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건의료노조

"언제까지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고문에 가슴을 졸여야 하는지 이제는 정말 지치네요."

전남대병원에서 청소미화 업무를 하는 김종숙(58)씨는 “올해는 진짜 정규직이 될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 아무런 대책도 나오지 않아 속이 탄다”고 말했다.

김종숙씨뿐만 아니다. 3일 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전남대병원에서 청소와 시설관리·주차업무를 하는 김씨 같은 간접고용 노동자는 600명에 이른다. 이들은 지난해 9월 정부가 ‘공공병원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내놓은 데 이어 올해 9월 전남대병원지부가 일주일간 파업을 한 끝에 병원측과 간접고용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합의를 이끌어 내면서 ‘파견·용역 인생’은 올해로 끝날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병원측은 지난달 27일에서야 “‘노·사·전문가협의기구’를 구성해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를 논의하자”는 공문을 보내왔다.

14개 국립대병원 눈치 보며 시간 끌기
간접고용 비정규직 4천여명 ‘희망고문’


강신원 노조 광주전남지역지부장은 “병원측이 이제 와서 노·사·전문가협의기구를 구성하자고 하는 것은 올해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안 하겠다는 소리나 다름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 지부장은 “지난 9월 전남대병원 원청 노사의 합의에 따라 보건의료노조 ‘공공병원 파견·용역직 정규직 전환에 따른 표준임금체계 가이드라인'을 참고해서 임금이나 근속인정 여부 등 세부사항만 결정하면 되는데 병원측이 이를 부정하고 정규직 논의를 원점으로 되돌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남대병원이 노·사·전문가협의기구 구성을 제안한 것은 제안 바로 하루 전인 지난달 26일 서울대병원에서 잠정합의안이 나온 것과 무관하지 않다. 당시 서울대병원 노사는 본원·보라매병원·강남센터에서 필수적인 업무를 하는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고용승계한다는 지난해 노사 합의를 재확인했지만, 직접고용 합의로 이어지진 못했다. 대신 비정규직 당사자가 대표로 참여하는 노·사·전문가협의기구 합의가 있기 전 병원측이 일방적으로 자회사 전적을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국립대병원의 대표 격인 서울대병원이 직접고용에 나서지 않자 다른 국립대병원들도 눈치를 보면서 시간 끌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실제로 지금까지 전국 14개 국립대병원 가운데 파견·용역직 정규직 전환이 이뤄진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국립대병원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지난해 기준으로 4천여명에 이른다.

용역업체와 계약연장으로 버티는 사용자
방침만 던지고 뒷짐 쥐는 정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1단계 대상기관인 국립대병원에서 이처럼 전환 속도가 붙지 않는 이유는 또 있다. 정부가 지난해 9월 내놓은 ‘공공병원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위한 가이드라인’에서 파견·용역직은 민간업체와 계약이 종료되는 시점에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했지만 국립대병원은 필요한 경우 일시적으로 계약을 연장하는 등의 조치가 가능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가이드라인에서 이를 “남용하지 마라”는 단서까지 붙였지만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지금처럼 정규직 전환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라면 전남대병원을 비롯한 대부분 국립대병원이 용역업체와 맺은 계약을 연장할 수밖에 없다.

지난 9월 노동계 내부에서 “정부의 표준임금체계를 수용했다”는 비판까지 들어가면서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시 임금테이블을 마련했던 보건의료노조는 투쟁국면으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이다. 나영명 노조 기획실장은 “진통 끝에 노사 자율교섭을 통해 자회사 전환을 배제하고 직접고용하기로 원칙을 정했는데 이를 지키는 병원이 한 곳도 없다”며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투쟁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