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고장난 손전등, 얼룩덜룩한 수첩 그리고 컵라면과 과자 한 봉지. 태안 화력발전소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노동자 김용균의 유품이다. 구의역 김군처럼 컵라면을 휴대하고 있었다. 그와 함께 일했던 동료는 12시간 야근하면서 밥 먹을 시간도 없을 정도로 일을 하다가 출출할 때 먹기 위해서였다고 한 언론사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러니 지난 11일 오전 3시24분께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 밑에 끼여 사망한 노동자 김용균은 그날은 컵라면조차 먹지 못한 채 일하다 숨을 거둔 것이다. 고 김용균은 연료운영팀 소속으로 발전소 연료인 석탄을 보일러로 이동시키는 컨베이어벨트에서 일했다. 그는 태안 화력발전소를 운영하는 한국서부발전의 사내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과 근로계약을 체결한 노동자였다. 오늘 이 나라는 그의 죽음에 새삼스럽게 사내하청 비정규 노동자의 열악한 처우를 말하고 있다. 구의역 김군 사망 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다시 한 번 위험의 외주화가, 원청 정규직과 하청 비정규 노동자의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문제라며 다투어 그 원인을 말하고 있다. 17일에는 문재인 대통령도 확대경제장관회의 머리발언에서 “하청업체 노동자의 안타까운 죽음을 일으킨 태안 화력발전소 사고는 공기업 운영이 효율보다 공공성과 안전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는 경각심을 다시 우리에게 줬다”며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특히 위험·안전 분야 외주화 방지를 위해 노력해 달라”고 말했다.

2.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 노동자와 만납시다. 노동악법 없애고! 불법파견 책임자 혼내고! 정규직 전환은 직접고용으로! 나 김용균은 화력발전소에서 석탄설비를 운전하는 비정규 노동자입니다.’ 고 김용균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위한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 노동자와 만납시다’ 운동에 참여했을 당시 촬영한 ‘인증’사진에는 이런 손피켓이 손에 들려 있었다. 화력발전소 비정규 노동자 김용균은 살아서는 이러한 자신의 요청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대답을 듣지 못했다. 고 김용균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업장 비정규 노동자들이 이러한 운동에 참여해서 밑줄에 각자 자신의 성명과 소속 사업장 업무를 기재해서 이렇게 요청했다. 그리고 오늘 노동자 김용균이 죽고서야 이 나라 비정규 노동자들은 장관들에게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특히 위험·안전 분야 외주화 방지를 위해 노력해 달라”고 말했다는 대통령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쩌면 비정규 노동자를 생각해 주는 대통령의 진심에 감격하는 이도 있을지 모르겠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눈물과 동정, 안타까움이 넘쳐난다. 추상이 아닌 구체의 사람을 들여다보면 그 나름의 처지가 이해되지 않기 오히려 어렵다. 심지어 사용자 자본이라도 추상이 아닌 구체적인 사람으로 보자면 그렇다. 그러니 억지로라도 참고 추상적으로 노동을 말할 일이라고 나는 다짐을 하며 이 칼럼을 쓰겠다.

3. 자신을 비정규 노동자라고 말했던 노동자 김용균은 서부발전의 태안 화력발전소 사내하청업체 소속 노동자였다. 사내하청업체 소속이라서 스스로 비정규 노동자라고 했던 것이다. 법적으로 보자면 사내하청업체와 근로계약을 체결한 노동자이니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했다면 고 김용균은 기간제 노동자는 아니었고, 간접고용 노동자였다. 석탄을 연료로 전력을 생산하는 화력발전소에서 발전설비인 보일러에 석탄을 공급하기 위한 컨베이어벨트 관리업무는 핵심공정의 업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단순노무의 현장 기능직업무라고 해서 서부발전에서 외주화해서 한국발전기술과 용역계약을 체결하고 발전소 운전업무를 수행토록 했다. 공공기관의 정상화니 선진화니 해대며 이 나라에서 공공기관마다 현장 기능직의 업무를 중심으로 외주화해 왔다. 자회사를 설립해서 외주화하더니, 자회사조차 매각해서 외주화했다. 그렇게 발전소 업무도 외주화해 왔다. 발전 자회사로 한국발전기술이 설립돼 용역계약을 통해 발전소 운전업무를 수행하도록 하더니, 2014년 5월30일 한국발전기술의 주식과 경영권을 매각해 발전 자회사 딱지마저 떼어 버렸다. 그리고 노동자 김용균은 발전소 컨베이어벨트에서 일하다 그 한국발전기술 소속으로 죽었다. 분명히 발전소에서 누구보다 발전을 위해 중요한 업무에서 열심히 일하다 죽었건만 그는 발전소를 운영하는 서부발전 소속 노동자로 죽을 수는 없었다.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운전업무를 하기 위해서 그는, 사내하청업체 한국발전기술과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것 말고 달리 선택할 수가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 나라에서 사내하청업체 소속으로 일하는 노동자 모두가 그렇다. 석탄을 원료로 전력을 생산하는 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 운전·관리업무는 발전소 전력생산 체계의 주요 공정이고, 이는 당연히 원청인 발전소의 관리하에서 수행될 수밖에 없다. 현대차·기아차·지엠 등 자동차생산공정에서, 현대제철·포스코 등에서, 냉연코일 등 철강 생산공정에서 사내하청업체 소속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이 파견근로자라고 법원 판결을 받았던 것처럼, 발전소 사내하청 노동자도 파견근로자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법적으로는 노동자 김용균은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에 따라 원청 서부발전이 사용사업주로서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할 의무가 인정되는 파견근로자로 죽은 것일 수 있겠다.

4. 이 나라에서 비정규 노동자를 말할 때면 대기업 정규직과의 차별을 말하며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말한다. 분명히 차별은 철폐되고, 노동시장은 이중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늘 이 나라에서는 대기업 정규직을 비난하기 위해서 사용되고 있다. 사내하청 비정규 노동자의 임금 등 처우가 열악한 것은 정규직 처우가 높기 때문이라며 비난하고 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했다는 일자리 창출을 위한 토론에서도, 광주시가 한다는 광주형 일자리에서도 대기업 정규직이 문제인 양 중소기업·비정규 노동자와의 상생을 위해서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너무도 당연한 듯이 하는 그 말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고용·임금 등 노동자권리를 삭감해야 한다는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나는 파견법을 위반해서 사용한 원청 서부발전은 노동자 김용균을 자신의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사내하청업체에서 보다 나은 처우를 받았어야 했다고 나는 말하지 않겠다. 일자리 만들기를 말하며 대기업 정규직의 고용·임금 등 권리 삭감에 관해 아무렇지 않게 주장해 대고 있는데, 그럼 파견법에 따라 김용균이 원청 서부발전의 정규직으로 고용될 경우 해고가 쉽고 임금이 낮아야 한다는 것인가. 마치 정규직과 비정규직 모두에게 지급할 인건비 총량이 정해져 있는 양, 그래서 정규직의 고용안정과 고임금은 곧 비정규직의 고용불안과 저임금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사용자 자본이 더 많은 이윤을 챙겨야 하고 그들의 몫은 보장돼야 한다는 것을 당연한 전제로 하고 있다. 고 김용균 소속의 한국발전기술은 매각되던 2014년 당시 매출액이 433억원에서 지난해 765억원으로 43.5% 증가했고,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61억원에서 늘어나 지난해 100억원을 넘어섰다. 사용자 자본의 몫은 증가해 왔던 것이고, 그럼에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발전회사만이 아니다. 올해 3분기 대기업 영업이익률은 8.4%로 이 나라에서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발표됐다. 이 나라에서 도급계약을 체결해서 사내외 하청업체를 자신의 생산 등 사업에 이용해 이익을 실현하는 것이 대기업이다. 따지고 보면 파견 등 비정규 노동자를 사용한 이득도 결국 이러한 대기업이 차지하는 것이다. 이 나라에서 사용자 자본은 비정규 노동자를 고용해야만 자신의 사업을 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더 많은 이익을 위해서 비정규 노동자를 고용하기를 원하는 것이고 보다 많은 노동자를 비정규직처럼 사용하고자 정규직의 고용·임금 등 권리를 삭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오늘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방식도 크게 다르다고 보기 어렵다. 인건비 절감, 고용 유연화 등을 통한 사용자로서 부담을 덜기 위한 사용자 자본으로서 본질은 크게 다르다고 보기 어렵다. 고 김용균은 서부발전 태안 화력발전소의 사내하청업체 한국발전기술 소속 노동자였다. 한국발전기술은 위에서 본 것처럼 외주화돼 자회사로 설립됐다가 2014년 매각됐던 것인데, 당시 매각되지 않았다면 이번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인가. 공기업의 방만경영이니 뭐니 하면서 추진했던 외주화로 설립된 자회사였으니 역시 인건비 절감을 내세우며 노동자를 열악한 작업 환경에 몰았을 것이다. 노동자 김용균의 죽음은 자회사가 민영화돼 발생한 것이 아니다. 보다 많은 이윤을 위한 자본의 본성을 가진 발전회사가 사내하청업체 노동자를 혹사해 사용함으로써 일어난 일이다. 그런데도 죽은 김용균의 원청 발전회사에 직접 사용자로서 책임을 묻지 못하고 있다. 외주화로 보자면 자회사라고 해도 다를 게 없다. 그런데도 오늘 수많은 공공기관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자회사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비정규 노동자 김용균이 살아서 외쳤던 구호, ‘정규직 전환은 직접고용으로’는 한국발전기술을 서부발전의 자회사로 만들어 달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사용하는 발전회사 정규직으로 전환해 달라는 요구였다. 태안 화력발전소 노동자 김용균은 그 발전회사 노동자여야 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