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관치(官治)금융은 없는 것인가. 은행 파업의 주요 쟁점인‘관치’에 대한 정부와 금융노조간 인식차가 너무 크다.

“관치금융 근절을 위해 특별법을 만들자”는 노조측 요구에 대해 정부는“관치는 없다”고 맞서면서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최대쟁점은 아닌지 몰라도 정부가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현실을 너무 모르는것이고, 절충점 찾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과거 거액 대출이나 금융기관 주요 임원인사 뒤에는 으례 정치권 실세나 정부 고위층이 있었다. 정치권에 줄 안대고 행장되기는 어려웠다.

이렇듯 돈과 자리, 이권청탁이 어우러진 검은 거래와 정경유착(政經癒着)은 금융권 부실로 이어졌고, 이로 인해 현재 수많은 금융계 종사자들이 죄없이 고통받는 결과를 초래했다. 새 정부 들어 이런 전통적 의미의 관치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특별법을 만들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변했다고 해서 정부가“국민의 정부 들어서는 관치가 없다”는 식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곤란하다. 방법과 강도는 다르지만 아직도‘전화·구두’요청은 여전하다고 금융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10조원 채권투자펀드도 정부가 거의 강제로 할당한 부분이 적잖았고, 아직도 정부 인사 말 한마디에 시장이 춤을 춘다. 인사(人事)는 또 어떤가.역대 어느 정권 못지않게 재경부·금감원·한은 출신들이 금융기관 경영진에 대거 포진해 있다.

은행이 파업하는데 정작 행장들은 뒷전이고 경제장관들이 직접 협상에 나서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상황이 이런데도 고위층이나 경제장관들이 계속“관치는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不倫)”이란 논리에 다름 아니다.

IMF이후 금융시스템이 거의 붕괴위기를 맞은 상태에서 정부 개입은 불가피했다. 또 수십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곳을 정부가 챙기는 것은 너무나당연한 일이다.

방치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직무유기다. 실제로 2차 금융개혁이 성공하려면 당분간 정부 역할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고, 대신 꼭 필요한 부분은 확실한 논리로 정정당당하게 국민과 노조를 설득하라. 그래야 문제가 풀릴 수 있다.

뻔히 아는 일까지 무조건 아니라고만 하니 신뢰가 안 생기고 대화가 안되는 것이다. 그런 후에 업계·전문가 및 정치권과 머리를 맞대고 정말 관치를 제도적으로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의 개발·정착에 나서라.

노조도 마찬가지다. 재할인률 등을 통한 중앙은행의 공개시장 조작이나 행정부의 금융시스템 보호, 또 금융기관 건정성을 위한 감독은 정부의 의무다. 이런 것까지 관치로 몰아부쳐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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