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18.12.15 토 08:00
상단여백
HOME 기획연재 연재
[연속기고-직업계고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어디로 가고 있나 ③] 특성화고 졸업생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1년 전 제주 현장실습생 이민호군 죽음 이후 유족은 진상규명·재발방지를 요구했다. 하지만 정부와 교육청은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올해 2월 교육부가 학습중심 현장실습을 내세워 선도기업을 선정한다고 밝혔지만 선정·운영 과정에서의 문제점이 적지 않다. 현장실습의 또 다른 형태에 불과한 도제학교가 대안으로 떠오르는 실정이다. 11월19일은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을 하던 고 이민호군이 떠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현장실습대응회의>가 이민호군 1주기를 추모하고 남은 과제를 되짚는 차원에서 연속기고를 보내왔다. 5차례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공장에 취업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에 관련된 것을 찾는 것인데, 공장에 무조건 취업하는 것은 아무리 일찍 취업을 해도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요. 사회 경험이라고 해서 긍정적인 마음도 있지만, 사회에 억압받고 무서운 느낌을 일찍 알게 되고 겁을 내고 취업을 망설이는 애들도 있어요. 대부분은 후자쪽인 것 같아요.”

경기도 안산 반월시화공단에서 현장실습을 한 특성화고 졸업생 19명을 인터뷰했다. ‘억압받고 무서운 느낌’이라는 표현이 너무나 아프다. 전국 특성화고 학생들이 현장실습을 하려고 찾아오는 반월시화공단은 20인 미만이 일하는 사업장이 많다. 2016년 반월시화공단 인권침해 실태조사 보고에 의하면 인권침해 빈도는 55.74%나 된다. “장인이 된다고 해서 왔는데 청소의 달인이 됐다”고 말하는 현장, 공장 사장실 옆방을 기숙사로 만든 회사, 기계소음과 높은 열, 안전장구 없는 현장, 최저임금…. 바로 이런 곳에 특성화고 학생들이 ‘실습’이라는 명분으로 온다. 친구들과 만나 “서로 회사를 시궁창이라고 하고 누가 더 불행한지 내기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있다.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이 ‘실습’이 아니라 ‘노동’임은 누구나 알고 있다. 누군가는 “취업률을 올려야 하니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반월시화공단에서 현장실습을 한 특성화고 학생 10명 중 8명은 계속 일하지 않고 알바를 하며 다른 일자리를 찾거나 대학에 가려고 한다. 질 낮은 일자리에 저임금 노동력을 공급하는 통로로서의 기능도 잘 하지 못하니,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이 고졸 취업률을 높인다”는 주장은 참으로 허망하다. 물론 현장실습 산업체 중에는 공공기관이나 대기업도 있다. 그런데 LG유플러스에서 현장실습을 했던 홍아무개씨를 생각하면 대기업이라고 모두 좋은 일자리는 아님을 알 수 있다. 홍씨가 일했던 곳은 해지방어부서, 소위 욕받이부서라는 이름이 붙은 곳이었다.

대다수가 열악한 노동현실에 질려 떠나 버릴 때에도 남아 있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그들조차도 이곳에서 희망을 꿈꾸지 않는다. 용접을 하고 싶었다던 한 졸업생은 말한다. “군대 갔다 오면 공무원시험 준비를 할 거예요. 용접은 안 할 거예요. 다른 걸 찾을 거예요.” 기능전문가가 되고 싶은 꿈은 좌절됐다. 군복무를 대체하는 산업기능요원이거나, ‘일학습병행제도’로 폴리텍대에 다니기 때문에 남아 있는 이들도 있다. 산업기능요원이나 일학습병행제로 일하는 이들은 쉽게 일자리를 이동할 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 강제노동을 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을 위반해도, 위험한 업무에 밀어 넣어도 여기에서 나가면 군대에 다시 가야 하거나 대학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더더욱 저항하지 못하는 것이다.

현장실습을 ‘학습중심‘으로 바꾸겠다고 해도 ‘산업체 파견’이 계속되는 한 ‘조기취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기업들이 정말로 교육을 시킬 준비가 돼 있다고 믿는가.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일학습병행제나 산업기능요원 등 온갖 제도로 질 낮은 일자리에 노동자들을 붙잡아 두는 제도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특성화고 학생들과 졸업생들이 이런 현장에서 미래를 그릴 수 없다. 특성화고 졸업생들은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찾게 해 달라”고 말한다. 그러려면 산업체로 보낼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직업교육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다양한 직업경험을 쌓게 하려면 교육부와 고용노동부,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다양한 실습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실습’이 꼭 산업체에서 이뤄져야 할 이유는 없다.

좋은 일자리의 학력차별을 없애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질 낮은 중소기업 현장에 일할 사람이 없어서 걱정된다면 그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만들면 된다. 공단구조고도화에 쏟는 많은 비용을 그곳에서 일하는 이들의 권리를 위해 써야 한다. 노동인권교육에는 반드시 ‘노동권-노조를 만들 권리’가 포함돼야 한다. 뭉쳐서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현실을 바꾸는 가장 빠른 길이기도 하다. 19일이면 제주 산업체현장에서 현장실습을 하다 기계에 깔려 숨진 이민호씨 1주기다. 부디 그 죽음이, 그 눈물이 쉽게 잊히지 않길 바란다.

김혜진  labortoday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혜진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