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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도시 선덜랜드, 노동의 기억 저장하는 축구

영국의 동북부지역 항구 산업도시 선덜랜드. 얼핏 보기에는 높은 빌딩도 드물고 번화가도 없어 보이는, 그러나 광산과 철광 노동으로 다져진 근육질의 이 도시 성당에서 미사가 열린다. 사제와 신도들이 한목소리로 기도를 올린다.

“신앙의 공동체로 모인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선덜랜드 축구팀과 우리 도시를 위해 기도합시다.”

영국의 축구 문화와 선덜랜드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로서는 조금 우스꽝스럽게도 보인다. 그러나 그곳 주민들, 곧 선덜랜드 축구팀의 광적인 팬들의 표정은 그야말로 생애 최고의 엄숙한 순간처럼 보인다. 세계적인 온라인 영상서비스 매체인 ‘넷플릭스’를 통해 국내에 소개된 다큐멘터리 <죽어도 선덜랜드>의 초반부 장면이다.

이 지면에 연재를 시작하던 초기에, 그러니까 2015년 5월에 이미 선덜랜드의 축구 역사와 문화를 소개한 바 있지만, 그때만 해도 선덜랜드는 악착같이 1부 리그 즉 ‘프리미어리그’에서 버티고 있었다. 그러다가 2부 리그 ‘챔피언십’으로 강등됐고 급기야 3부 리그까지 추락했다. 참고로 잉글랜드에서 3부 리그의 공식 명칭은 역설적이게도 ‘리그원’이다.

아무튼 이렇게 날개도 없이 추락하는 선덜랜드의 상황을 그린 다큐멘터리가 <죽어도 선덜랜드>다. 그 시작 시점은 2017 시즌 시작 직전이다. 새 시즌을 앞두고 일종의 친선경기로 스코틀랜드리그 강호인 셀틱과 일합을 겨뤘는데 그만 0-5로 대패한다. 주전 미드필더는 술집에서 잔뜩 퍼마시며 ‘뒷담화’를 한다. 구단이 선수 확보를 위해 투자를 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고.

날개 없는 추락, 그래도 선덜랜드

이후에도 팀은 급전직하, 결국 3부 리그까지 추락한다. 축구감독이란 자리가 원래부터 ‘극한직업’이지만 그중에서도 최악은 바로 1부에서 3부까지 추락하는 팀의 감독이 아닐까 싶을 만큼 사이먼 그레이슨 감독의 위상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린다. 선수와 팬들의 여망에도 불구하고 구단주는 투자를 망설이다가 결국 철회한다.

만약 이 소재로 우리 식 ‘스포츠 영화’를 만든다면, 선수들이 일심동체로 하나가 되고 감독은 술을 끊고 기상천외한 작전을 구사하며 구단주도 흔쾌히 투자를 하는 한편 팬들은 다시 경기장으로 운집하는 식으로 전개되겠지만, 어쩌랴 선덜랜드가 직면한 상황은 판타지가 아니라 냉정한 현실인 것을.

다큐멘터리 <죽어도 선덜랜드>는 점점 더 비참해지는 상황에 내몰린 팀 상황과 그럼에도 “죽어도 선덜랜드”를 외치며 울부짖고 기도하고 박수하는 팬들을 보여 준다. 그것이 이 다큐멘터리의 힘이고 또한 선덜랜드의 힘이다.

2015년 5월에 썼듯이 선덜랜드는 17세기 이후 석탄산업을 발판으로 성장한 근대 산업혁명의 도시다. 그만큼 노동운동이 발달한 곳으로 영국 노동운동의 중요한 사건들의 주인공이자 목격자가 바로 선덜랜드다.

홈구장 이름은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Stadium of Light)’다. 97년 7월 신축 개장했다. 여기서 ‘라이트’는 탄광노동자들이 채탄할 때 반드시 필요한 작업용 랜턴의 빛을 말한다. 선덜랜드 유니폼에 새겨져 있는 엠블럼은 방패 모양인데, 그 방패 위쪽으로 채탄 작업용 운전차의 바퀴가 새겨져 있다. 경기장 또한 몽크웨어마우스 탄광지역의 채탄장 인근 부지에 들어섰다. 이러한 요소들은 선덜랜드가 노동자의 도시이며 두 세기에 걸쳐 전개된 힘겨운 노동과 위엄 있는 노동운동을 기억하는 곳임을 증명한다.

홈구장 상징조형물은 광산노동자 부부
힘겨운 노동과 위엄 있는 노동운동 기억


오후 3시 혹은 저녁에 경기가 열리는 축구장 특성상 거의 모든 축구장의 이른바 ‘본부석’은 서쪽 스탠드에 마련된다. 그 본부석 아래로 취재기자들 자리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오후 3시면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양팀 모두 강렬한 햇빛을 피해 경기를 할 수가 있고 이른바 본부석이나 취재석에서는 아예 해를 등지고 편하게 경기를 지켜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서쪽 출입문이 가장 중요한 게이트가 된다. 서울월드컵경기장 역시 서쪽 게이트를 통해 선수단·취재진 그리고 이른바 ‘귀빈’들이 들어온다. 이러한 조건 때문에 팀의 역사적인 감독이나 선수들 혹은 마스코트 같은 조형물 또한 서쪽에 건립하는 게 일반적이다. 선덜랜드의 홈구장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의 서쪽에도 조형물이 서 있다. 광산노동자 부부와 자식들이다.

이 점이 중요하다. 1879년에 창단한 선덜랜드, 영국 노동운동의 근거지에서, 거친 노동과 그에 흡사한 탄력 넘치는 축구를 해 온 이 도시는 자신들의 가장 중요한 장소인 축구장,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서쪽 게이트에 광산노동자 가족이 힘차게 팔을 펼치고 있는 모습을 세워 놓고 있다.

반면 우리는 경기장이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함축하고 있어서 그 자체로 문화적 장소가 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프로축구나 야구가 대략 30년 안팎의 역사를 써 왔으니, 이 양대 리그가 열리는 각 지역의 경기장이 최소한 한 세대 이상의 집합적 기억을 내장한 ‘문화적 장소’의 가치를 가질 법하지만, 현실은 안타깝다. 축구의 경우 2002년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대규모 축구 전용경기장을 지었으나 관중수 감소와 운영상 문제로 오히려 적절한 규모의 축구 전용경기장을 따로 만들어야 했다. 야구의 경우 오래돼 낙후한 시설과 안전 문제로 새 구장을 짓기도 했다.

지역 역사와 문화 없는 한국 축구경기장

옛 구장을 무조건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다. 낡은 시설은 철거할 수도 있다. 변화된 문화적 욕망에 따라 신축 개장도 해야 한다. 그러나 그 과정과 결과에서, 그 경기장의 부지·명칭·조형물 등이 그 도시의 역사와 문화적 기억을 제대로 살려 내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발전주의 도시 전략만을 채택했던 우리 도시에서, 힘겨운 삶을 이겨 낸 위엄 있는 노동의 기억이 그 어디에서도 제대로 보존되거나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이니, 경기장 안팎에서 그러한 삶의 기억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축구와 야구는 기본적으로 대규모 관중을 전제로 하는 야외 스포츠라는 특성 때문에 서울·부산·대구 같은 대도시나 인천·울산·창원·포항 같은 산업도시에서 전개되기 마련인데, 그 어느 곳에서도 그 지역의 삶의 기억, 노동의 기억이 한 줌이라도 재현되는 곳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우리 사회 전반이 노동의 기억을 애틋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선덜랜드는 각별하다. 비록 현재는 두 시즌 연속 강등돼 3부 리그까지 추락하는 바람에 그 어떤 악조건에서도 1부 리그 잔류만큼은 지켜 냈던 ‘생존왕’이란 명성에 금이 갔지만 그럼에도 그 도시의 역사, 그 역사적 장소, 그 장소의 기억을 보존하고 있는 위엄 있는 모습은 여전히 살아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빛의 경기장을 지키는 팬들의 숙연한 모습이 인상적인 8부작 다큐멘터리 <죽어도 선덜랜드>가 바로 그 증거다.

축구평론가 (prague@naver.com)

정윤수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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