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병호 위원장 검거령, 효성·레미콘 공권력 투입에 각국 대표 격분



소마비아 사무총장 "ILO권고 실질적인 이행위한 방안 모색 중"

6월5일, 개막식과 함께 국제노동기구의 89차 연례 총회가 17일 간의 일정으로 시작된 가운데 민주노총은 처음으로 한국 노동자 대표직을 맡아 참여했다. 지난해까지는 한국노총이 '대표'를, 민주노총이 총회 연설을 맡아하던 것을, 바꾸어서 맡게 되었다.

민주노총은 '총회 공식 의제에 대한 충실한 참여'와 '노동기본권과 인권문제를 중점적으로 부각시키는' 것을 주요 목표로 삼고 총회 참석을 준비하였다. 배종배 부위원장을 대표로, 이상학 정책국장과 국제국장이 자문위원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한국 노동기본권 상황에 대한 자료 ILO사무총장에게 직접 제출키로

3주에 거쳐 진행되는 총회에는 두 가지 일이 진행된다. 하나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국제노동기준을 제정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회원국의 기준 적용 실상을 검토, 감시, 감독하는 일이다.

회원국이 이미 비준한 기준을 어떻게 이행, 적용, 실현하고 있는지를 '기준적용위원회' 점검하는데 한국에 대한 ILO의 감시 감독 기능은 이사회 산하의 '결사의 자유 위원회'에서 하게된다. '기준적용위원회'와 함께 ILO 감시 감독 기능의 쌍두마차 역할을 하는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비준한 협약의 이행 여부를 감시 감독하는 것이 아니라 회원국이면 비준 여부와 상관없이 존중해야 하는 87호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과 98호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원칙의 적용에 관한 협약' 위반에 대한 제소를 심의하여 권고한다.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우리 나라 노동법 개정 운동에 깊숙히 '개입'하고 '참여'해 왔으며, 따라서 복수노조 금지, 교사공무원의 단결권, 제3자 개입 금지, 공익 사업장 직권 중재 등 주요한 노동기본권에 해당되는 노동법개정운동에 중요한 원군이 된 되었다.

민주노총은 이번 총회에 최근 노동기본권 상황에 대한 추가 자료를 사무총장에 직접 제출하는 것을 주요한 활동으로 잡았다. 이와 함께 교원노조의 단체교섭권이 법에 의해 사전적으로 제약되고 그나마 불충분한 단체교섭도 정부의 예산 확정 과정에 파기되는 문제, 공공부문의 단체 협약과 교섭이 정부 기획예산처에 의해 유린당하는 문제, 노사간의 단체 협약에 의한 퇴직 위로금을 배임으로 고소 고발하여 노조 간부와 가족의 재산에 대해 가압류하는 행위, 단결권을 쟁취하기 위한 공무원들의 노력에 대한 탄압, 최근 노조 활동에 따른 구속자 현황 등을 자료로 정리하여 추가 제소 자료를 제출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지난 3년동안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의 강요에 따라 추진된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노동권과 노동조건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자료를 배경 자료로 준비하였다.

* ILO사무총장 "'권고' 이행 안돼는 점 극복 방안 모색 중"

민주노총 대표단은 6월8일, 10분 단위로 쪼개 바쁘게 활동하는 사무총장과 30분 면담하게 되었다. 배종배 부위원장은 노동기본권에 대한 ILO(결사의 자유 위원회)의 권고는 한국의 노동권 신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며, 한국은 ILO와 회원국 주체들간의 협력을 통해 노동권을 실현해 나가는 중요한 사례가 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ILO가 아무리 권고를 해도 정부의 '저항'을 비롯한 여러 이유로 인해 권고로만 남고 실현되지 않는 점이 아쉽다고 지적하자, 소마비아 사무총장은, 자신도 이를 중요한 난점으로 인식하고 있어,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하였다. 권고 이행을 위한 '기술 협력' 지원을 연계하는 것과 같은 방안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삼미특수강' 노동자의 복직 권고에 대해서도 이러한 방안을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배종배 위원장은 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 세계무역기구 등의 주요 국제 경제 기구들이 ILO가 추진하는 정책과는 상반되는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ILO가 추구하는 '결과'와는 다른 '결과'가 초래되는 상황을 지적하면서 이에 대한 정면 대응 없이는 '양질의 노동'을 실현하기 위한 ILO의 정책과 노력은 시작부터 무력할 수밖에 없지 않으냐는 우려를 전달했다. 이에 대해 ILO 사무총장은 민주노총의 이러한 우려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ILO가 다른 국제 기구들에 개입하는 데 한국 상황을 매우 중요한 사례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를 위한 연구 작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하였다.

*현지로 들려온 단위원장 검거령 등 탄압 소식

사무총장은 한국 정부가 아직도 노동조합 지도자를 구속 수감하고 있고, 김대중 정부 하에서 이미 500명 이상이 구속되었고, 현재도 50명(당시 상황)이 구속되어 있다는 이야기에 놀라움을 숨기지 않았다. 배종배 부위원장이 민주노총은 임단협의 집중과 민주노총 6대 요구를 제기하기 위한 6월12일 연대 파업이 시작되면 정부가 또다시 탄압에 나설 수 있다고 설명하고 그러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무총장이 나서 줄 것을 요청하자, 소마비아 사무총장은 자신이 가장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 일 중에 하나가 바로 노동조합 지도자에 대한 탄압을 막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상황 진행에 대해 알려줄 것을 당부하였다.

그런데 한국으로부터 심상치 않은 소식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현지 대표부 사람들로부터 확인되기도 했다. 신언직 조직쟁의 실장이 구속되고, 단병호 위원장, 이홍우 사무총장, 지난해 ILO 총회에서 한국 노동자 대표로 총회 연설을 했던 양경규 공공연맹 위원장에 대해 체포영장이 발부되고, 효성과 레미콘노조에 대해 공권력 투입과 연행 사태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각국 대표 한국 탄압상황에 격분…노조간부 1천여명 살해된 콜롬비아와 비교되기도

사무총장에 제출한 추가 제소 자료와 함께 현지에서 작성한 한국 상황 속보를 받아들은 노동자 대표들은 모두 한결같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큰 실망을 했다고 성토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천여명 이상의 노조 간부가 살해된 콜롬비아, 수십 년 동안 수십만 노동자를 각종 군 작전과 국가 사업에 동원하여 강제노동을 자행하여 ILO의 제재를 받고 있는 버마, 마음에 들지 않는 노조를 '확 바꾸기' 위해 노조 간부를 선출하기 위한 일반 '국민 투표'를 강행한 베네주엘라 등의 상황을 논의하는 기준적용위원회의 노동자대표들은 한국 상황을 접하고 격분을 감추지 못했다.

긴급한 상황 소식을 접한 소마비아 사무총장은 제네바 주재 한국 대표부에 연락해서 우선 노무관을 불러 ILO의 우려를 전했다. 한국 대표부 측은 ILO사무총장의 우려를 한국 정부에-청와대와 노동부에-전달하겠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총회 폐막 이후 열린 이사회에서는 한국 대표부 관계자들 사이에 한국 정부의 최근 노동 탄압 이야기가 나올까 걱정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 인지 제네바 주재 한국 대사가 최근 상황을 설명하고 한국 정부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사무총장을 만나자고 요청하기도 했다.

ILO본부 건물을 나와 무거운 짐을 끌고 제네바 공항을 향하며 과연 한국 정부가-노벨상이든 모든 이름 좋은 상이라면 받기 좋아하는 김대중 대통령이-ILO, OECD, 또는 다른 나라 정부가 노동권에 대해 말할 때 과연 어느 정도 신경을 쓸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자기 이익에 투철한 외국 투자자들의 이야기를 무슨 금과옥조로 여기며 호들갑을 떠는 한국의 대통령, 정부, 언론이 과연 보편적인 가치와 권리 그리고 노동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서는 콧방귀도 안 뀌는 모습이 요즘 들어 너무 자주 나타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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