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19.11.12 화 08:02
상단여백
HOME 안전과 건강 전문가 칼럼
‘노동자 학대’ 방치하는 국회의 이상한 잣대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집행위원장
▲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집행위원장

한 사업주의 도 넘은 갑질이 전 국민을 분노하게 했다. 하나의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와 빠르게 퍼지며, 그의 ‘가학적 노무관리’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동영상의 장본인은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 그는 퇴사한 전 직원을 불러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욕설을 내뱉고, 손찌검을 하며 무릎까지 꿇렸다. 더욱 충격은 그를 지켜보는 회사 내 직원들이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그를 저지하지도 만류하지도 않았다는 데 있다. 사내 워크숍 영상과 그의 엽기적인 행각이 줄지어 언론에 공개됐다. 노동자들은 ‘학대’를 당하고 있었다.

결국 직원 폭행, 동물 도축 등 엽기행각으로 물의를 빚은 양진호 회장이 구속됐다. 그간 양 회장의 행태와 관련해 경찰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 위반, 상습폭행, 강요 등 10개 혐의를 적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5~16일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하며 양 회장 소유 5개사 직원들을 전수조사하고 경찰로부터 자료 협조를 받아 양 회장의 폭행 혐의와 노동관계법 위반 혐의 입증에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영상으로 알려진 퇴직자 폭행과 유사한 사건이 재직 중인 노동자들에게 있었다는 징후를 발견해 추가조사를 추진 중에 있다고도 한다. 이를 위해 2주간의 특별근로감독 연장을 결정했다. 형법상 폭행은 반의사불벌죄로 피해자가 가해자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처벌이 불가능하지만, 근로기준법상 폭행은 피해자 의사와 상관없이 처벌이 가능하다.

양진호 회장이 저지른 인권유린 행태는 전형적인 일터 괴롭힘, 가학적 노무관리다. 개인들끼리의 다툼이나 폭력행사가 아니라 일터에서의 위계와 권력관계에 의해 일어난 문제로 재발 가능성이 매우 높고, 은폐도 쉽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월 발표한 ‘직장내 괴롭힘’ 실태조사 결과 직장인의 약 73%가 직장내 괴롭힘을 당한 적 있고, 그중 약 60%는 직장내 관계 악화 등을 우려해 별다른 대처를 하지 못했다는 설문조사가 이를 여실히 보여 준다. 만일 이번 사건이 ‘동영상 유포’라는 형태로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다면, 그의 일터 괴롭힘은 여전히 진행형이었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사장이나 상사의 이런 무자비한 행태를 노동법으로 제재할 근거가 없다는 데 있다. 근기법 8조에는 “사용자는 사고의 발생이나 그 밖의 어떠한 이유로도 근로자에게 폭행을 하지 못한다”고 명시돼 있다. 형량도 5년 이하 징역이나 5천만원 이하 벌금으로, 형법상 폭행 2년 이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 벌금보다 훨씬 강하다. 그러나 사문화된 법에 가까워 일터에서는 ‘법보다 주먹이 강하다’는 말이 통용되고 있다.

게다가 ‘사용자’가 아닌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저지른 폭행은 근기법상 폭행죄가 아예 적용되지 않는다. 폭언이나 강요 같은 괴롭힘을 금지하는 조항은 아예 없다. 근기법과 산업안전보건법 등은 노동자를 ‘고객의 폭언’에서 보호해야 한다고만 규정하고 있을 뿐 일터의 위계관계에서 발생하는 ‘괴롭힘’에 대한 것은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 7월18일 정부가 공공기관뿐 아니라 민간기업에서 발생하는 직장내 괴롭힘을 막기 위해 법령에 신고부터 가해자 처벌까지 각종 개선대책을 반영하기로 하며 내놓은 ‘직장 등에서의 괴롭힘 근절대책’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이 대책 중에는 사용자의 직장 괴롭힘 조사를 의무화하고, 관련 법령을 위반하면 노동부 같은 국가기관이 직권조사를 실시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할 법·제도가 마련되지 않았다.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이라고 불리는 근기법·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등이 지난 9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으나 2개월째 잠들어 있다. 법제사법위원회 논의 중 “직장내 괴롭힘의 규정이 모호하다”는 이유로 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우리 직장에도 양진호가 있다’며 일터에서 곪을 대로 곪은 이야기들이 속속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노동자 학대와 괴롭힘은 구체적인 실체로 일터 곳곳에 만연해 있다. 오히려 모호한 것은 일터에서 벌어지는 ‘직장내 괴롭힘의 규정’이 아니라 ‘노동자 학대’를 보는 국회의 태도가 아닐까 한다. 이제라도 잣대를 바로 세워 이를 멈춰야 한다.

손진우  labortoday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손진우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