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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 위기, 경남 조선업 재건에서 실마리 찾자
▲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지난 22일 문재인 정부의 두 번째 조선업 대책이 발표됐다. 박근혜 정부까지 합하면 네 번째 종합대책이다. 정부 대책이 수차례 연달아 발표되는 것은 그만큼 사태가 심각하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런 조선업 상황을 한 업종의 특수한 위기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한국 제조업이 처한 문제점들이 조선업 위기에 압축돼 있기 때문이다. 한 번 보자.

첫째, 조선업 위기는 세계 경제 저성장이 중화학공업에 미치는 영향을 극명하게 보여 준다. 대규모 설비를 가동하는 중화학공업은 수출이 확보돼야 가동률이 유지되고 이익을 낼 수 있다. 그런데 세계 경제 저성장으로 수출길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조선업은 중화학공업에서도 경기에 가장 민감하다. 세계 경기의 바로미터인 해운물동량에 직접 영향을 받는 탓이다. 금융세계화 성장기에 사업을 확장한 조선소들은 금융위기 이후 치명적 타격을 받았다.

둘째, 조선업 위기는 한국 제조업 추격성장의 한계를 보여 준다. 한국 제조업은 1970년대 이래 일본 제조업체 기술을 모방해 성장해 왔다. 그런데 이런 기술모방은 2000년대 초반에 끝났다. 모방이나 이전이 아니라 한국 기업 스스로 기술을 발전시켜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더군다나 중국이 한국기업들을 바짝 추격했다. 샌드위치 상황이다.

조선업은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유럽 기업들이 가지고 있던 해양플랜트 기술에 도전했다. 물론 예전 같은 기술이전은 불가능했다. 대형 3사는 자체 기술로 도전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대형 3사는 지금까지도 해양플랜트사업 적자를 해결 중에 있고, 현대중공업은 아예 사업에서 발을 빼고 있다. 70년대 추격성장의 다음 스텝에서 발이 꼬였다.

셋째, 조선업 위기는 한국 제조업에서 중소기업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 문제점을 보여 준다. 재벌대기업 주도로 성장한 한국 제조업은 중소기업 경쟁력이 취약하다. 핵심 문제는 기술력이 없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은 노동집약적 공정을 하청받거나 선진국 기술을 수수료를 주고 사용하면서 사업규모를 키웠다. 이런 조건에서 대기업이 기술추격 한계와 성장둔화를 겪자 중소기업은 생존 자체가 어려워지고 있다. 중형조선소가 몰락한 조선업은 중소기업 위기의 극단적 형태다. 한국 중형조선소들은 중국 기업이 기술력을 갖추고 저임금으로 가격경쟁력을 높이자 일시에 위기에 빠졌다.

넷째, 조선업 위기는 한국 제조업 노동운동이 처한 제약을 보여 준다. 수출제조업 노조들은 한국 노동운동을 상징한다. 이들 노조들은 지금까지 생산증가를 토대로 기업 차원의 임금극대화를 추구했다. 하지만 제조업이 위기에 빠지자 이런 전략은 힘을 잃었다. 사회적으로도 비판이 거세다. 심각한 위기에 처한 조선업 노조의 행보는 한국 제조업 노동운동의 멀지 않은 미래라 할 수 있다. 기업 내에서 고용과 임금을 지키려 해서는 성과를 얻기 어렵다. 노조가 대안을 주도하며 고용과 임금에 “함께 살자”는 연대정신을 구현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조선업에서 어떻게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

정부가 올해 두 차례 발표한 정책은 한계가 커 보인다. 첫째, 대형조선소에 공공발주와 선박펀드를 이용해 일감을 확보해 주는 것은 당장은 효과가 있겠지만, 대형조선소들이 진취적으로 추격성장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예로 대형 3사는 여전히 금융기관과 맺은 자율협약에 따라 비용감축만을 목표로 구조조정 중이다. 둘째, 중형조선소에 대해서는 대책이 없거나, 있어도 실효성이 없는 것들이 많다. 예로 정부는 중형조선소가 LNG연료선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도록 지원하겠다지만, 중형조선소들은 그런 연구를 내부화할 자원이나 경험이 없다. 선수금환급보증(RG) 발급조건 완화도 액수가 작아 중형조선소 선박 수주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필자는 조선업 재건을 위해서는 지자체와 정부가 조선업 지역인 경남에서 새로운 시도를 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생각해 본 것은 가칭 경남조선재건기업을 3섹터기업으로 만들어 보는 것이다. 경남도가 현금을,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대우조선·성동조선·STX조선 지분 일부를 출자하고, 금속노조가 임금과 고용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며, 정부가 현재 구상하고 있는 스마트 K-야드·LNG벙커링 같은 프로젝트를 집중해 주는 것이다.

경남조선재건기업은 일종의 지자체가 주도하는 지주회사다. 이 지주회사는 참여 주체들의 리스크는 분산하면서 협력은 극대화하고, 무엇보다 채권 회수라는 금융적 목표가 아니라 고용과 산업이라는 사회적 목표로 구조개혁을 추진하기 위한 조직적 틀거리다.

대우조선은 연구개발 역량을 중형조선소와 공유하면서 지역 내 공급사슬 복구에 기여하는 역할을 한다. 대우조선은 매각 위주의 금융 편향적 구조조정을 견제할 수 있을 것이다. 성동조선과 STX조선은 현재 생산능력을 가지고 대기업의 연구개발 능력을 더해,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중형조선소의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탁상공론 식 정책이 아니라 현실에서 실행주체가 있는 정책을 생산할 수 있고, 금속노조는 ‘귀족노조’ 오명을 벗고 사회적 세력으로 인정받을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경남도는 그야말로 제대로 된 “경남형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앞서 본 것처럼 조선업은 제조업 위기를 압축해서 보여 준다. 금융이 주도하며, 단기적 기업이익을 목표로 구조개혁을 추진해서는 제조업 재건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정부 정책은 여전히 소극적이고, 정책금융기관은 매각과 채권회수에만 초점을 두고 있으며, 노조는 기업별 체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수없이 실패했던 패턴이다. 같은 방법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조선업이 밀집해 있는 경남에서 다른 방법으로 다른 결과를 만들길 기대한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jwhan77@gmail.com)

한지원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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