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노사관계 제도·관행개선위원회가 지난 20일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한 공익위원 합의안을 내놓았다. 한국 정부는 1991년 ILO에 가입했으나 4개 기본협약(87호·98호·29호·105호)을 비준하지 않고 있다. 27년 만에 그중 일부 협약 비준과 관련한 입법방향을 밝혔으니 늦어도 한참 늦었다. 과연 ILO 창립 100주년인 내년에는 한국이 정상국가에 오를 수 있을까. 노사와 전문가들에게 공익위원안의 의미를 들었다.

노조전임자 임금 노사자율에 맡겨야
강훈중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장

강훈중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장

우리나라 노조 조직률이 10%대에 불과한 것은 단결권을 제약하는 법·제도에도 원인이 있다. 한국노총은 오래전부터 정부에 “ILO 핵심협약 비준과 노동기본권 온전한 보장”을 요구했다. ILO 핵심협약인 87호와 98호를 비준하고 노동기본권과 인권을 온전히 보장하기 위해서는 그간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가 권고한 내용을 토대로 법·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ILO에 가입한 회원국으로서의 기본 의무이자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서는 △노조할 권리 보장을 위한 노동자·사용자 정의 개정 △실업자·해고자 등 노조가입 제한 및 노조임원 자격제한 조항 개정 △노조설립 신고서 반려 조항과 노조 명칭 사용 제한 조항 삭제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금지 개선 △공무원·교원의 단결권 보장 확대 △쟁의행위 관련 노조법상 형사처벌 제도 및 업무방해죄 적용 문제 개선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 침해 해소 등에 대한 법·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이에 견줘 볼 때 지난 20일 경사노위 공익위원의 의견은 진일보한 측면이 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무엇보다 “근로시간면제 한도를 초과하는 내용의 노사합의는 무효로 하도록 개정해야 한다”는 내용은 정부와 입법부의 개입 배제 및 노사자치에 맡기라는 ILO 입장과 배치된다. 노조전임자 임금은 노사자율로 정해야 한다는 것은 ILO의 기본 정신이자 한국노총의 일관된 요구다. 또한 “기업별노조에 한해 노조임원이나 대의원의 자격을 종업원인 조합원으로 한정할 필요가 있다”고 한 부분도 노조의 자주성을 침해한다. 노조 조합원과 임원 자격은 노조가 자체 규약으로 정할 사항이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노동권을 결사의 자유 원칙에 부합하도록 보호하기 위한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고 명시함으로써 특수고용 노동자의 단결권 확보를 명시했지만 이를 구체화하기에는 모호한 측면이 있다. 특수고용 노동자라도 사실상 사용종속관계에 있는 노동자에게는 단결권이 보장돼야 한다.

노사관계 선진화 틀 갖추자
김종국 한국경총 노사관계법제팀장

김종국 한국경총 노사관계법제팀장

공익위원 합의안은 내용적인 측면에서 전체적으로 우려스러운 부분이 많다. 경영계가 수용하기 힘든 해고자 노조가입, 전임자 급여지급 자율화 등 단결권 강화를 위한 노동계 요구가 반영된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기업들은 우리 노사관계 현실에서 해직자와 교섭을 하고 거센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요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지금의 노사관계 상황에서도 어려움이 많은데 공익위원안대로 법 개정이 이뤄지면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 하고 있다.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논의는 단결권에 국한돼서는 안 된다. 단체교섭과 쟁의행위 관련 제도·관행을 국제 수준으로 개선해 노사관계 힘의 균형을 회복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단결권 관련 논의만으로는 노사관계 안정은 멀어지고 어려움만 가중될 것이다.

경영계는 우리 노사관계 개선을 위해 대체근로 허용, 사업장 내 쟁의행위 금지, 부당노동행위제도 폐지 등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경영계 논의 요구사항들이 이번 공익위원 의견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따라서 향후 경영계가 제시한 단체교섭과 쟁의행위 관련 쟁점들에 대한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

ILO 핵심협약 비준은 노사 간 힘의 균형을 회복해 노사관계 선진화의 틀을 갖추는 것을 전제로 추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 대립적 노사관계 현실을 고려해 단체교섭과 쟁의행위와 관련한 과도한 노동권 보호조항이 우선 개정돼야 한다.

이제 노조할 권리 입법, 노조 조직률 30% 달성
이주호 민주노총 정책실장

이주호 민주노총 정책실장

이번 공익위원안의 핵심은 ILO 기본협약 87호·98호를 비준하고 관련 법 개정을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민주노총이 그동안 줄기차게 주장했던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 보장 관련해서 ILO 기본협약 87호 결사의 자유 원칙에 부합하게 보호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은 의미 있다. 국회는 계류 중인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조 개정안을 즉시 통과시켜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자신들의 공약임에도 불구하고 ILO 기본협약 비준 관련 구체적 일정을 제시하지 않고 있는데 당장 비준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래야 세계 10대 경제강국,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이자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대한민국 국격에 걸맞는다

공무원과 교원의 단결권 확대 방안도 주목되는 부문이다. 소방공무원의 단결권 보장과 아울러 해직공무원·해직교원의 노조할 권리를 보장한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의 근거였던 노조법 시행령 9조2항 삭제도 합의한 만큼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처분은 즉각 취소돼야 한다.

공익위원안에는 부족한 점도 눈에 띈다. 노동조합 설립 및 가입 자격과 근로시간면제 제도 등은 좀 더 ILO 원칙과 노사자치 원칙에 맞게 개정돼야 한다. 삼성 노조와해 의혹 관련 경총이 부당노동행위 개입 등으로 간부 일부가 기소돼 조사받고 있는 시점에서 이번 공익위원안 발표를 기점으로 노동자들의 단결권 보장과 초기업교섭에 대한 보다 전향적 태도 변화를 기대한다. 노동존중 사회·소득주도 성장·포용국가, 그 출발은 ‘ILO 기본협약 비준, 모든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 보장을 통한 노조 조직률 30% 사회’다. 비정규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가 스스로 조직을 만들고 대등한 교섭력을 확보하는 구조가 없다면 그 어떤 착한 정부의 선한 노동정책도 지금처럼 후퇴하고 좌초할 뿐이다. 흔들리는 정부가 할 일은 다시 재벌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노조 조직률을 높여 노사 자치, 노사자율교섭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유럽 복지국가가 주는 교훈이다.

단결권 보장에 조건이 있을 수 없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

앞으로가 걱정스럽다. 법 개정을 거쳐서 ILO 협약을 비준하든, ILO 협약을 우선 비준하고 법 개정을 하든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국회 지형이 쉽지 않은 조건이다. 문재인 정부도 ILO 협약 비준을 국정과제에 포함시켰지만 힘이 빠진 상태여서 공언한 대로 비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한 공익위원 합의안의 경우 단결권만 다뤘는데 일부 문구를 보면 의문이 드는 부분도 있다. 비종업원의 기업노조 활동을 제한한 것이 대표적이다. 단결권은 노동조합이 알아서 할 문제다. 선물을 주고 단서를 다는 식의 조건을 붙이는 것은 ILO 결사의 자유 원칙에 어긋난다. 아마도 내부에서 여러 의견들을 절충하는 과정에서 나온 결론일 것으로 추측된다.

단결권은 헌법과 ILO 정신에 따라 있는 그대로 보장해야 한다. 교섭이나 쟁의행위의 경우 노조가 결사체로서 책임이 따르는 문제들에 대해 논의할 여지가 있다. 그런데 결사의 자유를 논의하면서 누구는 된다, 누구는 안 된다고 설정하는 것은 맞지 않다. 과거 노동규제적 방식의 연장선이다.

전향적 변화의 단초, 지속 여부가 관건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핵심 논의사항 대부분은 노사가 첨예하게 의견이 갈리는 사안이라서 합의가 쉽지 않다. 전신인 노사정위원회의 역사를 보면, 정부가 노동개악을 추진할 때만 노동계 일부 또는 전부가 불참하는 가운데 합의 처리가 될 수 있었다. 정리해고·파견제 도입과 이후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악이 대표적이다.

노사정위의 거수기 논란을 극복하고, 노동자 중심의 노동개혁이 경사노위를 통해 실현될 수 있을지 이번 공익위원 안 발표가 상징처럼 제시됐다. 실업자·해고자의 조합원 가입 제한과 이를 통한 ‘노조 아님 통보’를 넘어설 수 있는 근거를 제공했고, ILO 기본협약 비준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럼에도 기본협약 전체 비준을 법 개정이라는 절차를 우선하는 등 완결된 형태는 아니다. 이후 사용자와 재계의 직장내 쟁위행위 금지 등의 요구를 같이 다뤄야 한다. 전향적 변화의 단초를 보여 줬으나 지속적일지 여부는 아직 장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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