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나영 기자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이미 12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때 제대로 진상규명이 됐다면 우리가 이런 아픔을 겪지 않았을 텐데. 내가 싸우지 않으면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올 테니 그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엄마는 끝까지 싸울 거다.”

한국서부발전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에서 일하다 숨진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의 호소다. 김씨를 비롯해 산업재해·재난·안전사고 피해 가족들이 국회를 향해 “더 이상 죽음을 방치하지 마라”고 촉구했다. 위험의 외주화를 막고 중대재해를 일으킨 기업을 엄히 처벌할 수 있도록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과 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책임자 처벌에 관한 특별법(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을 국회가 조속히 통과시키라는 목소리다.

이들은 20일 오전 국회 정문 앞에서 열린 ‘산재 유가족, 재난·안전사고 피해가족 공동기자회견’에서 “가족들을 잃은 뒤에도 비슷한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고 김용균씨는 서부발전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지난 11일 석탄 운송설비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목숨을 잃었다.

“반복되는 안전사고, 이게 나라냐”

제주 음료제조업체에서 현장실습 중 사망한 고 이민호군의 아버지 이상영씨는 아들이 숨진 지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비슷한 사고가 반복됐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제주 삼다수 공장 사고와 태안 화력발전소 사고를 예로 들었다.

“국민에게는 국방·납세·근로·공공복리 등 4대 의무를 짊어지게 하는데,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게 무슨 나라예요? 이게 무슨 나라냐고.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게 후회스럽습니다.”

이씨는 중대재해 발생 기업 처벌을 강화하라고 촉구했다. 그는 “애가 떠나가고 나서 많은 정치인, 심지어 교육부총리까지 (장례식장에) 방문해서 법을 바꿀 것처럼 이야기했는데, 그때 이야기하신 분들 다 어디 계신지 모르겠다”며 “아이가 숨진 뒤 회사는 2천만원의 벌금을 받았는데 말이 되나.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중대사고가 났을 때는 중대 과실죄로 회사가 문을 닫을 정도의 벌금을 물게 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위험업무 외주화를 중단하고, 중대재해에 대한 원청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2015년 삼성전자 하청업체에서 일하다 메탄올 중독으로 실명한 김영신씨는 “시력을 거의 잃은 뒤 하청업체에 책임을 물으니 잘못이 원청에 있다고 하고, 원청은 하청에 잘못이 있다고 했다”며 “결국 모든 책임을 제가 떠안게 됐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법을 공부하지 않은 나도 제도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알고 있는데 왜 법을 평생 공부한 분들은 모르냐”며 “하루빨리 제도가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죽음의 외주화 방치한 국회의원도 공범”

이들은 산업안전 관련 법안의 조속한 국회 통과를 요구했다. 여야는 정부가 발의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을 포함해 58개 산업안전 관련 법안을 병합심사해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정부가 발의한 개정안에는 위험업무 도급을 금지하고 원청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21일 정부 법안에 대한 공청회를 열어 전문가와 노사 단체 의견을 수렴한다. 같은날 곧바로 고용노동소위(법안심사소위)를 열어 법안 의결을 시도한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망자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는 “징역형 같은 강한 법 없이는 하청노동자들은 앞으로도 병들고 죽어 나갈 것이 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회의원들은 하청업체 노동자가 병들고 죽어 간다는 것을 수년 전부터 뻔히 다 알고 있으면서도 자기들 당리당략에 의해 산업안전보건법을 고치지 않았다”며 “국회의원들은 기업이 이익만 찾는 것을 언제까지 방치할 것이냐”라고 따져 물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 등이 참석했다. 유가족들에게 의견서를 전달받고 김미숙씨를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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