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학태 기자
"집시법 제정 뒤 첫 국회 앞 집회를 시작하겠습니다."

27일 오전 11시30분 국회 정문 앞. 1962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이 만들어진 이후 국회 정문 앞에서 처음으로 사전에 신고된 합법집회가 열렸다.

노동자·시민 40여명이 모여 앉았다. 조그만 무대까지 설치했다. 집회 주최측은 집시법 폐지 공동행동이다. 참가자들은 마음껏 구호를 외치고 팔뚝질을 했다.

‘기자회견 가장한 집회’ 잇따랐던 국회 앞

올해 5월 헌법재판소가 국회 앞 100미터 이내 집회·시위를 금지한 집시법 11조(옥외집회와 시위의 금지 장소)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기에 가능한 일이다. 서울 영등포경찰서 관계자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온 데다 집회에서 불법행위를 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해 신고를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노동자단체나 시민단체는 국회 정문에서 100미터 넘게 떨어진 KB국민은행 또는 산업은행 앞에서 집회를 해야 했다.

국회 정문 앞에서는 기자회견이나 1인 시위, 혹은 ‘기자회견을 가장한 집회’만 가능했다. 구호를 외치면 어김없이 경찰의 경고방송이 날아들었다.

구교현 전 노동당 대표가 국회 인근 집회를 금지한 집시법 11조 위헌제정 신청을 한 것은 2015년 12월 사건 때문이다. 광화문과 영등포에서 고공농성 중인 비정규 노동자 지지방문을 한 뒤 국회 앞을 지날 때 구호를 몇 번 외쳤다가 기소됐다. 무대에 오른 구 전 대표는 “국회의원들이 집시법 개정에 반대하는 것은 국민 목소리로부터 자기를 방어하려는 특권의식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헌법재판소 결정은 집회 자유 보장 한계 있어”

국회뿐 아니라 올해 6월과 7월에는 각각 국무총리 공관과 법원 100미터 이내 집회 금지조항에 대해서도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왔다. 청와대(대통령 관저)를 포함해 집회금지 조항이 적용되는 다른 장소에 대해서는 헌법소원이 진행 중이다. 집시법 11조의 국회·법원·국무총리 공관 인근 집회 금지조항은 내년 말까지 개정해야 한다.

그렇다고 집회의 자유 침해 문제가 해소된 것은 아니다.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은 국회나 법원 같은 장소 인근 집회금지를 원칙적으로 전제하고 있다. 직무수행에 영향을 주지 않을 만한 소규모 집회, 공휴일이나 휴회기에 열리는 집회, 국회·국무총리·법원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 집회, 법관 독립성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없는 집회는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 판결 취지다.

이날 집회 사회를 본 정진우 노동당 집행위원장은 “오늘 집회도 50명으로 신고했기에 가능했다”며 “경찰측으로부터 200명은 곤란하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국회에 발의된 집시법 개정안도 헌법불합치 결정이 난 장소만 허용한다든가, 대규모로 확산될 우려가 없을 때 집회를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회의 기능·업무를 저해할 우려가 있으면 집회를 금지하는 법안도 있다. 집시법 11조 삭제를 담은 법안은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제출한 개정안뿐이다.

인권단체 공권력감시대응팀에서 활동 중인 오민애 변호사(법무법인 향법)는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왔지만 집회신고를 할 때 경찰과 협의해야 하고 금지통고가 나오지 않을까 고민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전했다. 오 변호사는 “국회에 발의된 집시법 개정안을 보면 지금 상황이 바뀌지 않을 것 같다”며 “집시법 11조를 삭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학태·연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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