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하거나 재밌거나 따뜻한 이야기는 주로 신문 뒤편 이러쿵저러쿵에서 다뤄지죠. <매일노동뉴스>에는 기사 본문에 미처 담지 못한 내용과 취재 뒷얘기까지 담아내는 이러쿵저러쿵 코너가 있습니다. 올해도 우리 사회는 바람 잘 날이 없었죠. 황당한 갑질사건은 끊이지 않았지만 차가워진 마음을 데워 줄 따뜻한 이야기도 준비돼 있습니다. 이러쿵저러쿵을 통해 올 한 해를 돌아봤습니다.

다 썩은 사과가 명절선물이라니

“쌍용자동차 해고자 복직 응원 현수막을 보내야 하는데 돈이 부족하니 이쪽으로 입금해 주세요.”

쌍용차 해고노동자 복직을 위한 노노사정 합의가 나온 뒤 여러 활동가들에게 이 같은 문자가 왔다고 합니다. 이 문자는 노조나 관계자가 보낸 게 아니랍니다. 사기 문자였던 거죠. 금속노조는 “현수막 보내기 행사는 하지 않으니 주의해 달라”고 당부했는데요. 해고노동자의 한을 풀어 줄 의미 있는 합의를 이용해 돈을 벌려는 사기꾼 등장에 많은 노동자들이 분노했습니다.

명절 선물로 썩은 사과를 받고 화가 많이 난 노동자들도 있습니다. 전북지역 KT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인데요. 지난 추석에 현장소장이 직원들에게 추석선물이라고 사과상자를 줬다고 하는데요. 상자를 열어 보니 까맣게 썩은 사과가 들어 있었다는 겁니다. 공공운수노조 KT상용직지부 관계자는 “우리가 가축도 아닌데 어떻게 썩은 과일을 줄 수 있느냐”며 “동료들이 모두 격분해서 사무실 앞에 상자를 다 버렸다”고 전했습니다.

교섭을 하지 않고 사라진 사장을 찾으러 자택 앞까지 찾아간 노동자들도 있습니다. 서창석 서울대병원장을 애타게 찾은 이들 얘기인데요. 파업을 하던 서울대병원 노동자들이 서창석 원장 자택으로 알려진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모처에서 집회를 열었습니다. 교섭을 통해 합의점을 찾아야 파업을 종료할 텐데 정작 병원장이 몇주 동안 교섭에 응하지 않고 병원에서도 보이지 않자 직접 찾아 나선 거라고 하는데요. 병원장을 보신 분은 노조 사무실로 제보해 달라는 현수막까지 달았다고 하네요.

이러쿵저러쿵에 자주 등장한 국회의원은?

오랫동안 민주노총 2청사로 불린 영등포 우성빌딩의 변신이 한동안 화제였습니다. 보건의료노조와 서비스연맹·화섬연맹 등 다수 민주노총 산별연맹 사무실이 입주해 민주노총 2청사라는 별칭으로 불렸는데요. 지난해 서비스연맹이 떠나고 화섬연맹과 보건의료노조도 올해 새로운 보금자리로 옮겼죠. 그런데 빈자리를 자유한국당이 채웠습니다. 자유한국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후원금과 정당보조금이 감소해 재정에 타격이 크다고 하는데요. 국회 앞보다 임대료가 저렴한 곳을 찾아 이전했다는 후문입니다.

올해 이러쿵저러쿵에 가장 많이 등장한 국회의원은 김성태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입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2월 말 평창동계올림픽 폐회식 참석차 방남하는 북한 인사들을 막기 위해 통일대교를 점거했는데요. 이후 시민·사회단체들이 교통방해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 혐의로 당시 원내대표였던 김 의원을 고소했습니다. 김 의원은 한국노총 노동절 마라톤대회에 참석했다가 조합원들에게 야유를 듣기도 했죠. 국회 본관 앞에서 단식농성을 하다 폭행을 당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7월에는 성소수자 혐오 발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죠. 정말 많은 사건·사고가 있었네요.

김 의원의 원내대표 임기가 지난 11일 종료됐는데요. 임기 종료 전날 노동계에 비난을 쏟아 냈습니다. 그는 “대기업 정규직 기득권노조 운동이 진정한 양극화 주범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부정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경찰 눈엔 특별한 인권이 있나

금속노조 쌍용차지부가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 서른 번째 희생자 김주중 조합원을 추모하기 위한 분향소를 세웠는데요. 보수단체 회원들이 폭력을 행사하며 분향소 설치를 방해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여러 시민들이 다쳐 응급실로 후송되기도 했는데요. 정작 그 자리에 있던 경찰들은 폭력을 행사한 현행범들을 체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분향소를 방문하자 경찰 태도가 바뀌었다고 하는데요. 표창원 의원의 목덜미를 잡은 남성을 바로 체포했다고 하네요. 노조는 “사람이 다치고 구급차가 와도 눈 하나 꿈쩍 않던 경찰의 태도가 달라졌다”며 “국회의원 인권만 특별한 인권이냐”고 일갈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9월 대우조선해양을 방문했는데요. 노동자들이 보안 때문에 출입통제를 받았다고 하는데요. 정규직은 유급휴가를 받은 반면 하청노동자들은 강제로 연차를 쓰도록 했다고 합니다. 금속노조 경남지부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는 “우리가 만든 잠수함 진수식에서 박수는 받지 못할망정 왜 죄인처럼 쫓겨나야 하느냐”고 울분을 토했습니다. 씁쓸해지네요.

롱패딩 입은 강제징용 노동자상

황당하고 화나는 소식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미담도 수차례 소개됐는데요. 강력한 한파가 찾아온 올해 1월 서울 용산역광장에 세워진 강제징용 노동자상에 누군가 따뜻한 롱패딩을 입혀 줬다고 합니다. 강제징용 노동자상은 일제강점기 국외로 끌려가 강제노역을 하다 돌아가신 조선인들을 기리기 위해 양대 노총이 세운 동상인데요. 이날 한국노총 간부들이 점퍼를 입히러 갔더니 이미 누군가 롱패딩을 입혀 놓은 것을 발견했다는 후문입니다. 올해도 따뜻한 옷을 입혀 줬을지 궁금하네요.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홍기탁·박준호 조합원이 올해 설날 떡국을 고공농성장에서 받았는데요. 설을 하루 앞두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과 문규현 신부가 방문해 덕담과 세뱃돈으로 두 조합원을 위로했다고 합니다. 두 어른이 응원하는 글귀를 직접 적고 복주머니에 세뱃돈을 넣어 굴뚝으로 올려 보냈다고 하는데요. 어서 노사 협상이 타결돼 땅에서 새해를 맞았으면 좋겠네요.

국내 최초 노동예능, 노동전문 팟캐스트 등장

양대 노총의 미디어부문 활약이 두드러졌습니다. 민주노총은 국민TV와 함께 노동상식을 전하는 예능프로그램 <정성호의 잡학다식>을 올해 5월 론칭했는데요. 유튜브 채널과 팟캐스트로 방송을 접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개그맨 정성호씨와 조혜진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 노조 활동가들이 출연해 노동현장의 현실과 해결책을 제시했습니다. 방송은 7월 12회까지 제작됐습니다.

한국노총은 올해 4월 노동전문 팟캐스트 <노발대발>을 시작했는데요. <매일노동뉴스> 연윤정 기자가 첫 회부터 참여해 입담을 뽐냈죠. 매주 방송이 공개돼 지난 21일 36회까지 업로드됐는데요. 시즌 1을 마무리하고 내년 시즌 2를 준비한다는 계획입니다. <노발대발>은 이달 7일 고려대 노동대학원 노동문화상 노동미디어부문 대상을 받았습니다.

한국노총은 이달 초 래퍼 마미손의 <소년점프>를 패러디한 <노동점프> 뮤직비디오를 홍보영상으로 제작해 큰 호응을 받았는데요. 노조 울타리 밖에 있는 노동자들이 노조를 편한 곳으로 느끼게 하려는 시도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 같네요. 내년에는 어떤 새로운 시도가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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