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혜원 변호사(법률사무소 마중)

대상판결 : 대법원 2018. 8. 30. 선고 2018두43330 판결


1. 사실관계

원고는 단열재 시공작업을 전문적으로 하는 근로자였다. 여러 단열재 시공작업 현장을 다니다 보니 시공할 수 있는 근로자 인력망을 갖추게 됐고, 단열시공 작업이 필요한 건설현장에 시공 근로자들을 팀으로 조달해 주는 역할을 하게 됐다. 특히 단열재 시공의 경우 단열재를 판매하는 업체가 시공이 필요한 건설현장 시공사에 단열재를 납품하면서 시공작업까지 모두 알아서 해 주기로 계약을 하는데, 단열재 판매업체는 단열재를 시공할 수 있는 인력과 기술은 갖추지 않았기 때문에 단열시공 팀으로부터 ‘노무’ 만을 제공받아야 했다.

이 사건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건설회사인 A는 발주자로부터 아산시 소재 신축공사를 도급받고, 단열재 납품업체인 B와 신축공사 중 천장 열반사 단열재 납품 및 시공에 관한 하도급계약을 체결했다. 원고는 B와 사이에 시공면적 400제곱미터, 1제곱미터당 3천원을 기준으로 하루 동안 천장 단열재 시공작업을 수행하기로 약정했다. 원고는 2016년 9월23일 단열재 시공 팀원을 데려와 공사를 수행했는데, 1층 퇴비사 천장 데크에 단열재 부착작업을 하기 위해 다른 근로자 1명과 함께 샌드위치패널 지붕에 올라가 작업을 하던 중 지붕이 무너지면서 2.7미터 아래 바닥으로 추락하는 사고를 당했다.

원고는 위 사고로 우측 후두골 골절 등의 상해를 입고 근로복지공단에 최초요양급여 신청을 했으나, 근로복지공단은 원고가 단열공사를 목적으로 사업자등록을 마친 개인사업자이므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업무상재해 인정요건인 근로기준법 2조에 따른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불승인했다.

2. 1·2심 원고 패소 판결

1심은 ① 원고는 B의 연락을 받고 이 사건 공사에 참여하면서 B나 A에게 몇 명을 고용하거나 현장에 데려오라는 이야기를 듣는 등의 지시나 감독을 받은 바 없이, 원고가 적정 인원을 데리고 가 작업을 했다는 점 ② 그에 대한 일당도 원고가 직접 지급하기로 했다는 점 ③ A에서 원고와 팀원들로 하여금 패널 천장 부분에 대한 단열재 시공을 지시한 것은 계약 내용에 따라 단열재가 시공돼야 할 부분을 특정하기 위한 것으로 보일 뿐 구체적인 작업내용 지시나 감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 ④ 원고가 B에게 지급받기로 약정한 금액은 원고가 제공하는 근로의 내용이나 시간과는 관계없이 시공면적이라는 객관적으로 나타난 계약의 이행 여부에 따라서 지급이 결정되는 것일 뿐 원고가 인력을 추가로 투입한다고 해도 대금이 증액될 수 없다는 점에서 원고가 지급받은 보수가 근로제공의 대가로서의 임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 ⑤ 오히려 단열재 시공작업을 완료하기만 하면 그 업무 수행이 완료된다는 점에서 도급계약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을 근거로 원고가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B 또는 A에 근로를 제공한 근로자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원고측은 2심에서 이 사건 공사현장에서 함께 일한 근로자를 증인으로 내세웠다. 증인은 원고가 B에게 받기로 한 보수는 공사인력의 추가 투입으로 인해 재산정된 금액이고, 다른 팀원뿐 아니라 원고마저도 B나 A에게 단열재 시공을 위한 도면을 받아 보기는커녕 본 적도 없으며, 원고가 원·하청업체들의 요구에 따라 사업자등록을 낼 수밖에 없었다는 등의 결정적인 증언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심 재판부는 1심 판결문을 인용하면서 원고를 근로자로 보지 않았다.

3.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

대법원은 8월30일 원심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준용하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있다며, 원고는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한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크다는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① 공사에 관한 보수가 총 다섯 명의 인력이 필요하다는 계산을 바탕으로 이를 면적당 금액으로 환산해 제곱미터당 3천원으로 산정했으므로, 원고와 그 팀원들이 지급받기로 한 보수는 그 산정 경위 등에 비춰 시공면적보다는 공사에 투입될 인력을 기준으로 산정된 바 근로제공 자체에 대한 대가로서의 성격이 큰 점 ② 원고는 공사에 사용된 단열재 등 자재 구입비용을 부담하지 않았고, A에 단열재를 납품한 B에게 단열재 시공작업을 해 줄 것을 요청받고 참여한 점 ③ A의 현장작업지시자들은 원고에게 작업현장 도면을 건네주거나 보여 주지 않고 단열재 부착 위치와 방법 등 원고가 수행해야 할 구체적인 업무 내용을 직접 지시하는 등 업무수행 과정에서 원고와 그 팀원들에게 상당한 지휘·감독을 한 점 ④ 이 사건 공사 이전에 원고가 사업자등록을 하고 부가가치세를 신고·납부한 적이 있으나 이 사건 공사와 관련해서는 세금계산서를 발행하지 않았을 뿐더러 그러한 사정만으로 근로자성이 부정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며 원고를 근로자로서 인정했다.

부가적으로 원고가 단열공사에 투입된 인력 전체의 보수를 일괄해 받은 다음 다른 팀원들에게 지급하거나 각자의 계좌로 보수가 직접 지급되기도 한 점, 이 사건 공사의 경우도 원고가 총 일당을 일괄 받은 다음 각자에게 지급하기로 돼 있던 점이 인정돼 원고는 공사에 투입될 인력을 모집하고 임금을 대리 수령했을 뿐이라는 사실도 원고의 근로자성을 판단하는 요소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4. 이 사건과 대법원 판결의 의미

건설현장에는 소위 오야지 혹은 십장 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건설현장 관행상 공사현장에 투입될 근로자들을 모아서 팀으로 조달하고, 근로자들을 대신해 공사업체와 계약을 체결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많은 수의 공사업체들이 비용절감을 위해 사업자등록 및 세금계산서 발행이 가능한 근로자 팀을 선호했기 때문에 십장들은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공사업체들의 비위를 맞춰 공사현장에 쉽게 고용되기 위해 본인 명의의 사업자등록을 내고 개인소득세를 신고하게 됐다. 즉 십장은 실질적으로는 본인이 조달한 일용직 근로자들과 마찬가지로 원·하청 업체들의 지휘·감독 아래 일당을 받고 작업을 하는 근로자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형상 개인사업을 영위하는 (하)수급인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십장이 근로자인지 여부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확한 법적 기준이 정립되지 못한 상황에서 십장은 작업 중 사고를 당하더라도 근로자성이 부인돼 산업재해보상보험법으로부터 그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던 바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건설현장 십장으로 볼 수 있는 원고를 근로자로 인정한 이번 대법원 판결은 십장이 근로자로 인정받기 위한 요건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대법원은 십장의 근로자성에 대해 계약 명칭이나 사업자등록 여부 등의 형식적인 기준이 아닌 ① 원자재·재료를 누가 조달했는지 여부 ② 원·하청업체들로부터 구체적·개별적인 지휘·감독을 받는지 여부 ③ 보수가 시공면적이 아닌 공사에 투입될 인력을 기준으로 산정됐는지 여부 등 실질적인 기준들을 바탕으로 판단했다. 특히 보수의 성격이 근로 자체의 대상적 성격이라고 볼 수 있는지 여부와 관련해 단열재·도배·타일 시공현장처럼 시공면적과 노무 제공량이 상관관계를 나타내는 현장에서는 실무적으로 우선 총일당 보수를 산정한 후 노무 제공량의 용이한 측정을 위해 그 보수를 평당 가격 또는 제곱미터·세제곱미터당 가격으로 다시 환산해 표기하는 방법을 사용한다는 점이 반영돼 인력 충원에 따라 보수액이 달라질 수 있는 실무적 행태가 인정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법원 판결을 통해 어쩔 수 없는 여건상 사업자등록을 낸 십장이라고 하더라도 보수가 투입될 인력을 기준으로 산정됐는지 여부 등의 구체적인 사실관계만 입증할 수 있다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돼 산업재해보상보험법 보호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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