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여울 공인노무사(이산노동법률사무소)

얼마 전 중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노동인권교육을 진행했다. 교육 중 ‘미래 나의 노동에서 보장받고 싶은 것’이 있는지 이야기했는데, 당시 꽤 많은 학생들이 ‘고용안정’을 보장받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왜 고용안정을 택했냐는 필자의 물음에 한 학생은 “요즘 다 계약직이잖아요. 공부도 못하는데 나중에 저도 계약직으로 일하겠죠 뭐. 계약직은 쉽게 자를 수 있으니까 고용안정이 제일 필요할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아직 본격적으로 노동시장에 들어오지 않은 중학생에게도 계약직이라는 비정규직 고용형태는 이미 친숙한 개념이 돼 있었다.

비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대체하는 ‘돌려막기’ 성행

학생의 말처럼 우리나라 노동자 중 상당수가 비정규직이다.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은 기간제 근로자 사용기간을 2년으로 제한하고 있을 뿐(2년이 경과하면 무기근로자로 전환된다) 채용 사유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즉 비정규직으로 채용하는 데 특별한 이유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아무런 이유 없이 비정규직으로 채용된 근로자는 2년이 지나면 어김없이 회사를 나가야 했고, 그의 빈자리는 또 다른 기간제로 채워졌다. 이렇듯 기간제법은 기업에게 비정규직을 마음껏 채용할 수 있는 자유를 줬고, 결국 비정규직을 대량으로 양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비정규직은 정규직보다 낮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

공부를 못하기 때문에 훗날 자신은 비정규직이 될 것이라는 학생의 말은 그동안 우리 사회가 비정규직을 어떻게 인식했고, 어떻게 대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채용될 자격이 없는 자들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하는 일이 정규직이 하는 일에 비해 가치가 없는 것도 결코 아니다. 그들이 비정규직이 된 것은 단지 기업이 비정규직으로 채용하길 원했기 때문일 뿐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비해 부족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노동시장의 대전제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임금은 정규직 임금의 70% 수준에 불과하며, 오랜 기간 같은 자리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해 온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이기적이고 염치없는 주장’이라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또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문제는 다르다며 비정규 근로자의 노동조합 가입을 막는 사례도 더러 있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계약직 채용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회가 잘못된 것이라고, 계약직이라는 이유로 더 낮은 대우를 하는 것이 정당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던 필자의 말을 학생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비정규직 문제 해결은 노동존중 사회 위한 첫걸음

여러 집회현장에서 ‘비정규직 철폐’라고 쓰인 피켓을 보곤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가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을 것이다. 출산이나 육아에 따른 대체인력, 계절적 사업의 경우 등 객관적으로 임시적인 고용 필요성이 인정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의 잘못된 비정규직 고용관행과 열악한 처우는 사라질 수 있다. 비정규직 채용을 예외적으로만 인정하고(즉 채용사유의 제한이 필요하다), 그들에 대한 대우를 업무내용에 따라 결정하면 되는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결국 우리 사회가 우리의 노동을 어떻게 대하는지와 관련이 있다. 값싸고 편리하게 노동을 사용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사회에서 우리의 노동이 존중받기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이것이 바로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돼야 하는 이유이며, 우리가 끊임없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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