. 국립오페라합창단 노동자·학교비정규직 농성도 계속되고 있다.

촛불혁명을 했다는데 왜 그대로일까. 파인텍지회 노동자가 답을 내놨다. "정리해고법·파견법 같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법과 제도가 있는 한 거리 위 노동자는 없어지지 않을 겁니다. 자본가 편만 드는 정권·정치권이 있는 한 우리의 싸움도 계속되겠지요."

제정남  jjn@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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