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도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결국 의료민영화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5일 제주도는 외국인만을 진료대상으로 한다는 조건을 달아 영리병원 1호인 녹지국제병원 개설 허가를 내줬다. 이번 결정으로 의료민영화 정책이 가속페달을 밟을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영리병원이 제주에서 전국으로 확대되고, 진료 대상도 외국인에서 내국인으로 넓어지면서 건강보험체계가 흔들리고 의료비가 폭등할 것이라는 비판이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이날 오후 제주도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녹지국제병원과 관련해 내국인 진료는 금지하고 제주를 방문하는 외국인 의료관광객만 진료대상으로 제한하는 조건부 개설 허가를 했다"고 밝혔다. 원 지사는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 결정을 전부 수용하지 못해 죄송하다"면서도 "제주의 미래를 위해 고심 끝에 내린 불가피한 선택인 만큼 어떤 비난도 달게 받고 정치적 책임도 지겠다"고 말했다.

녹지국제병원 진료과목은 성형외과·피부과·내과·가정의학과 등 4개 과로 한정했고, 외국인만을 대상으로 해 국민건강보험법과 의료급여법도 적용되지 않으므로 국내 공공의료체계에는 영향이 없다는 게 제주도측 설명이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영리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병원이 설립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의료체계에 미치는 파장은 상당하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병원은 비영리법인으로만 설립했다. 병원운영을 통해 이익이 발생해도 병원 밖으로 빠져 나가지 못하고 시설이나 인건비·연구비로 재투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영리병원은 이름 그대로 기업처럼 이윤을 남겨 투자자에게 배당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병원을 통한 돈벌이가 본격화되는 셈이다.

당장 인천 송도국제도시가 들썩이고 있다. 인천시는 2008년부터 송도에 300병상 규모의 국제병원을 유치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부지를 마련했지만 영리병원 논란이 거듭되면서 10년째 공터로 남아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8월 경제자유구역위원회 회의를 열어 송도에 비영리병원도 들어설 수 있도록 방향을 틀었다. 영리병원이 비단 제주도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제주도는 '돈벌이병원' 논란을 피하기 위해 외국인으로 진료 대상을 한정했지만 벌써부터 의료법 15조(진료거부 금지) 위반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제주도는 "보건복지부가 '사업 신청 당시 외국인 의료관광객 대상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허가조건을 명시한다면 내국인에 대한 진료 거부가 가능하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변혜진 보건의료단체연합 기획실장은 "현행법에 없는 조항을 들어 허가를 내줬다"며 "외국인만 진료한다는 녹지국제병원 허가 내용은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노동·보건의료 단체들은 "원희룡 제주지사가 제주도민 반대에도 영리병원 개설을 허가했다"며 퇴진을 요구했다. 유재길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은 "도민 의견을 무시한 원희룡 지사의 직권남용에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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