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어느 무명의 묘비처럼 영정은 그림과 이름 없이 빛났다. 하늘과 거기 흐르던 구름을 네모 틀에 품었다. 종종 그 앞에 선 사람들 온갖 꼴을 담았다. 거울이었다. 겨울, 국화가 얼었고 사람들은 울었다. 한 무리의 노동자들 팻말 들어 꼭 영정 같은 모습으로 그 앞에 줄줄이 섰다. 저마다의 모습으로 거울에 비쳤다. 거기 영정에 누가 들어도 놀라울 것 없었다고, 사람들은 일터를 증언했다. 내가 김용균이라고 눈 붉혀 말했다. 불 밝혀 먼저 간 이의 명복을 빌었다. 어두운 밤 찬바람 길을 촛불 밝혀 걸었다. 석탄처럼 검은 밤 홀로 일하다 떠난 청년이 비로소 외롭지 않았다. 컵라면 쌓여 배고프지 않았다. 죄 많은 엄마가 남아 꺽꺽 울었다. 생면부지, 그러나 닮은꼴 사람들을 안고 너는 살아남으라고 말했다. 그 이름 딴 산업안전보건법 전면개정안이 진통 끝에 살아남았다. 반짝이는 거울 앞에 서서야 제 눈의 들보를 본다. 비용과 효율을 앞세운 업보다. 그조차 무뎌지곤 했으니 구의역 스크린도어 고치던 청년은 태안화력 컨베이어벨트 살피던 하청노동자와 기어코 만났다. 이 겨울 또 한 번 영정을 거울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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