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 노동자들이 18일 낮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일하다 숨진 고 김용균씨를 추모하고 대통령과의 면담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한 뒤 고 김용균씨 유품인 컵라면을 들고 광화문광장 분향소로 행진하고 있다.<정기훈 기자>
“위험한 현장을 바꿔 달라고, 고쳐 달라고 회사에 얘기해도 원청에 얘기해 보겠다고 하면 끝입니다. 원청은 비용이 드니까 못 바꿔 준다고 하죠. 비정규 노동자 목숨값으로 돌아가는 세상을 고쳐야 합니다.”

현대제철 하청 비정규 노동자 조정환씨의 말이다. 공공기관이든 민간기관이든 원·하청 구조에서는 위험한 일터를 바꿀 수 없다는 증언이 하청노동자들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시설·설비 개선 권한을 가진 원청을 움직일 힘이 없다고 호소했다.

일터에서 삶과 죽음 넘나드는 하청 비정규직

문재인 대통령에게 대화를 요구한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은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금도 비정규직들은 발전소 컨베이어벨트 앞에서, 맨홀 뚜껑 밑에서, 조선소 도크 위에서, 건설현장 자재 틈에서 삶과 죽음을 넘나든다”며 “언제까지 동료 유품을 정리하고 '오늘도 죽지 않아 다행'이라는 심정으로 살아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신대원 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기술지부장은 “안전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원청에 개선을 요구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며 “모든 시설의 관리·감독과 승인권을 갖고 있는 원청은 벽이었다”고 말했다.

신 지부장은 “비정규 노동자들이 얘기한들 원청이 해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고쳐지지 않는다”며 “숨진 용균이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지난 11일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혼자 작업하다 끼임사고로 숨진 청년노동자 김용균씨와 같은 하청업체 소속이다.

조선소 사내하청 전기공 김동성씨는 “화력발전소 청년노동자의 참혹한 죽음을 듣고 남의 일 같지 않았다”며 “조선소에서는 매년 똑같은 중대재해가 발생하고 내일 당장 하청노동자가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해도 이상할 게 없다”고 증언했다. 그는 “하청노동자 죽음이 이어져서는 안 된다”며 “우리 사회가 안전이 최우선인 사회인지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고 말했다.

“내가 김용균이다”

차헌호 금속노조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장은 “비정규직 죽음의 문제는 태안 화력발전소만의 문제가 아니다”며 “태안 화력발전소 문제만 해결한다고 비정규 노동자들의 죽음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내놓은 화력발전소 안전대책으로는 다른 죽음을 막을 수 없다는 얘기다.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은 “내가 김용균”이라고 외쳤다. 철도공사 자회사인 코레일관광개발 소속 KTX 승무원 김승현씨는 “자회사 정규직은 한 번 포장한 표현으로 비정규직과 똑같은 말”이라며 “원청이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음에도 중요한 순간에는 모른 척한다”고 비판했다.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직 홍종표씨는 “2년 전 구의역 사고와 이번 태안 화력발전소 사고의 가장 큰 원인은 규정 인원보다 적은 인원이 일했기 때문”이라며 “주 52시간 근무제를 이유로 네 명이 하던 일을 세 명이 하도록 했다”고 전했다. 또 "정규직 전환을 논의 중"이라는 이유로 자연감소한 인원을 충원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노동강도가 강화되고 현장은 더 위험해졌다.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요구했다. 이들은 21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출발해 청와대까지 행진한 뒤 노숙농성을 한다. 다음날인 22일 추모제를 연다.

김수억 금속노조 기아차비정규직지회장은 “대통령에게 만나 달라던 비정규직 청년의 말은 유언이 돼 버렸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비정규직 죽음을 막고자 한다면 우리를 만나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