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2018년 세밑에 노동조합운동의 쟁점을 돌아본다. 노동조합 조직률은 2000년대 이후 10%에 머물러 노동운동이 정체된 것처럼 보이지만, 한국의 노동조합운동은 꾸준히 성장했다. 정부 통계를 보더라도 2007년 169만명이던 조합원수가 2017년 208만8천명으로 늘었다. 2016년보다 12만1천명 늘었고, 조직률도 0.4% 늘어나 10.7%를 기록했다. 노동자들이 꾸준히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있으며, 더 많은 사업장에 노조가 들어서고 있다. 조직형태별로는 절반이 넘는 56.6%(118만1천명)가 초기업노조에 속했다. 초기업노조의 대표적 형태는 산업별 노조다. 민주노총은 소속 조합원의 80% 이상이 산업별 노조에 속해 있다.

노동조합운동의 이러한 성장세는 문재인 정권 출범 덕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명박-박근혜의 반노동 극우정권하에서도 노동조합운동은 꾸준히 성장했다. 물론 보수적 자유주의 정권이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노동운동에 그리 친화적이지 않았다. ‘IMF 외환 위기’ 이후 20년은 독점자본과 국가가 결탁한 ‘재벌-관료 독재체제’가 완성되는 시간이었고, 촛불항쟁으로 출범한 문재인 정권도 그 자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은 ‘선 입법’론에 발목 잡혀 진척되지 못했다. ‘선 비준’ 원칙은 노동조합운동 안에서도 제대로 세워지지 못했다.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이라는 노동기본권의 큰 방향은 사라진 채 자질구레한 법령들의 주고받기식 타협 문제로 전락했다. 조합원 대중이 참여하는 실천운동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노동조합운동은 ‘선 입법’ 논리를 하루빨리 청산하고 ‘선 비준’ 원칙을 바로 세워야 한다.

사회적 대화와 관련해 정부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과의 협의를 통해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를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개편했지만, 민주노총은 여전히 참여하지 않고 있다. 연초 노동조합운동은 최저임금 개편을 최저임금위원회 안에서 책임 있게 결정하지 못하고 국회로 넘겨 버렸다. 최저임금 산입범위는 최저임금위가 아니라 입법부에 의해 처리됐다. 민주노총이 참여를 거부한 가운데 이뤄진 여름의 최저임금 인상은 사회적 후폭풍을 거세게 맞았고 ‘경기침체’의 주범으로 몰리면서 최저임금 제도 자체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사회적 대화와 관련해 노동계에 불리한 합의는 빠른 시간 안에 철저하게 시행된 반면, 노동계에 유리한 합의는 시간만 끌다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다는 불만이 있다. 노동조합운동의 입장에서 사회적 대화는 성과를 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 필요하다. 노동조합의 일상 활동인 사회적 대화를 방기하면 할수록 그 피해는 고스란히 조합원과 노동자 대중에게 돌아간다. 정보·협의·교섭을 기둥으로 하는 사회적 대화는 실력만큼 이루는 것이다.

산업별 교섭 구축과 관련해 기업을 가로질러 업종과 산업에 적용되는 임금과 노동조건의 표준을 만들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지만 여전히 ‘기업별 노조주의’의 덫을 깨지 못하고 있다. ‘하후상박’ 정신이 재조명되고 있지만, 고임금 노동자와 저임금 노동자의 격차 해소를 위한 구체적인 방도는 마련되고 있지 않다. 부자의 소득을 끌어내리고 빈자의 소득을 끌어올리는 ‘대압착(great compression)’의 실현을 위한 큰 그림, 즉 전략적 비전의 제시가 필요하다. 이는 평화체제 정착, 국방제도 개편, 재벌체제 개혁, 조세제도 개편, 복지제도와 교육제도의 혁신과 맞물려 있다.

노동조합 조합원 200만 시대를 돌파했지만, 2천만 노동자의 90%인 1천800만명은 여전히 노동조합에 속해 있지 않다. 양대 노총의 목표대로 각 노총이 200만명씩을 조직해 조합원 총수가 400만명이 되면 조직률은 20%를 거뜬히 넘게 된다. 하지만 노동조합 조직률이 지금의 두 배로 올라도 80%에 달하는 노동자들은 여전히 조합원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노동조합(trade union)은 노동자 단체들(workers' organisations) 중 하나다. 노동조합 조직률을 높이는 동시에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 단체들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화섬식품노조가 시도 중인 영세사업장 공제회 방식이나 노사협의회 근로자대표를 독일식 종업원평의회(works council)로 개편하는 방식 등 노동조합운동이 주도해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겠다.

2019년 노동조합운동의 과제는 2018년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ILO 기본협약 비준, 사회적 대화 참여, 산업별 교섭체제 구축, 90% 미조직 노동자 대변기능 확장이 그것이다. 하지만 노동조합운동을 둘러싼 정세는 달라졌다. 연초에 예상했던 것처럼 6월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정부·여당 안에서 개혁 동력이 뚜렷이 약화됐기 때문이다. 새해에는 노동조합운동의 과학적인 정세 분석능력이 더욱 중요할 것인 바, 2019년의 노동정세가 2018년보다 더욱 복잡하고 버거울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2016년 촛불항쟁 이후 한국 민주주의의 과제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에 의해 훼손된 자유민주주의를 복원하고 ‘산업민주주의’ ‘경제민주주의’ ‘노동 있는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항쟁 2주년이 지나는 시점에서 돌이켜 보면 자유민주주의조차 제대로 복원되지 못했다는 느낌이 크다. 어찌 보면 당연한데, 사회적 민주주의와 차단되고 민중의 참여가 배제된 자유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2019년 새해에도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는 마침내 조합원 200만명을 돌파한 노동조합운동의 두 어깨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