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지난주 월요일, 사내하청 노동자의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항소심재판으로 현대제철 순천공장에 현장검증을 다녀오느라 칼럼 작성을 빼먹었더니 며칠을 결석하고서 등교한 학생 같은 심경이다. 그새 나를 빼놓고서 많은 일이 일어나 세상이 돌아간 것 같다. 지난 10일에는 민주노총이, 17일에는 한국노총이 개최한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렸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으로 소속을 달리해서 서울 광화문 네거리와 국회 앞으로 각기 모여 외쳤지만, 문재인 정부의 노동개악을 저지하겠다는 의지는 같았다. “말로만 노동존중 하지 말고 노동개악부터 중단하라”고 외쳤다. 노동자들은 노조할 자유 등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최저임금법 개악 반대를 외치고, 무엇보다도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 추진을 중단하라고 소리 높여 외쳤다. 나는 지난번 칼럼을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 추진에 관해서 썼다. 그런데 그 뒤 2주간 세상은 이에 관한 사용자 자본의 요구와 그에 부합하고자 하는 여야정의 입법 추진, 이에 대한 노조 등 노동진영의 반대 행동으로 전개돼 오고 있었다. 그러니 했던 말을 다시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하면서도 오늘 노동관련 세상사를 말하겠다고 이렇게 끄적거린다.

2. 노동존중 사회 실현과 소득주도 성장을 말해 온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김성태는 ‘쇼통’이라 부르며 문재인 대통령이 쇼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나는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단축 등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비난하는 것이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박근혜 정권의 각종 적폐를 청산하는 것에 대해서도 온통 ‘쇼통’이라 떠들어 대며 반대하는 것이니 굳이 뭐라 대꾸하는 것도 내 입이 아프다고 무시하면 그만이라고 여겼다. 그만큼 나는 촛불시민혁명의 계승자로 자처하는 문재인이 내세운 노동존중 사회를 실현하겠다는 공약의 진정성은 의심하지 않았다.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노동소득 증대를 위해 최저임금을 인상하며, 일자리 창출과 노동의 삶을 위해 노동시간을 단축하려는 문재인의 진심은 믿었다. 사용자 자본과 이에 편드는 언론의 공세가 몰아칠 때면 멈칫거리던 문재인 정부의 모습을 볼 때면 나는 안쓰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서 주저앉았다. 비정규직 문제도, 최저임금 인상도, 노동시간단축도 그랬다. 그것이 소득주도 성장으로 나아가려면 그 순간을 넘겨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고, 최저임금이 인상되고, 노동시간이 단축돼 노동자의 소득이 증대되고 일자리가 만들어지려면, 그만큼 사용자 자본에게 압박이 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런 노동존중 사회 실현과 소득주도 성장 정책에는 사용자 자본의 반발을 넘어서는 것일 수밖에 없다. 자회사 소속으로 전환하고, 기존 임금수준을 유지하며, 산입범위를 확대해서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끌어내리고, 노동시간단축 관련법 시행을 미루고 그 예외를 인정하는 것으로 물러섰다. 그래서는 노동자의 소득이 증대되지도, 일자리가 만들어지지도 않는다. 자본의 몫을 노동의 것으로 돌리고, 사용자가 노동시간단축 때문에 추가로 노동자를 고용하도록 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않았다. 그 결정적인 순간에 나아가지 않았다. 그러다 말았던 것인데, 그럼에도 문재인 대통령의 진심은 변함없다고 여기고 있다. 경제를 총괄하는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집권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등이 경제상황을 고려한 정책 수정을 말했어도, 문재인 대통령 자신은 직접 노동존중 사회 실현과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수정을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정책의 방향은 옳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 진정만은 믿고 싶을 만큼 그랬다. 그래서 이렇게 문재인‘쇼’인가 제목으로 칼럼을 쓰고 있는 것조차 그의 진심을 의심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3. 호황과 불황으로 경기가 변동하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경제학은 수요와 공급의 가위질에 의해서 작동한다고 말해 왔다. 그에 따라 오늘 우리의 경제관료들도 이 높은 실업률은 결국 낮은 임금수준을 통해서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노동자의 임금수준이 낮아지면 사용자 자본은 보다 많은 노동자를 고용할 것이니 고용률이 높아진다고 보는 그들에겐, 문재인 대통령의 노동존중 사회 실현과 소득주도 성장 정책은 이해할 수가 없다. 심하게 말한다면 경제학의 기본도 안 된 정책이라고 비난할 만하다. 그런 그들에게는 이 나라에서 실업문제는 임금수준만 낮추면 저절로 해결되는 일이고, 그걸 가로막는 노조야말로 고용악화의 원흉이라고 여기게 된다. 오직 케인즈의 유동성 함정 시기에만 재정정책 등을 통한 예외가 인정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러니 이런 경제학의 신봉자들은 오늘 이 나라의 경제상황을 두고서 재정정책이 힘을 쓰는 예외적인 시장 실패 시기냐, 그렇지 않고 시장에 맡겨야 하는 정부 실패 시기냐를 두고서 진단하고 논쟁하느라 바쁘다. 하지만 설사 예외적인 시기라고 진단하더라도 그들에겐 그 예외적인 상황은 오래 지속될 수가 없다. 시장은 수요와 공급의 가위질에 의해서 작동돼야 하는 것이고, 그것이 한계의 법칙이 작동하는 효율적인 자원의 사용이 된다고 본다. 그들의 경제학에는 원칙적으로 시장만 보일 뿐이다. 노동자·노동은 자본이 사용하는 대상으로 취급될 뿐 사용자·자본과 같은 경제 주체로는 보지 않는다. 노동의 몫은 적을수록 자본의 확대재생산에 이롭다고 여기는 경제학만 보일 뿐이다. 자본의 확대재생산을 보장하는 것만이 정의로 여긴다. 이를 가로막은 노동시장의 하방경직성을 초래하는 노동조합이 이 나라에서 오늘은 노동시장의 개혁을 가로막고 있다고 보일 뿐이다. 자본의 확대재생산 이상의 정의는 그들의 경제학에는 없다. 근본적으로 그들은 상대적으로 고임금인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조합을 공격하는 일이 정의라고 믿는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도, 문재인 정부에서도 그들은 언제나 같은 정의를 믿었다. 그런 그들이 말하지 않는 것이 있다. 노동이 아닌 자본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원칙적으로 시장의 자율에 맡겨진 것이라고 여긴다. 임금 등 노동조건의 저하를 막아 노동시장의 하방경직성을 초래하는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억압을, 이에 반해 자본에 대해서는 자유를 줘야 한다는 것이니 어찌 보면 박근혜 정권에서 추진하던 노동시장 개혁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해야 할 개혁으로 내세우는 것은 그들에겐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들에겐 도대체가 새로운 세상은 없다. 노동을 위한 정의는 없다.

4. 지난 5일 청와대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참여한 가운데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 첫 회의가 있었는데, 당시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에 관해서 합의했다고 언론에 보도됐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문재인 대통령도 이에 합의했다고 기자들에게 밝힌 것이 보도되기도 했다. 실제로 그 뒤부터 본격적으로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에서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 확대 필요에 관한 언급이 빈번해지고 있다. 이미 지난달 당시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근로시간단축의 연착륙 방안으로서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최대 1년으로 확대하는 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고, 이제는 고용노동부도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로 선회했다고 밝히고 있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를 대체해서 새롭게 출범한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도 이를 주요 노사정 합의 대상으로 삼고 있어, 그 노사정 논의 절차를 거치기만 하면 곧바로 입법이 추진될 것처럼 급박하다. 노동조합·노동자들이 반대하더라도 말이다.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6개월 또는 1년 단위로 확대되는 경우 사용자는 몇 달을 계속해서 60시간을 초과해 노동자에게 일을 시킬 수 있고, 이런 초과노동에 대해 노동자는 연장근로수당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니 노동자로부터 노동시간과 임금에 관한 권리를 빼앗아 사용자 자본에 넘기는 짓이다. 이런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확대 추진을 두고서 일부에서는 문재인 정부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민변 노동위원회 등 노동법률단체의 지난 14일 기자회견). 아마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문재인 대통령의 진심은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해 온 주요 노동정책, 즉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단축 등을 두고 보자면 과연 문재인 정부의 초심마저 자꾸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김성태는 문재인 대통령의 노동존중 사회 실현과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비난하기 위해 그 정책을 폐기하라며 쇼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 정책을 진정으로 추진하기를 바라기에 오늘도 노동자를 위한다는 그의 말이 더는 쇼가 아니길 바라고 있다. 노동존중 사회 실현과 소득주도 성장 정책이 문재인‘쇼’가 아니기를 나는 진정으로 바라고 있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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