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명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수석전문위원

광주광역시가 2014년부터 추진한 프로젝트 광주형 일자리가 최근 현대자동차의 투자유치 결정을 앞두고 ‘임금·단체협약 5년 유예 조항’에 노동조합이 동의하지 못해 좌초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명백히 잘못된 해석이다.

먼저 현재 문제가 되는 조항이 있는 이른바 ‘노사상생발전협정서’ 성격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광주시가 주도하는 지역노사민정협의회가 임금 결정방식, 근로시간 원리, 임금구조 원리, 노사상생을 위한 협력방안 등을 내용으로 하는 협정서를 체결하고 투자자인 현대차가 이 조건에 동의해 투자를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신설 합자법인 노사협의회를 특별히 노사상생협의회로 칭하고 활동방식과 해당 법인의 다양한 근로조건을 이 협정서 약속에 의거해 정하도록 해 본다는 거다.

이는 우리 사회에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노사관계 모델이다. 그간 노사민정협의회는 법정기구로 존재했지만 사실상 개별기업 노사협의회를 규정할 힘은 전혀 지니고 있지 않았다. 이번에 광주에서 도모되고 있는 실험은 노사민정협의회로 하여금 개별기업 내 노사협의회에 적지 않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모델이다. 협력과 상생의 보장기제로 한 번도 그런 역할을 수행해 본 적 없는 노사민정협의회에 막중한 역할을 부여하면서 ‘협력의 보증자’로서 역할하게 하는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노사관계 모델의 새로운 실험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노사민정협의회가 지방정부에 의해 주도되도록 이미 제도적으로 규정돼 있기 때문이고, 광주형 일자리에서 지방정부인 광주시는 제1 투자자로서의 역할도 동시에 수행하기 때문이다. 즉 제2 투자자인 현대차는 제1 투자자이면서 노사민정협의회 주관자인 광주시로 하여금 타당한 투자조건을 마련해 줄 것을 요구하고 협의회에서라도 그것을 정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 번도 노사민정협의회가 상생협정서라는 협정을 맺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 내용의 구속력이 어떠한 정도와 근거를 갖는지 명확하지 않다. 노사민정협의회와 신설법인 상생협의회의 관계도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다. 당연히 노사민정협의회가 체결한 상생협정서를 개별기업 상생협의회가 얼마나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관해서 명확한 규정도 관행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불확실성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합의하려고 하니 오해가 발생할 소지가 매우 클 수밖에 없다.

이번에 협정서 체결 과정에서 결정적인 문제가 된 협정서 1조2항의 내용도 이러한 구조적 불명확함 속에서 발생한 오해를 잘 풀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해당 조항에 따르면 “각 사업장별 상생협의회는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근로자참여법)상 원칙과 기능에 근거해 운영되도록 하고, 신설법인 상생협의회 결정사항의 유효기간은 조기 경영안정 및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해 누적 생산목표 대수 35만대 달성시까지로 한다”고 돼 있다.

문제는 “상생협의회 결정사항”이 무엇이냐는 것과 그 유효기간을 “35만대 달성시까지로 정하는” 주체가 누구냐는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어떤 취지에서 이 문항을 협정서에 삽입했느냐는 거다. 전반적인 체계상 상생협의회는 근로자참여법에 규정된 노사협의회를 의미하며, 따라서 상생협의회 결정사항은 법에 규정돼 있는 의제들일 수밖에 없다.

근로자참여법은 노사협의회가 다루는 의제를 협의사항·의결사항·보고사항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법률에 협의사항으로 지정된 것은 총 16개 항목인데 그중에서 중요한 것은 생산성 향상과 성과배분, 근로자의 채용·배치 및 교육훈련, 인사·노무관리 제도 개선, 경영상 또는 기술상 사정으로 인한 인력의 배치전환·재훈련·해고 등 고용조정의 일반원칙, 작업과 휴게시간의 운용, 임금의 지불방법·체계·구조 등의 제도개선 등이다(근로자참여법 20조1항). 그리고 근로자참여법 20조2항에서는 1항의 16개 협의사항을 법 정족수 규정에 따라 의결할 수 있는 것으로 돼 있다.

노사상생협의회 결정, 노사 임단협과 무관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근로참여법상 노사협의회 활동은 법 5조에 명시돼 있듯 노동조합활동과 단체협약 체결에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거다. 즉 근로참여법은 임금과 단체협약에 관한 것이 아니다. 임금과 관련해서도 임금의 지불방법, 체계, 구조 등과 관련한 사항들 정도를 다룰 수 있을 뿐이지 노사협의회를 통한 ‘협의’의 장은 ‘교섭’의 장이 아니다. 노동조합이 있을 경우 과반수노조라면 자동적으로 노사협의회에서 근로자대표가 되지만, 그렇다고 노사협의회에 와서 교섭을 하는 것이 아니다. 교섭과 관련해서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 별도로 규정이 있고 그에 근거해 교섭의 장이 열리는 것이다. 근로자참여법은 교섭과는 무관하며 영향을 줄 수 없다.

상생발전협정서에는 근로자참여법상 협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들 몇 가지가 굵직하게 담겨 있다. 현대차와 같이 노사관계 실패의 경험을 안고 있고 의심 많은 투자자라면 적어도 그 내용들이 투자손익분기점을 넘을 때까지는 유지됐으면 하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충분히 미루어 짐작이 가능하다. 이런 바람은 노사민정협의회가 체결하는 협정서지만 적어도 자신들이 투자하는 신설법인에서만큼은 그 유효기간을 길게 보장받고 싶은 마음으로 이번에 문제가 된 협정서 1조2항에 고스란히 담겨 드러났다.

문제는 그 표현이 매우 불친절하고 거친 데에 있다. 현행 협정서대로라면 ‘상생협의회의 결정사항’이라고만 돼 있기 때문에 근로자참여법상에 의결이 가능한 조항들 일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그렇게 된다면 이는 상생협의회라는 기구를 얼려 버리는(frozen) 효과를 낳을 것이다. 이는 이 조항의 애초 취지와 다르다.

노사민정협의회에 참여하는 노동조합 대표로서는 이에 대한 충분한 배경설명과 적절한 표현 정돈 없이 협의회 개최 전날 밤 10시에 이 문안을 미리 받아 보고서 그대로 넘어갈 수 없었을 것이다. 노사협의회를 통해 노조활동을 제약해 왔던 과거 우리네 후진적 노사관계 경험에 대한 잔상도 남아 있고, 이미 신뢰가 깨진 상태에서 이를 “임단협도 못하게 하냐”고 다소 과장되게 반발하면서 거부하고 나섰다.

결국 노사민정협의회에서는 35만대를 빼고 상생협의회 결정사항의 유효기간을 별도 고려를 통해서 하는 걸로 추상화시키는 쪽으로 의결했지만, 이번엔 현대차가 수용불가 입장을 밝혔다. 상생발전협정서를 현재 체결된 대로 유지시킬 경우 현대차과 광주시와의 투자협정서 체결이 불가능하게 됐다.

이후 언론에서는 노사의 대립이 팽팽해 광주형 일자리가 성사되기 어려울 것같이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설명했듯 답을 내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을 수 있다. 일단 노사 모두의 불신을 해소하면서 이 문제에 대한 사측의 진정한 의도와 노동계의 오해를 풀어 나가면서 접근하면 충분히 답은 있다고 본다. 차분히 답을 찾으면 곧 길이 보일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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