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29년간 경마장에서 마필관리사로 일한 김아무개(52)씨가 최근 폐암으로 사망했다. 폐암으로 목숨을 잃은 마필관리사는 2012년 이후 두 번째다. 김씨는 서울경마장조교사협회가 실시하는 건강검진에서 폐암 소견이 발견되지 않았다가 뒤늦게 확진을 받은 뒤 9개월 만에 목숨을 잃었다. 동료 마필관리사들은 “조기에 발견만 했어도 치료할 수 있었다”며 협회와 원청인 한국마사회에 작업환경 개선과 흉부 CT(컴퓨터단층촬영) 검사 등 체계적인 건강검진을 요구했다.

2012년 폐암 사망 이후 두 번째

17일 한국노총과 전국경마장마필관리사노조(위원장 신동원)에 따르면 마필관리사 김씨가 지난 14일 폐암으로 숨졌다. 29년간 마필관리사로 일한 김씨는 올해 3월 폐암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 이날 오전 세상을 떠났다. 그는 폐암 진단을 받은 직후인 올해 5월 근로복지공단 안양지사에 산업재해 요양신청을 했다. 승인 결과는 이날까지 나오지 않았다.

마필관리사가 폐암으로 사망한 것은 2012년 이후 두 번째다. 폐암 판정을 받은 마필관리사는 김씨를 포함해 7명인데, 5명이 산재를 인정받았다. 공단 안양지사 관계자는 “김씨의 산재신청과 관련해 직업성폐질환연구소 역학조사가 진행 중”이라며 “산재 승인 여부까지는 얼마 정도의 기간이 소요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2012년 서울경마장에서 이아무개씨가 폐암에 걸려 세상을 등진 이후 마필관리사 작업환경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 김광일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연구소 소장은 “마필관리사 작업환경과 폐암 간의 연관성은 상당 부분 입증돼 있다”며 “2014년 제주경마장에서 일하던 마필관리사가 폐암진단을 받았을 당시 직업성폐질환연구소가 역할조사를 통해 업무관련성을 인정한 바 있다”고 밝혔다.

당시 직업성폐질환연구소 역학조사 결과 조마삭 운동(말이 원을 그리며 도는 운동)을 하는 실내 원형마장의 바닥 모래에서 발암물질인 결정형 유리규산(석영)이 검출됐다. 석영은 1997년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회가 발암성을 인정한 1급 발암물질이다.

신동원 위원장은 “조마삭 운동은 실내에서 이뤄지는데 말이 모래를 밟을 때 무게가 약 4톤”이라며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는 실내에서 말이 모래를 밟을 때 모래가 부서지면서 발생하는 분진에 장기간 노출된 마필관리사들에게서 폐암이 발견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노조 “건강검진 개선해 20년 이상 근속자 폐암 잡아야”

2012년 마필관리사 이씨가 폐암으로 사망한 후 고용노동부는 경마장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하고 작업환경 개선을 권고했다. 그리고 2014년 3월 노조와 조교사협회·마사회 등이 참여하는 경마산업재해대책협의회가 꾸려졌다. 협의회는 작업환경 개선 일환으로 실내 원형마장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고 마필관리사들에게 1급 방진마스크를 지급했다.

문제는 이번에 사망한 김씨처럼 근속연수가 오래된 마필관리사들이다. 신동원 위원장은 “그동안 작업환경을 개선해 분진 등이 많이 줄었다”면서도 “작업환경이 개선되기 이전부터 근무한 근속연수 20년 이상 마필관리사들의 몸에 축적된 석영이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폐암에 걸린 마필관리사 7명 모두 20년 이상 근무자들”이라며 “김씨의 경우 지난해 협회 건강검진에서 폐암 소견이 발견되지 않았는데 올해 3월 뒤늦게 폐암진단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신 위원장은 “노동부 특별근로감독 직후인 2012년 한번 흉부 CT를 찍은 이후 형식적인 검사만 하고 있다”며 “제대로 된 건강검진을 통한 조기진단으로 마필관리사들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해경 노조 정책실장은 “경마장조교사협회가 사용하는 시설에 못을 하나 박으려 해도 마사회 허락을 받아야 하고, 협회의 모든 운영비용은 마사회로부터 집행받아 사용된다”며 “마사회와 협회가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마필관리사들의 폐암 발병을 조기에 찾아내 치료할 수 있도록 보다 체계적인 건강검진과 안전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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