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민사소송 과정에서 장애인에게 수어통역 지원 비용을 부담시키는 것은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대법원장에게 장애인이 사법절차에서 지원을 받도록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15일 인권위에 따르면 청각장애 2급인 A씨는 법원에서 소송을 진행하던 중 지난해 11월, 올해 1월과 6월 세 차례에 걸쳐 법원에 장애인 사법절차 지원과 청각장애인 수어통역 지원을 신청했다. 그러나 가족·친족 간 분쟁사건인 가사사건의 경우 소송비용이 자비부담 원칙이며 변호사를 수임했다는 이유로 수어통역 지원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7월 수어통역 지원에 대한 예납명령을 받아 비용을 납부해야만 했다. 결국 A씨는 “청각장애인이 재판 과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장애인 차별”이라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소송비용 국가부담을 원칙으로 하는 형사소송과는 달리 민사·가사소송 소요비용은 당사자 부담이 원칙”이라며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수어통역 소요비용은 신청한 당사자가 예납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소송구조제도를 통해 비용 납입을 유예 또는 면제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A씨는 장애인연금 수혜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소송구조신청 자격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인권위는 “장애인차별금지법 26조4항에 따라 재판 과정에서 수어통역을 지원하는 것은 장애인에게 비용부담 없이 편의를 제공해 실질적 평등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며 “수어통역 지원비용을 장애인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장애인에게 비장애인과 실질적으로 동동한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라는 법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대법원장에게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실질적으로 동등한 수준으로 민사소송과 가사소송 절차를 이용할 수 있도록 ‘민사소송규칙’ 또는 ‘소송구조제도의 운영에 관한 예규’ 개정을 통해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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