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를 논의하기 위해 20일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 첫 회의를 연다. 정부는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 시행으로 발생한 현장 혼란을 보완하기 위해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부가 말하는 그 현장의 노동자들은 되레 법정노동시간이 단축되고도 장시간·저임금 노동의 늪에 빠지게 됐다고 토로한다. 문재인 정부가 국정과제로 제시했던 양질의 일자리 창출 역시 탄력근로제가 확대되면 도로 아미타불이 될 공산이 크다. 정부는 필요한 사업체에 한해 노사합의로 탄력근로제를 확대하고, 노동시간 확대에 따른 노동자 건강권과 임금감소를 반영해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전문가들은 “단점만 있는 사용자 편향적 제도”라고 비판한다. 노동존중 사회를 지향했던 문재인 정부가 처벌유예와 특별 연장근로 허용에 이어 탄력근로제 확대까지 추진하면서 '최장시간 노동국가'로의 후진을 선택한 셈이다.

“고용창출 기회 잃고 장시간 노동으로 회귀”

한국노총과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민생경제와 사회적합의 포럼이 19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등 근로기준법 개악 저지를 위한 긴급토론회를 열었다. ‘역주행하는 노동시간단축 정책의 올바른 해법’을 주제로 내건 이날 토론회는 주 52시간 상한제를 원점으로 되돌리는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 목소리로 가득 찼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탄력근로제는 서구에서 주 40시간 미만으로 기준노동시간을 단축할 때 자투리 시간으로 인한 업무 공백을 최소화하고, 노동시간단축 연착륙을 유도하기 위한 타협책으로 나왔다”며 “주 68시간이 허용되는 한국에서 이미 탄력근로제가 도입돼 있다는 것을 외국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 35시간까지 노동시간이 줄어들 때 탄력근로제 도입을 고민할 수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탄력근로제는 굉장히 적은 노동시간과 초과노동 관행이 없는 나라에서 일시적 물량 증가에 대응할 수 있도록 만든 제도인데 초장시간 노동 국가에서 (탄력근로제를) 활용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주 52시간도 여전히 장시간 노동”이라고 비판했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의 이점은 무엇일까. 김 교수는 "사용자 권한 강화 외에 이점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기업은 인력운용 탄력성을 높이고 인건비를 절감하게 되지만 노동자들은 임금감소로 생계곤란이 심화한다”며 “인력이나 노동시간 재편과 관련한 사용자 권한이 강해지고 이는 결국 노사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교수는 특히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이 현행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되면 3개월은 최대 주 64시간 근무가 가능하고, 노동시간 적용 대상이 아닌 300인 이하 기업은 80시간까지도 노동시간이 늘어나게 된다”며 “노동시간 정상화를 통한 고용창출 기회마저 놓치게 된다”고 우려했다.

“당·정·청 판 짜 놓고 사회적 합의하라 압박”

정부·국회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이미 확정하고 사회적 대화를 들러리 세우는 행태에 대한 불만도 나왔다.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실장은 “올해 2월 국회를 통과한 근로기준법은 주 52시간 상한제가 전면적으로 시행되는 2022년에 탄력근로제를 검토하도록 정하고 있는데도 당·정·청은 이를 무시하고 내년 2월까지 단위기간을 확대하겠다고 한다”며 “탄력근로제 확대가 진정한 해법인지 제대로 검토하지도 않았다”고 반발했다.

김병철 청년유니온 위원장과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역시 “당·정·청이 이미 가이드라인을 짜 놓고 사회적 대화를 빨리 끝내라는 식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옳지 않다”며 “사회적 대화의 성패를 가를 첫 의제가 탄력근로제가 되면서 경사노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윤경 고용노동부 근로기준혁신추진팀 과장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가 노동시간단축 법안에 역행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는데, 단위기간을 확대한다고 해도 일률적으로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게 아니다”며 “필요한 사업체에서 노사 서면합의로 노동시간을 사전에 특정해 운영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노동자 건강권이나 임금감소를 해소할 수 있는 보완책이 마련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