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올해도 며칠 남지 않았네요. 어쩔 수 없이 또 한 해를 돌아봅니다. 대부분이 그렇듯이 저도 몹시 바쁘게 한 해를 보냈습니다. 누구는 그 나이에 그렇게 바쁜 것도 복이라고 하지만 일면 수긍이 가면서도 한편으론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되돌아보면 일상적 바쁨은 스스로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대하는 태도는 더욱 그렇습니다. 저의 경우 카카오톡과 텔레그램에서 운용되는 단체방만 하더라도 30여개나 되니, 보내오는 사연만 하더라도 매일 수백 건이 넘어 그걸 대충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데 때로는 제 의견을 올려야 하는 것도 있어 여간 바쁘지 않습니다. 페이스북도 그렇습니다. 가입해 활동한 지도 오래됐지만 2012년 서울시교육감 선거 출마 때 친구를 늘리는 바람에 한도인 5천명을 넘나들고 있어 한 번 들어가면 빠져나오기 힘든 때가 많습니다. 어떤 경우는 ‘좋아요’뿐만 아니라 댓글을 남기지 않을 수 없어 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또 가끔은 저도 글을 올리는데 거기 달리는 댓글에 일일이 답을 하다 보니 이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이런 저를 보고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차는 사람도 있습니다. 무시할 것은 무시하고 적절히 관리해야지 그걸 일일이 다 대응하면 어쩌냐고 합니다. 그런데 어찌 그렇게 합니까? 모처럼 관심을 가져 주는데 저도 또한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저의 습관은 제가 교사 출신이어서 더 그런가 봅니다. 교사는 상대하는 모든 사람을 교실에서 만난 학생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고, 한 학생도 차별대우해서는 안 되고 모든 학생을 골고루 사랑해야 한다는 과도한 생각을 자기도 모르게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담임을 맡은 학생들에게는 무한책임의 절대적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교에 근무할 때는 더욱 그랬습니다. 그래서 제가 맡은 반 학생들에게는 특별히 무엇인가를 해 주고 싶어 생일을 파악하고 기억했다가 책을 한 권씩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생일을 맞은 학생의 특성을 생각하며 책을 고르고 속표지에 그 학생의 처지에 어울리는 글귀를 써서 종례시간에 학생들과 함께 축하하면서 전달했는데, 책 선물을 받은 학생이 너무나 좋아하는 모습은 지금도 눈에 훤합니다.

정년퇴직할 나이도 훨씬 지나 버린 요즘, 그래도 저는 교사로서의 자신을 반성하면서 교사 시절을 그리워하며 나도 모르게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아직도 인연을 이어 가고 있는 제자들에게 뭔가를 주고 싶어서, 환경운동가이며 시인인 양재성 목사님이 어느 단톡방에 매일 올리는 시를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제가 근무했던 제동중학교, 신일중·고등학교, 10년 해직 뒤 복직했던 선린인터넷고등학교와 야학 등에서 가르쳤던 학생들입니다. 거기다가 이런저런 인연으로 만난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상이지요. 처음에는 10여명으로 시작했는데, 보내 주고 싶은 사람이 또 생기고 소문을 들은 제자가 보내 달라는 요청도 있어서 차츰 숫자도 늘어 어느덧 30명이나 됐습니다. 상대가 댓글을 달거나 나도 할 말이 있어 짧은 언급이라도 하다 보면 그것도 보통일이 아니어서 30명 이상 더 늘릴 수는 없었습니다. 학급당 인원은 학교교육의 질을 좌우한다는 만고의 진리는 여기서도 예외일 수가 없는가 봅니다.

매일 아침 양재성 목사님이 올려 주는 시를 복사해서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불러 보며 1년 내내 보내 주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었으나 참 행복했습니다. 제가 운영하는 우리 시 학급도 1년을 무사히 마치는 것 같습니다. 매일 받아 읽어 주어서 모두모두 고마울 따름입니다.

며칠 전에 전달한 시 한 수 올립니다.

“송년// 김규동// 기러기 떼는 무사히 도착했는지/ 아직 가고 있는지/ 아무도 없는 깊은 밤하늘을/ 형제들은 아직도 걷고 있는지/ 가고 있는지/ 별빛은 흘러 강이 되고 눈물이 되는데/ 날개는 밤을 견딜 만한지/ 하룻밤 사이에 무너져버린/ 아름다운 꿈들은/ 정다운 추억 속에만 남아/ 불러보는 노래도 우리 것이 아닌데/ 시간은 우리 곁을 떠난다/ (…)/ 쓸쓸한 가슴들은 아직도 가고 있는지/ 허전한 길에/ 씁쓸한 뉘우침은 남아/ 안타까운 목마름의 불빛은 남아/ 스산하여라 화려하여라/

사족) 송년의 때이군요. 한 해의 순례를 돌아다보고 고마웠던 손길을 기억해 봅니다. 참 많은 손길이 함께했군요. 또한 많은 이들이 안부를 물어 줬군요. 그래서 행복했어요. 그러고 보니 내 삶의 일부는 그 손길 덕이군요.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기꺼이 손을 내민 당신, 충분히 잘 살았습니다.(12.24. 가재울에서)”

전태일재단 이사장 (president11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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