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이렇게 칼럼 제목을 적고 보니, 너무도 식상하다. 그럼에도 뻔한 주제를 쓰겠다고 이렇게 꺼내 든 것은 게으른 탓이 크다. 지난달이었다. 한 경제신문사에서 이에 관한 찬반의 지상토론을 게재하겠다며 청탁을 했다. 당연히 나는 찬성하는 글을 써서 보냈다. 그런데 전날 갑자기 해당 꼭지가 취소됐다고 신문사에서 통보가 왔다. 졸지에 PC 자판을 두드리면서 보낸 한두 시간이 허무해져 버렸다. 그리고 오늘 그 글에 보태 이 글을 쓰기로 작정했으니, 나는 얼마간의 시간을 벌 수가 있을 게다. 그러니 식상하고 뻔하다고 비난해도 내가 감수할 몫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미게재 글이라서 재활용해도 누가 뭐라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해고자·실업자도 노동자’라고 내가 쓴 것은 해고자·실업자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는 노동자라고 말하기 위한 것이었다. 벌써 몇 십 년 전부터 이 나라 노사정이 논의해 온 주제다. 지난 촛불대선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결사의 자유 등에 관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과 실직자·구직자 등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공약해서 금방이라도 이 나라에서 인정될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도 논의하고 있는 주제다.

2.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ILO 협약 비준을 위해 해고자·실업자의 노조 가입에 관해서 논의하고 있다. 노조법 등 우리법이 해고자·실업자의 노조 가입을 제한하고 있어 결사의 자유 등 ILO 핵심협약 비준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영민한 독자들은 해고자·실업자의 노조 가입을 제한한 법이 ILO 협약에 반한다는 것을 바로 알아챌 것이다. 그렇다. 이렇게 국제노동규범이 노동자가 노조할 단결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음에도, 우리의 경우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근로자가 아닌 자’로 취급해서 노조 가입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노조법은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에는 노동조합으로 보지 않는다면서, 다만 “해고된 자가 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한 경우에는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판정이 있을 때까지는 근로자가 아닌 자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그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2조4호 라목). 노조 조합원인 근로자라도 사용자에게 해고되면 부당노동행위 구제를 신청했을 경우 중앙노동위원회 재심판정까지만 근로자로 취급해서 그가 가입한 노조를 노조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니, 이러한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 해고자·실업자는 노조에 가입할 수 있는 근로자가 아니라고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 법원은 초기업별노조에는 재직 근로자가 아닌 구직 중인 실업자의 노조 가입이 인정된다고 판결했지만, 기업별노조에서는 심각하게 문제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3. 우리의 경우 과거 국가가 법으로 기업별노조만 허용했다. 이로 인해서 조합원은 해당 사업장 근로자만 조직대상으로 노조가 설립돼 운영해 왔다. 이러한 연유로 해고자·실업자의 노조 가입을 제한하고 있는 노조법 규정이 이 나라 노동자의 단결할 자유를 제한하는 ‘악법’으로 남아 ILO 핵심협약인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에 반하는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는, 즉 노조법상 근로자는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해 생활하는 자”이므로(노조법 2조1호), 어떤 사업장에서 근무하다가 해고·사직 등으로 퇴직해 취업해 있지 않다고 해서 노동자가 아니라고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정의규정을 굳건하게 밀어 나간다면 해고자도, 실업자도 노동조합을 조직·가입할 수 있다고 볼 수가 있다. 하지만 이 대한민국의 노조법 집행은 그렇지 않았다. 법원·고용노동부 등 국가권력은 단결의 자유 등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행사를 보장하는 데 굳건하기는커녕 국민경제 발전 운운하며 사용자 자본을 위해서 노동자의 자유 행사를 제한·금지하는 법 집행을 해 왔다. 그래서 더는 노조법상 근로자 정의규정만으로는 어찌해 보지 못할 만큼 확고하게 노동자의 자유는 박탈당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에는 노동조합으로 보지 않는다는 노조법 2조4호 라목과 일정한 해고자에 예외를 인정한 그 단서를 둘러싸고서 어떻게 개·폐할 것인지를 논의하고 있는 실정이다. 노조법상 근로자이기만 하면, 해고자·실업자라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다고 하면 그만인 것을 지겹도록 노사정이 논의하고 있는 지경이다.

4. 노동조합은 단순히 특정 사업장 사용자를 상대로 한 교섭과 쟁의를 위해 활동하는 걸 넘어서 노동에 관한 법·제도 및 정책에서 노동자의 이해를 관철하기 위해 활동한다. 우리 노조법도 노동조합을 ‘근로자가 주체가 돼 자주적으로 단결해 근로조건의 유지·개선 기타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조직하는 단체 또는 그 연합단체’라고 규정해 노동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노조법 2조4호). 이렇게 법이 선언한 노동조합의 활동 목적을 고려해 보더라도 취업해 있는 노동자뿐 아니라, 해고된 노동자, 구직 중인 실업상태 노동자까지도 가입해 자신의 지위 향상을 도모할 수 있도록 해야 마땅하다. 근대자본주의 초기부터 노동조합은 본래부터 특정사업장 재직근로자만을 대상으로 조직해서 활동해 오지 않았다. 직종별·업종별·산업별로 조직돼 초기업단위로 활동하는 것이 본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와 일본 등에서만 예외적으로 기업별노조가 설립돼 활동해 왔던 것이고, 유럽·미국 등에서는 기업별노조는 오히려 어용노조로 취급해 배척당해 왔으며, 노동조합은 특정사업장에 취업해 있는 노동자가 아닌 직업적인 노조활동가들이 조직해서 취업해 있는 노동자들을 가입시켜 교섭·활동하는 단체였다. 만약 이런 나라들에서 해고자·실업자가 가입한 노동조합은 노조가 아니라고 본다면 거의 대부분 노동조합은 노조가 아닌 것으로 취급될 것이다. 이런 나라들에서 해고자·실업자를 노조 조합원이 될 수 없도록 하는 우리나라 노조를 본다면, 오히려 그것도 노조냐고 물을 것이다. 해고되고, 실업 상태인 노동자도 분명히 노조할 자유가 있는 노동자라는 데 조금도 의문을 갖지 않는 그들은 이 나라 노동자가 노조할 자유가 인정되지 않고 있다며 경악할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해고자가 가입했다는 이유로 고용노동부가 공무원노조·전교조에 노동조합 설립신고를 반려하고 노조가 아니라고 통보했다는 사실을 말해 주면 대한민국은 노조 탄압국가라고 여길 것이다. 바로 그렇다. 해고된 노동자, 실업상태인 노동자가 가입했다고 노동조합이 아니라고 취급하는 나라는 노동자들이 주체가 돼 자주적으로 조직해 활동하는 노조를 탄압하는 노동후진국인 것이다. 이런 나라에서 국가권력이 해고자·실업자의 노조 가입을 인정하기 위해 즉각적으로 나서지 않고서 제자리에서 외치는 ‘노동존중 사회’ 실현의 구호는 그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

5. 마지막으로 한 가지, 기업별노조라서 해고자·실업자 등 해당 사업장에 취업자가 아닌 노동자의 노조 가입을 법으로 제한할 수 있다는 논의는 더는 듣고 싶지 않다고 덧붙이고자 한다. 이런 논의가 오늘은 경사노위의 노동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에서 사용자측 주장으로 나오고 있다. 공익위원 중에는 노조 가입을 허용하되 위원장은 안 된다는 안을 제시하고 있다. 노조의 조직형태를 따져 기업별노조라서 안 된다는 식의 논의가 이 나라에서는 끈질긴 생명력을 갖고 이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노동자의 단결권에 관한 대한민국헌법 어디에 기업별노조니 초기업별노조니 그 단결체의 형태를 달리해서 보장하고 있단 말인가. 노동자들이 근로조건 향상의 필요에 의해서 단체(노조)를 조직·가입할 수 있는 것이고, 그 조직 대상을 어떻게 정하든 그건 스스로 알아서 할 문제다. 한 사업장에 취업해 있는 노동자만을 조직대상으로 할 수도 있고 해고자까지도 포함할 수도 있으며 한 사업장을 넘어 한 지역, 업종과 산업, 나아가 나라 전체 노동자까지도 대상으로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사용자를 상대로 단체교섭해서 단체협약을 체결하기 위한 노동자단체로서 실질을 가지고 있기만 한다면 노동자의 자유를 보장하는 법은 해고자가 위원장이라도 노동자의 단결의 자유로 보장되는 노동조합임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이 나라에서 더는 식상하고 뻔한 논의를 지켜보기 싫다. 경사노위 논의 자료를 읽으면서 재활용이 아닌가 하고 언제 누구였는지를 떠올렸다. 공익위원까지 포함해서 노사정이 지겹도록 논의해 왔다. 행동해야 할 때 다시 논의해야 한다고 말하면 의지를 의심받는다. 즉각적으로 헌법이 선언한 단결의 자유, 노조할 자유를 보장하라.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