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1997년 11월 외환위기 전후를 다룬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 화제다. 이 영화는 위기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경제관료, 위기를 이용해 떼돈을 벌려는 투기꾼, 그리고 위기 속에서 회사를 지키려 악전고투하는 중소기업 사장이 주인공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당시의 중요한 행위자 하나가 빠져 있다. 바로 민주노총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97년 12월에 2차 구제금융을 제공할 때 내걸었던 핵심 조건이 민주노총의 합의였다. 긍정적 의미에서든, 부정적 의미에서든 노동자운동은 한국 경제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행위자다. 우리가 국가부도의 날을 재평가한다면 당시 민주노총이 무엇을 했고, 또 무엇을 하지 못했는지도 기억하고 재평가해야 한다.

97년 외환위기의 직접적 원인은 외환보유고 고갈이었다. 그리고 외환보유고가 고갈된 이유는 계속되는 경상수지 적자와 대기업의 해외차입 증가였다. 80년대 후반 3저 호황이 끝나자 90년대 초부터 수출이 감소했고, 특히 95~97년에는 유례없이 무역적자가 커졌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재벌대기업들은 중복과잉투자를 일삼으며 해외차입을 늘렸다. 정부도 비슷했다. 노태우·김영삼 정부는 “단군 이래 최대”라는 수식어가 붙는 사업들을 경기부양책으로 밀어붙였다. 지금까지도 문제가 되는 대우그룹 계열사 부실과 새만금사업이 당시 90년대 재벌과 정부의 방종(放縱)을 대표한다. 재벌과 정부가 이렇게 부채를 늘릴 수 있었던 것은 당시 급속도로 확장된 미국의 금융세계화와 한국 정부의 금융시장 개방 덕분이었다.

95년 출범한 민주노총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을 표방했다. 민주노총은 급진적 사회변화 대신 사회의 민주적 개혁을 지향했고, 국민적 통합에 노동조합이 역할을 할 수 있기를 원했다. 민주노총 창립을 주도한 것은 재벌대기업 노조와 공공기관 노조들이었는데 90년대 이 부분이 크게 성장한 것을 감안하면, 이런 지향은 객관성 여부를 떠나 이들 노조가 수용하기에 이념적으로 수월하기도 했다.

하지만 민주노총의 이런 희망은 1년도 되지 않아 시련에 빠졌다. 김영삼 정부는 96년 4월 사회적 대화기구의 하나로 노사관계개혁위원회를 만들어 3제(정리해고제·파견제·탄력근로제)와 3금(복수노조 금지·정치활동 금지·3자 개입 금지)의 교환을 주장하더니, 12월26일 국회에서 3제를 날치기 통과시켰다. 민주노총의 뒤통수를 제대로 후려친 것이다. 민주노총은 즉각 총파업에 돌입했다. 한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조직된 총파업이었다. 노동자의 분노에 놀란 정부는 야당에 노동법 재개정을 제안했지만, 딱 반보만 물러섰다. 97년 3월 여야는 정리해고제 시행을 2년 유예하는 선에서 노동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런 와중에 97년 11월 외환위기가 터졌다. 국가부도가 카운트다운에 돌입한 상태에서 IMF는 추가 구제금융 대가로 정리해고제 실시를 요구했다. 그것도 정부의 일방적 추진이 아니라 노사정 합의로 98년 1월까지 추진하라고 요구했다. 김대중은 대통령 당선자 신분으로 97년 12월29일 민주노총 집행부를 만났다. 98년 1월10일에는 여당 대표가 민주노총 사무실을 방문했고, 12일에는 IMF 총재 캉드쉬까지 민주노총 집행부를 만났다. 대통령부터 IMF 총재까지 민주노총 집행부에게 이야기한 것은 단 하나였다.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해 정리해고제를 합의해야 국가부도 사태를 막을 수 있다는 협박이었다.

국가부도를 협상 테이블에서 받은 민주노총은 98년 1월15일 노사정위 참여를 결정했다.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은 노사정위와 같은 사회적 합의기구 참여를 중요한 전략으로 삼는다. 하지만 98년의 노사정위는 사회적 협박기구에 가까웠다. 그것은 민주노총이 정리해고제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가가 부도난다는 전제하에서 만들어진 기구였다. 민주노총은 우여곡절 끝에 2월6일 노사정위에서 정리해고제와 파견제를 합의했다.

민주노총은 노사정위 참여로 잃은 것이 많았다. 교원의 노조결성권과 실업자의 초기업노조 가입 인정 등을 따내긴 했지만 정리해고제와 파견제의 파괴적 효과가 이를 상쇄하고도 남았다. 98년 여름에 현대자동차에서 정리해고가 실시됐고, 98년에만 10만명 넘는 노동자가 정리해고를 당했다. 정리해고를 무기로 희망퇴직 등을 통해 강제로 해고된 노동자는 이보다 몇 배 많았다.

하지만 이런 배신에도 민주노총은 어떻게든 사회적 대화기구를 제대로 만들고 싶어 했다. 민주노총은 98년 2월 말 노사정위를 탈퇴했지만 그해 6월 총파업에서 실질적인 노사정위 건설을 요구로 내걸었고, 7월 말에 노사정위에 다시 참여했다. 물론 노사정위에서는 민주노총의 요구가 무시됐다. 민주노총이 정리해고제와 맞교환하면서까지 얻어 낸 교원의 노동기본권은 단체행동권을 허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논의됐고, 정부의 구조조정·민영화 정책은 노동조합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됐다. 민주노총은 99년 2월 노사정위를 다시 탈퇴했다.

여기까지가 <국가부도의 날> 영화에 나오지 않았지만, 국가부도 전후로 한국 사회 중심에 있었던 민주노총 이야기다.

그렇다면 오늘날 민주노총은 어떨까? 경제침체가 심상치 않은 가운데 문재인 정부는 탄력근로제 확대라는 노동신축화 정책을 들고나왔다. 새로 만들어진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1번 안건은 탄력근로제 확대다. 집권여당은 전교조 법내화,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 등을 빅딜 카드로 내놓았다. 물론 자본은 이마저도 누더기로 만들려고 사업장 내 쟁의행위 제한 조치를 들이밀고 있다. 그럼에도 민주노총 집행부는 어떻게든 경사노위에 참여하려 한다. 사회적 대화를 통한 국민적 통합, 더불어민주당 정부는 그래도 다르다는 좌절된 희망이 다시 나온다. 역사는 이렇게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희극으로 반복되고 있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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