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오훈 전 서울교통공사노조 위원장

광주시와 현대자동차의 투자협상, 소위 광주형 일자리 점정합의에 대한 노조 반발을 두고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그리고 어김없이 독일과 한국 비교가 등장한다. 결론은 한국 노조가 너무 이기적이라는 것이다. 현대차-광주시 투자협상 모델은 독일 폭스바겐 노사정 합의를 모델로 한 것이다. 왜 독일은 되고 광주는 안 되는 것일까. 독일에는 있고 한국에는 없는 것 네 가지를 짚어 본다.

첫째 독일에는 있고 한국에 없는 것은 제도화된 신뢰 시스템이다. 두 모델의 핵심은 “현재 고통을 분담하고 미래의 번영을 함께 누리자”다. 가장 큰 차이는 노조가 정부와 자본을 신뢰하는 것이다. 독일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노동이사제 같은 경영감시제도를 가지고 있다. 독일 2천인 이상 기업은 회사법에 따라 감독이사회의 절반을 노동자대표로 선출한다. 감독이사회는 경영에 대해 열람·감시할 권리를 가진다. 심지어 사장 등 주요 임원의 채용·임금수준을 결정할 권한도 갖는다. 감독이사회는 산하에 인사·재정·기술 등 각종 분과를 두고 경영 전반에 개입하고 결정할 권한을 갖는다. 한국의 경우 경영진과 정치권은 제도와 시스템을 만들지 않고 상생·협력과 관련해서는 제발 믿어 달라는 구호만 외치고 있다. 광주시가 제시한 안은 미국 자동차산업노조에서 도입했다가 사멸해 버린 실패한 제도다. 핵심은 노조에 실질적 공동 거버넌스 권한을 주고 이를 법률·조례 등의 법과 제도로 확립하는 것이다. 정부는 신뢰를 보여 줬는지 묻고 싶다. 노동이사제를 도입하겠다는 대선 핵심 노동공약은 아예 논의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둘째 독일에는 있고 한국에는 없는 것은 헌법 수호 의지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독일은 매우 촘촘한 법 체계와 엄정한 법 집행으로 법을 어기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처벌한다. 이번 광주-현대차 투자협상에서 가장 크게 문제가 된 것이 단체협상을 5년간 막는 조항인데 이는 위헌 소지가 있다. 단체교섭권은 헌법 33조에서 명시한 권리이며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단체협약 기간을 2년으로 제한해 단체교섭권의 형해화를 방지하고 있다. 헌법상 권리는 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제한할 수 없으며 투자협정서로 헌법상 권리를 제한하는 것은 명백한 위헌이다. 불과 2년 전 헌법 수호 책임을 다하지 못한 대통령이 감옥에 있다는 사실도 기억해 보자.

셋째 독일에는 있고 한국에는 없는 것은 지도자들이 노조를 존중하는 태도다. 신뢰는 존중에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독일의 총리와 대통령은 거의 매년 독일노총과 금속·탄광노조의 주요 행사에 참석해 연설하고, 노동자들의 노고와 헌신에 감사를 표하고, 정부 정책을 설명하고 직접 이해를 구하기도 한다. 물론 인기는 없다. 초기 메르켈 총리는 대의원들의 야유로 수차례 연설이 중단되는 사태를 겪었지만 참석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한국은 어떤가. 대통령이 노동절·노동자대회 등 노동조합 행사에 공식적으로 참석해서 연설한 것은 고사하고, 지난달 노동자대회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연설한 것을 두고 일부 여당 국회의원은 대권 욕심으로 당과 엇박자를 낸다고 비판했다. 언론은 현직 시장의 공무원 신분을 들먹이며 부적절한 처신이라고 몰아세웠다.

넷째 독일에는 있고 한국에는 없는 것은 바로 차별금지법이다. 독일은 2006년 8월18일 발효된 일반평등대우법(AGG·das Allgemeine Gleichbehandlungsgesetz)과 차별금지법을 통해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독일은 산별교섭과 강력한 차별금지법을 통해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지키려고 어려움 속에서도 노력하고 있다. 광주형 일자리의 핵심 가치가 바로 대기업과 하청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없애는 것이다. 독일은 차별금지법과 산별교섭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평등해야 할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받는 상황이라면 강력한 차별금지법으로 바로잡아야 할 문제다. 노동조합의 기업별 교섭을 넘어서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차별금지 문제는 국회와 정부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최근 스웨덴 주재 한국 대사 발언 논란에서 보듯 독일노조는 합리적·이타적이고 한국노조는 비이성적·이기적이기 때문에 노조만 변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꽤 많은 것 같다. 그러나 독일에는 있고 한국에 없는 것은 신뢰를 위한 법과 제도, 헌법을 지키려는 정부, 노동존중, 그리고 차별금지법이다. 이것은 광주의 문제라기보다는 국회와 청와대의 문제다. 물론 노조도 일부 책임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대기업 노동자이기 전에 국민이다. 헌법상 권리를 주장하는 국민을 이기적이라고 혐오 대상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사회 분열만 초래할 뿐이다. 광주형 일자리의 모델이었던 폭스바겐 합의 당시 집권여당이던 사민당이 이후 선거에서 패배하고 무려 20년 동안 독일 기독민주당을 비롯한 보수당에 정권을 넘겨 주고 있음을 잊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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