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라일터 홈페이지 갈무리

정부가 올해부터 시행 중인 ‘공공부문 비정규직 채용 사전심사제’가 현실에서 외면받고 있다. 정부는 일정 기간 이상 유지되는 상시·지속 업무의 경우 처음부터 정규직으로 채용하라고 권고했다. 그런데 여러 공공기관들이 정규직 채용기준에 부합하는 곳에 비정규직을 쓰고 있다. 여러 형태의 비정규직을 뽑는 공고문이 하루 수십 개씩 게재되고 있었다.

◇소득주도성장특위 "다른 공공기관도 계약직 뽑아서…" 정부 지침 신경 안 쓰는 공공기관들=25일 <매일노동뉴스>가 ‘나라일터’ 사이트에 올라온 구인광고를 분석했다. 나라일터는 인사혁신처가 운영하는 일자리 정보 게시판이다. ‘대한민국공무원되기’와 채용정보가 연동된다.

정기 국가공무원 경력직 채용공고를 비롯해 하루에도 수십 개의 공직 채용공고가 실린다. 지난 23일 하루에만 60건의 채용공고(임원 채용·전입 희망자 모집·합격자 공고 제외)가 실렸다. 이 중 정규직(무기계약직 포함)을 찾는 구인광고는 19건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시간제·기간제·임기제·계약직·체험인턴으로 불리는 비정규직 일자리였다. 물론 단기 결원을 메우기 위해 계약직을 찾았을 수 있다. 정부도 사전심사제에서 휴직대체 등 일시·간헐적 업무의 경우 비정규직을 채용할 수 있도록 했다.

문제는 수많은 공공기관들이 사전심사제에 따라 정규직을 채용해야 할 자리에 비정규직을 쓰려 한다는 점이다. 이날 서울동부구치소는 1년 계약직으로 일할 식당노동자 1명을 찾는 구인광고를 냈다. 서울대는 내년 1월1일부터 12월31일까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전시실 담당 연구원 2명을 채용한다. 서울시강동구인사위원회는 건축안전센터에서 공사 감리를 관리하고 감독할 노동자 2명을 찾았다. 근무기간은 '1년 이내'다.

충북대는 오후 9시30분부터 다음날 오전 8시30분까지 일할 야간전담 약사 6명을 구했다. 계약기간은 최대 2년이다. 한국조폐공사는 블록체인 핵심기술 분석업무 등에 투입될 IT전문인력 4명을 뽑는다. 모두 1년 계약직이다.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는 운전직 채용공고를 냈다. 근무기간은 올해 12월부터 내년 11월까지다. 소득주도성장특별위 관계자는 “사전심사제의 구체적인 내용은 모르지만 다른 공공기관이 운전직을 계약직으로 뽑아서 우리도 그런 것”이라며 “위원회가 9월에 출범해 일단 계약직으로 채용공고를 냈는데 향후 당사자와 계약갱신시 정규직 전환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노동부 "실태조사 후 경영평가 반영 추진"=정부는 올해 5월31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공공부문 비정규직 사전심사제를 운영하겠다"고 발표했다. 휴직대체나 복지대책 차원에서 제공하는 일자리 같은 사유가 있을 때만 비정규직을 쓰라는 권고다. 핵심 원칙은 '연중 9개월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시·지속적 업무에는 정규직을 채용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앞선 채용공고에서 보듯이 현실은 그대로다.

우문숙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사전심사제를 운영하는 기관이 거의 없어 여러 공공기관이 정규직을 채용해야 할 자리에 아직도 비정규직을 뽑고 있다”며 “심지어 일부 기관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따라 자체적으로 정규직 전환을 결정한 자리에 비정규직을 채용하는 어처구니없는 사례도 있다”고 비판했다.

우 국장은 “정부가 올해 연말까지 비정규직 사용사유를 제한하는 입법조치에 나서겠다는 약속을 이행하는 것이 공공부문을 포함한 전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철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실장은 “노동부가 사전심사제 운영을 기관 자율에 맡기지 말고 위반시 불이익을 가하는 구체적인 행정조치에 나서야 한다”며 “해당 제도의 세부 내용과 의미 등을 현장에 폭넓게 홍보하고 이행 여부를 추적하는 사후조치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노동부는 시행 수개월에 접어든 공공부문 비정규직 사전심사제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잘 모른다. 노동부 관계자는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논의가 진행 중인 공공기관은 아직 사전심사제를 운영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며 “12월 중 실태조사를 거쳐 참여율을 파악하고 보완점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공공기관 경영평가 세부항목에 사전심사제 운영 여부를 반영할 계획”이라며 “관계 부처들도 공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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