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법원이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샘플관리업무를 하다 발병한 백혈병도 업무상재해로 인정했다. 웨이퍼를 직접 가공하는 공정이 아니어서 발암물질에 노출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한 역학조사는 중대한 하자가 있어 신뢰하기 어렵다는 입장도 내놓았다.

4일 반올림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서울행정법원 행정6단독(판사 심홍걸)은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에 걸린 A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이같이 판결했다. A씨는 만 18살이던 2003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반도체 핵심 소재인 웨이퍼 샘플을 관리하고 불량을 검사하는 업무를 했다. A씨는 불량 웨이퍼를 수거하기 위해 일주일에 3~4일, 하루에도 수차례씩 웨이퍼 가공공정을 비롯해 모든 설비 라인을 출입했다. 그러다가 2010년 근무 도중 황달증상을 보이며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고,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근로복지공단은 A씨가 산재요양 신청을 한 지 4년 만인 지난해 3월 불승인 판정을 내렸다. 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역학조사와 삼성전자의 작업환경측정 결과를 토대로 A씨가 발암성 물질에 노출될 가능성이 낮다고 본 것이다.

법원 판단은 달랐다. 법원은 "A씨가 근무 내내 웨이퍼를 수거하기 위해 제대로 보호장비를 갖추지 못한 채 웨이퍼 가공공정에 수시로 출입하거나 체류했을 것"이라고 판시했다. 이어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A씨가 수행한 샘플관리업무·불량분석업무 등 세 가지 업무만을 중심으로 역학조사를 했을 뿐 웨이퍼 가공공정 등에 대한 직업환경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중대한 잘못을 저질러 역학조사 결과를 신뢰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작업환경측정제도는 일정한 시기 각 공정, 작업 장소별로 1회 측정하는 방식으로 실제 작업환경측정 결과로서 한계가 있다"며 "반도체산업 여성노동자들의 백혈병 발병률이 일반인에 비해 2.7배 높게 나온 점 등을 고려하면 업무상질병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박애란 변호사(법조공익모임 나우)는 "가공라인 직접업무 담당자가 아니어도 가공라인을 출입·체류하면서 발암물질에 노출됐을 가능성까지 폭넓게 인정한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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