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7일 태안 화력발전소 사고 관련 관계부처 합동대책을 발표했다. 그런데 알맹이 없는 미봉책만 나열했다. 사고가 발생한 '화력발전소 맞춤형 안전대책'만 열거했다. 잇단 하청노동자 사망사고의 근본 원인인 '위험의 외주화'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없다.

정부는 유해위험작업 도급 조항을 도입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의 국회 통과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이마저도 그 대상범위가 너무 좁아 '구의역 김군'도 '태안 화력발전소 김군'도 적용받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청년비정규직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는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대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별 산업안전보건감독·2인 1조 근무 원칙 세운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과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날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태안 화력발전소 사고 관련 관계부처 합동대책'을 내놓았다. 한국서부발전 태안 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 고 김용균씨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지 6일 만에 나온 대책이다.

노동부는 사고가 난 태안 화력발전소를 상대로 고강도 특별 산업안전보건감독을 실시한 뒤 법 위반이 확인되면 관련 책임자를 처벌한다. 12곳의 석탄화력발전소 대상 긴급 안전점검을 통해 원청의 하청노동자 안전의무 이행실태와 정비·보수 작업시 안전수칙이 지켜졌는지를 확인한다.

안전보건공단 주관 안전보건 종합진단에서는 안전보건 관련 시스템과 기술 분야 이상유무를 살핀다. 또 민간 전문가 중심 석탄화력발전소 특별 산업안전조사위원회를 구성해 그간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한 사고 원인과 원·하청 실태를 조사하고,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한다. 지난해 5월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 이후 구성된 '조선업 중대산업재해 국민참여 조사위원회'와 비슷한 형태다. 노사와 유가족이 추천하는 전문가 10여명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 김용균씨는 서부발전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에 입사한 지 석 달도 안 돼 사고를 당했다.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 밑으로 떨어진 석탄을 제거하는 작업을 혼자서 했다. 컨베이벨트 베어링 이상유무를 확인하기 위해 개구부에 몸을 집어넣어 베어링 소리를 점검하다가 고속으로 회전하는 롤러와 벨트에 머리가 빨려들어 사망했다.

정부는 석탄운반 컨베이어 등 위험설비 점검시 2인1조 근무를 하고, 낙탄제거 같은 위험설비와 인접한 작업은 반드시 기계를 정지시킨 다음에 하도록 규정을 바꾸기로 했다. 경력 6개월 미만 직원은 나홀로 작업을 금지한다. 컨베이어 주변 안전커버와 안전울타리 등 안전시설물을 보완하고 비상시 기계를 멈출 수 있는 스위치(풀 코드) 작동상태도 점검한다.

발전사·협력사·노동자·민간전문가가 참여한 가운데 발전사 인력운용 규모가 적정한지 들여다보고, 부족한 안전인력은 조속히 충원하도록 할 계획이다. 원청인 발전사가 하청업체 신입직원을 책임지고 교육하는 방안도 마련한다.

발전소별로 발전사·협력사·노동자·시민단체·민간전문가가 참여하는 '안전경영위원회'를 꾸려 현장 개선과제 이행 여부를 살펴본다. 발전사 경영평가에서는 안전 분야 비중을 늘린다.

시민대책위 "위험의 외주화가 문제라면 인소싱부터 해야"

정부가 뒤늦게나마 안전점검과 조치를 강화하는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핵심 대책이 빠졌다는 점에서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적지 않다.

노동계는 이번 참사가 상시·지속업무와 생명·안전 관련 업무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벌어졌다고 보고 있다. 2인1조 원칙 위반과 위험한 근무환경은 김씨가 발전소에 직접고용됐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이기 때문이다. 시설 정비·운전업무를 담당하는 하청업체 직원들은 자신들의 업무가 생명·안전과 밀접한 업무라며 정규직 전환을 기대했지만 발전 5사들은 '민간의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직무'라며 이들을 정규직 전환 대상자에서 제외했다.

이날 브리핑 자리에서 "발전 5사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하청노동자들이 빠진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재갑 장관은 "정부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맞춰 논의하고 있다"며 "서부발전은 노사전문가협의회에서 조속히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답했다. "가이드라인 수정은 없다"고도 했다.

청년비정규직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는 입장문을 내고 "성윤모 장관과 이재갑 장관은 언론 보도를 한 줄이라도 봤는가"라고 반문한 뒤 "김용균 노동자 죽음 이후 국민이 분노한 건 공공기관에서도 돈벌이를 위해 외주화를 진행하고 위험은 고스란히 비정규직이 감당하는 것에 대한 분노"라고 비판했다. 시민대책위는 "위험의 외주화가 문제라면 인소싱부터 해야 한다"며 "당장 직접고용하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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