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12월도 중순,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지난여름은 너무 더웠고 겨우 가을인가 싶더니 추위가 몰아치는군요. 어느 해인들 이맘때쯤이면 회한과 아쉬움이 없겠습니까만 올해가 유독 더 안타까운 것은 저의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요? 2년 전 이 무렵 우리는 다 같이 촛불을 들고 서울 광화문 거리를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구악을 몰아내고 새 시대를 요구하며 무려 연인원 1천700만명이나 모였으니,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뜨거운 그 무엇이 울컥 올라오는 듯합니다. 오로지 그 힘으로 현직 대통령을 파면시키고 새 대통령을 세웠으니 그 자부심과 기대가 오죽했겠습니까? 또한 새 대통령은 후보 때는 말할 것도 없고 당선이 되고도 누누이 촛불혁명 정신을 강조하고 촛불대통령을 자임했으니 우리의 믿음과 사랑이 가득했던 게 사실이었죠.

그런데 2년이 지난 지금 여러 면에서 그 믿음을 스스로 의심해야 하고, 심지어 다시 촛불을 들어야 하는 것이 아닌지 고민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으니, 옷깃을 파고드는 샛바람이 더욱 차게 느껴지는 건 당연한 일인 것 같습니다.

물론 가장 큰 원인은 자유한국당이라는 거대한 반민주 기득권 세력입니다. 자본주의를 표방하며 외세에 의한 분단에 기대어 북한을 적대시하면서 거짓 이념으로 국민을 속이고 겁박하며 세력을 유지해 온 거악이요 적폐 중의 적폐지요. 거기에 뿌리박고 가짜뉴스를 남발하며 천둥벌거숭이처럼 아스팔트 위를 누비는 태극기부대는 이 세력의 좀비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촛불이 넘실거릴 당시에는 꼬리를 감추고 낯빛을 바꾸고 납작 엎드리며 오히려 박근혜 탄핵에 힘을 보탰던 그 무리들이 어느 틈에 다시 친박이란 이름으로 다시 모이며 권토중래를 외치고 있으니, 그들의 정치적 비윤리를 탓하기에 앞서 그렇게 하도록 방치한 우리의 잘못과 무능을 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촛불정권인 문재인 정부의 초기 최대 과제였던 적폐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해방 직후 친일세력 청산 실패로 이승만 독재체제가 뿌리내리며 우리 정치는 말할 것도 없고 민중의 삶이 질곡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교훈마저 잊은 것 같아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제대로 된 적폐청산이란 적폐 대상을 가려내어 과감한 수술요법으로 도려내는 것인데, 그렇게 하려면 그 수술을 견뎌 낼 만한 기초체력을 확보해야 합니다. 그것은 정치적 지지기반을 튼튼히 하며 우호세력에 힘을 주어 활발하게 활동하게 하는 일입니다. 비판세력이라 하더라도 오히려 근본적 신뢰를 확고히 하며 함께하는 여유와 자신감을 가져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노동에 대한 관점이나 태도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특히 민주노총에 대해서는 더 그런 것 같습니다. 말로는 노동존중·노동중심을 표방하면서도 실제로는 거기에 못 미치고 있습니다. 최저임금·노동시간 등 노동 주요 현안에 대한 정책이나 풀어 가는 방식도 어설프기만 합니다. 그러니까 몰이해와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공무원이나 전교조 등의 노동기본권 문제는 그렇게 절차의 문제로만 보고 소모전을 펼 일이 아니지요. 촛불정신이 과감히 발휘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이러는 사이에 반 촛불세력은 독버섯처럼 여기저기서 돋아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가 가기 전에 이것만은 꼭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 번째가 선거법 개정입니다. 사실 촛불혁명의 요구는 조속한 헌법 개정이었습니다. 혁명의 완수는 사회변혁으로 이뤄지는데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헌법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온전한 헌법 개정 절차를 위해서는 먼저 대의민주주의가 제대로 이뤄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당리당략을 떠난 국민의 표심이 온전히 반영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돼야 합니다.

두 번째는 박용진법으로 이름 붙여진 유치원 3법이 반드시 처리돼야 합니다. 그걸 그대로 두고는 우리 사회가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3포시대의 인구절벽은 우리의 미래를 캄캄하게 하고 있습니다. 자기결정권이 미약한 어린아이를 내팽개치는 사회는 이미 중병을 앓는 사회입니다. 미래(희망)가 없는 병든 사회는 이미 죽은 사회죠. 12월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통과되도록 국민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합니다.

한마음으로 든 촛불이 새로운 현실을 만든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했습니다. 우리가 함께 걸었던 그 길이 새로운 길이 되는 것도 보았습니다. 진정한 노동자는 힘을 모아 길을 찾고 길이 안 보이면 새 길을 낸다고 하는데 그걸 ‘아리아리’라고 한답니다. 우리 모두 외칩시다. “아리아리 꽝!”

전태일재단 이사장 (president11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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