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2011년 5월19일 새벽. 유성기업이 동원한 용역들이 차량을 몰고 노동자들에게 돌진했다. 13명이 피를 흘리고 쓰러졌다. 전날 회사에 주간연속 2교대제 합의 이행을 촉구하며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이었다. 그해 6월22일에도 22명의 노동자들이 용역들에게 돌멩이와 쇠파이프 등으로 얻어 맞고 병원에 실려 갔다. 뺑소니 혐의(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로 검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법원이 기각한 바로 뒤다. 조합원을 친 차량 운전자는 구속조차 되지 않았고, 폭력을 휘두른 용역들은 단 한 명도 처벌을 받지 않았다.

최근 유성기업에서 일부 노동자가 회사 임원에게 폭력을 행사한 일이 발생했다. 보수언론이 연일 비난하는 보도를 하고 야당에 이어 여당 대표까지 '무관용'을 외쳤다. 경찰은 3개 전담팀을 꾸리고 엄정 수사를 예고했다. 과거와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8년의 시간차를 두고 일어난 폭행 사건의 경찰 대응은 이렇게 다르지만 원인은 크게 다르지 않다. 법원이 판결로 확인한 회사의 노조탄압 부당노동행위다. 부당노동행위로 구속된 유시영 유성기업 회장이 형기를 마치고 풀려난 뒤에도 노사관계는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회사는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와 어렵게 재개된 교섭에서 사실상 해고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내용의 단체협약 체결을 요구했다. 노동자들이 수용불가 입장을 보이자 회사는 아예 교섭을 거부하고 있다. 이는 올해 폭행 사건의 발단이 됐다. <매일노동뉴스>가 유성기업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들여다봤다.

회사 의장이 해고 여부 결정

29일 지회에 따르면 회사는 현재 유성기업새노조와 체결한 단체협약을 수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법원은 지난해 10월 기업노조인 유성기업노조가 자주성이 없어 노조 설립이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후 대다수 조합원이 유성기업새노조로 옮겨 갔다.

지회는 지난달 15일부터 전면파업을 한 뒤 서울 삼성동 유성기업 서울사무소를 점거하고 농성을 해 왔다. 지회와 회사는 올해 2월부터 세 차례 임금·단체교섭을 했다. 지회는 영동공장장·아산공장장 등 앞서 ‘노조파괴 5적’으로 규정했던 인물들이 회사 교섭위원으로 참여하는 것에 반발해 교섭을 중단했다. 서울사무소를 점거하고 유시영 회장의 교섭 참여를 요구했다. 고용노동부 중재로 지난달 29일 유시영 회장의 아들인 유현석 유성기업 사장이 참여한 교섭 상견례가 열렸다.

지회와 회사는 임금·단체협약·기업노조 해체와 책임자 처벌을 향후 교섭 안건으로 삼기로 합의했다. 이달 9일 두 번째 교섭이 열렸다.

회사는 이 자리에서 지회에 유성기업새노조와 체결한 단협을 수용하라고 요구했다. 해당 단협은 회사에 해고 자유를 부여하는 내용이다. 유성기업 징계위원회는 노사 각 5인씩 10명으로 구성된다. 지회는 과거 회사와 해고 가결 조건을 징계위원 3분의 2 찬성으로 하는 내용의 단협을 체결했다. 현재는 단협이 해지된 상태지만 현장에서는 규범적 효력이 인정돼 왔다.

그런데 회사와 유성기업새노조가 체결한 단협에는 해고를 징계위원 5명의 찬성으로 결정하는 내용이 있다. 가부 동수일 경우 의장이 결정한다. 단협에 따라 의장은 회사편 징계위원이 맡는다.

김상은 변호사(법률사무소 새날)는 “유성기업의 징계양정 기준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고 노조의 참여가 배제된 채 정해지기 때문에 징계위원회가 실제로 열려야 어떤 이유로 얼마만큼의 징계에 처하게 될지 알 수 있다”며 “이 같은 상황에서 문제의 단협이 체결될 경우 회사가 자의적으로 이유를 만들어 직원들을 마음대로 해고하는 것이 가능해진다”고 우려했다.

"기업노조와 매일 교섭, 금속노조는 교섭 거부"

지회가 요구 수용을 거부하자 회사는 입을 닫아 버렸다. 도성대 유성기업아산지회장은 “회사가 기업노조와는 매일 교섭을 하면서도 1차 교섭 후 우리의 교섭 요구는 묵살하고 있다”며 “단협 개악안을 수용하지 않으면 교섭을 하지 않겠다는 회사의 노골적인 차별에 8년간의 노조파괴 문제가 풀리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는 지회를 상대로 서울사무소 출입금지 가처분신청을 했다. 사유재산 무단점유로 지회를 형사 고발했다.

지난 22일 일부 조합원들이 충남 아산시 유성기업 본관 2층 대표이사 집무실 앞에서 마주친 김아무개 상무에게 교섭 재개를 요구했다. 김 상무는 두산인프라코어에서 일하다 2014년 10월 유성기업에 입사했다. 조합원들은 그를 "노조파괴 용병"이라고 불렀다. 그가 입사 후 지회와 조합원을 상대로 1천300건의 고소·고발을 주도했다는 이유였다. 유성기업에 따르면 지회 조합원들이 김 상무에게 항의하는 과정에서 그를 폭행해 전치 12주의 부상을 입었다.

일부 언론은 지회 차원에서 사건을 계획하고 김 상무를 감금 후 1시간가량 폭행이 이어졌다고 보도했다. 지회는 “당일 상황은 우발적으로 발생했고 지회와 대다수의 조합원들은 김 상무가 아산공장에 들어온다는 사실 자체를 알지 못했다”며 “조합원들이 모두 퇴근하고 소수 인원만 남아 있는 상황에서 김 상무가 공장에 들어선 것을 목격한 조합원들이 면담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사측이 강하게 제지했고 이 과정에서 불상사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지회는 이어 “1시간 동안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은 가짜뉴스”라며 “CCTV를 이미 확인한 경찰도 상황은 2~3분 사이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노조 배제 기업문화 지속되면 불행 되풀이"

지회는 이날 오후 유성기업 서울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사갈등 상황에서 발생한 유성기업의 불상사에 대해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피해자의 쾌유를 빈다”며 “불상사가 일어난 후 회사는 유성노동자를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이고 있고, 지난 8년 동안 회사에서 일어난 노조파괴 범죄와 사측의 학대에 시달린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고통을 보도하지 않고 외면하던 보수언론과 정치권이 한덩어리로 뭉쳐 이번 사건을 노조혐오와 정치공세 도구로 악용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지회는 이날 45일간의 서울사무소 농성을 중단했다. <매일노동뉴스>가 사건에 대한 유성기업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지만 ‘궁중족발 사건’과 같이 이면에 감춰진 진실이 무엇인지를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원청인 현대자동차가 개입한 기업노조 설립과 노조파괴, 회사의 용역을 동원한 잦은 폭력행사로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긴 시간 고통을 받아 왔다”며 “선동적인 비난에서 벗어나 노조 배제적인 기업문화가 바로잡히지 않을 경우 우발적인 폭력과 불행한 사태가 지속될 수 있음을 숙고할 때"라고 지적했다. 김차곤 변호사(법률사무소 새날)는 "2011년 당시 경찰·검찰·노동부를 비롯한 관계기관들이 한편이 돼서 지회 조합원들만 일방적으로 기소했고 반대로 회사측 폭행행위는 노골적으로 봐주기를 했다"며 "지금에서야 조합원을 엄정처벌하겠다는 경찰을 보면 형평에도 맞지 않고, 의아한 생각이 든다" 고 비판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