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이명박 정부 청와대의 ‘인권위 블랙리스트’를 확인하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고 밝혔다. 고 우동민 장애인활동가에게 인권위가 인권침해를 한 것을 시인하고 사과했다.

인권위는 11일 오후 서울 중구 인권위 브리핑룸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7~11월 4개월간 자체 진상조사를 거쳐 이 같은 결과를 확인했다”며 “세계인권선언 70주년을 맞은 지난 10일 전원위원회를 열고 이같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인권위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청와대는 2008년 10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와 관련해 경찰이 인권침해를 인정한 뒤 인권위 블랙리스트를 본격적으로 작성했다.

인권위는 “인권위 블랙리스트는 2008년 경찰청 정보국이 작성한 것과 2009년과 2010년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실에서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특히 당시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이 2009년 10월 인권위 사무총장에게 ‘이명박 정부와 도저히 같이 갈 수 없는 사람’이라며 촛불집회 직권조사 담당조사관이었던 김아무개 사무관을 비롯해 10여명이 포함된 인사기록카드를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인권위는 “인권위 블랙리스트는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 관련 인권위 업무활동에 대해 불만을 가진 이명박 정부가 진보성향 시민단체 출신 인권위 직원을 축출하고 인권위 조직축소를 통해 미처 축출하지 못한 직원을 사후관리하고자 작성·전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 인권위 조직과 정원을 축소하는 직제개편을 단행했다. 인권위 상임위원들이 연쇄 사퇴하고 국제인권기구가 잇따라 우려를 표명했지만 결국 인권위 조직 21%가 축소됐다.

인권위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포함한 관련자들을 검찰에 수사의뢰하고 대통령에게 인권위 독립성 훼손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할 것을 권고하기로 했다. 인권위는 “인권위 블랙리스트와 이를 통한 강제적 인권위 조직축소는 인권침해는 물론 인권위 독립성을 훼손한 행위”라며 “형법상 직권남용에 의한 권리행사방해죄가 해당될 여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인권위는 2010년 겨울 장애인인권활동가들의 인권위 점거농성 과정에서 인권위가 활동보조 지원을 받을 장애인 권리를 과도하게 제한하고 최소한의 체온 유지를 위한 난방조치를 소홀이 해 고 우동민 활동가를 비롯한 장애인활동가들의 인간 존엄과 가치를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모든 사람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고 인권옹호자를 보호해야 할 인권위가 인권침해를 했고 지난 8년간 진상파악 없이 책임을 부인하는 태도로 일관했다”며 “고 우동민 활동가 유족과 인권활동가, 국민에게 사과하고 향후 고 우동민 활동가 명예회복을 위한 조치 등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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