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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일 하고, 외면받고, 차별받고, 고통받고…비정규노동센터 수기에 비친 2018년 비정규 노동자 삶
▲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뜨거운 물에, 기름에 데어 몸 성한 데가 없다. 여름엔 에어컨 없는 조리실에서 땀범벅이 돼 일한다. 접촉성 피부염을 달고 산다. 환기가 안 돼 쓰러질 뻔했다. 학교급식 조리원 이미선씨 얘기다.

교장은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비정규직 교직원에게 "내 사위 삼고 싶은데 비정규직이라 안 돼"라며 무안을 준다. 그는 교직원과는 뷔페에서, 조리원과는 식당에서 퇴임식을 한다.

일부러 그러는 걸까. 그들은 눈에 훤히 보이게 차별을 했다. 그러니 이미선씨는 "대를 이어 비정규직을 물려줄 수 없다"고 했다. "노후에 대한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없는 형편이니 일터에서 골병 들지 않고 안전하고 건강하게 정년까지 일하고 싶다"는 그의 바람은 이뤄질까.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지난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2018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시상식'을 열었다. “비정규직, 당신이 희망입니다”는 주제의 공모전에서 이미선씨가 <골병과 정년>으로 대상을 받았다.

퀵서비스 '전과' 막으려 참고
평화로운 일상은 '운수 좋은 날'


김종태씨의 <아직도 직업엔 귀천이 있다>, 최영열씨의 <새해에는 뭐하시나요?>, 김경희씨의 <방과후강사도 노동자다>, 장순애씨의 구술을 고현종씨가 정리한 <나는 독거노인입니다>가 우수상을 수상했다.

김종태씨는 퀵서비스 노동자다. 그는 제목처럼 "아직도 직업엔 귀천이 있다"고 하소연했다. 고객 갑질을 겪은 일화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썼다.

"죄송하다는 한마디 말도 없이 마치 어떤 명령에도 당연히 복종해야 하는, 반문도 저항도 해서는 안 되는 관계처럼 태연하고 당당하게 말하는 아가씨를 향해 천불이 나서 욱하고 올라오는 순간 마음 한편 참자, 참아야 한다, 여기서 한마디라도 불편한 심사가 언어로 나가는 순간 아가씨가 무턱대고 퀵 사에 전화를 걸어 너무 불친절해서 당신네 회사하고는 더 이상 거래 못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김씨는 "앞으로 그 회사 오더를 받을 수 없게 된다"며 '전과'라고 표현했다. 약한 자의 이름, 죄인이다. 지폐 세 장을 뿌리는 고객에게 말 한마디 않고 조용히 무릎 꿇어 돈을 집어야 했단다.

LG유플러스 설치·수리기사인 최영열씨는 운수 좋은 날 얘기를 했다. "비상식적인 고객을 만나지도 않았으며 영업도 한 건 했고 회사 관리자가 칭찬까지 하니 기분이 더 좋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속은 말이 아니다.

"영업을 채우지 않으면 관리자에게 혼나고 월 200만원도 안되는 월급에 점심은 빵으로 때워야 하며 내년에 나는 직장을 잃고 거리를 헤매게 될지도 모른다"고 쓴웃음을 짓는다.

비정규직은 쓰면 안 되는 '사투리'
노인일자리·기초연금은 독거노인에게 '생명'


김경희씨는 경상도 사투리가 심하다는 이유로 재계약을 하지 못한 황당한 사연을 들려준다. 주 5시간, 이틀 일하고 월 160만원을 받으며 10여년을 일했는데 '부산에서 파주로 전근온 지 1년도 안된 사투리 심한 교감선생님'한테 하루아침에 잘린 사연이다.

그는 "정규직 교사는 사투리를 사용해도 문제가 없고, 비정규직인 방과후강사는 사투리를 쓰면 안 된다는 말이냐"고 했다. 그는 “우리는 특수고용직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교육노동자”라고 외친다.

<나는 독거노인입니다> 하고 고백하는 장순애씨. 열아홉에 전라도에서 서울로 올라온 그가 '식모'로 남의집살이하던 일부터 생을 되돌아봤다. 결혼하고 아이들 낳고 떡 팔아 생계를 돕다 남편을 떠나보낸 일, 네 아이 키우느라 보따리장수에, 지하철 청소일에, 공사판 전기설비 일을 했다. 지금은 무허가 사글세 집에 산다. 일흔 넘어 참여한 노인일자리에서 받는 27만원과 기초연금 25만원은 독거노인 장씨에게 생명과도 같다. 그는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60년 전 내가 겪은 고통을 후배들이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비정규노동센터는 "1천만 비정규직 시대에 노동자들의 글쓰기가 더 나은 삶과 세상을 만드는 작은 실천이 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이번 공모전에서 봤다"며 "공모전에 참여한 분들의 모든 글이 입상 여부를 떠나 마음에 와 닿아서 다시 힘을 얻게 되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윤자은  bory@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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