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제주 현장실습생 이민호군 죽음 이후 유족은 진상규명·재발방지를 요구했다. 하지만 정부와 교육청은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올해 2월 교육부가 학습중심 현장실습을 내세워 선도기업을 선정한다고 밝혔지만 선정·운영 과정에서의 문제점이 적지 않다. 현장실습의 또 다른 형태에 불과한 도제학교가 대안으로 떠오르는 실정이다. 11월19일은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을 하던 고 이민호군이 떠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현장실습대응회의>가 이민호군 1주기를 추모하고 남은 과제를 되짚는 차원에서 연속기고를 보내왔다. 5차례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김용기 충남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공동대표

충청남도교육청은 지난 6월27일 오전 이른바 ‘선도기업 선정위원회’ 1차 협의회를 개최했다. 미리 공지된 주요안건은 △2018 학습중심 선도기업 선정위 운영계획 승인 △선도기업 선정 및 승인이었다. 당일 선도기업 승인 신청을 한 곳은 6개 학교, 6개 업체였다.

선도기업 선정위원으로 충남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소속 공인노무사가 위촉(물론 도교육청은 네트워크 소속 노무사가 아닌 그냥 ‘공인노무사’를 위촉한 것이었다)됐을 때 내부에서 여러 의견들이 있었다. 네트워크의 공식입장이 현장실습 중단이니만큼 선정위 참여는 자칫 잘못된 정책에 명분만 실어 주는 꼴이 될 것이라는 비판적 의견도 있었으나, 현재 진행하려는 학습중심 현장실습과 선도기업 선정·운영 현황을 파악해 보고 비판적 개입 지점을 만들어 내는 것도 의미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런데 이렇게 참여하게 된 선정위 1차 협의회는 학습중심 현장실습의 실체와 향후 전개될 모습이 어떨지 생생하게 보여 준 의미 있는(?) 시간이 됐다.

도교육청이 제출한 '선도기업 선정위 운영계획 초안'에 따르면 선정위 역할은 단순히 선도기업을 심의·승인하는 것만이 아니라 선도기업 선정기준 마련, 선도기업 선정을 위한 사전계획 수립, 실사를 포함한 심사·모니터링과 지도점검도 포함돼 있었다. 이는 논리상 선도기업의 공정하고 객관적인 선정이 ‘학습중심 현장실습’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사항이기에 당연하게도 선정위가 가져야 할 정당한 역할규정이었다. 그런데 도교육청은 선정위 운영계획을 주요안건으로 다룰 의지가 없었으며, 제출된 선도기업 선정기업에 대한 사전 실사도 전혀 진행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선정위의 정확한 자기역할 규정도 없이 실사도 진행되지 않은 기업을 선도기업으로 승인할지를 심사한다는 것은 정당하지도 않으며 매우 위험한 일이므로 이번 회의에서는 현장실습 선도기업 선정위 운영계획만 논의·확정하고 선정 심사는 현장실사 이후 재차 회의를 소집해 진행해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런데 일부 위원들이 업체 실사는 사실상 불가능하며, 현장실습이 학교에서는 시급하게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어 운영계획안에서 해당 항목(선정기준 마련, 사전 실사 등)을 삭제하고, 1차 회의에서 선도기업을 선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교육청은 이를 수용했다. 이로써 충남도교육청 학습중심 선도기업 선정위는 자신들에게 부여된 중차대한 역할을 스스로 포기하고, 신청한 선도기업만을 추후 승인하는 절차적·요식적 위원회로 전락하고 만다.

선도기업 선정위원으로 참가한 한 특성화고 교장은 “이것저것 너무 까다롭게 따지면 학생들을 보낼 업체가 없다. 사고 나면 어쩔 수 없는 일인 거고”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것은 단순한 실언으로 볼 수가 없다. (일부) 특성화고가 현장실습과 학생들을 평소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적나라한 단면을 보여 준 에피소드다.

선도기업 선정기준에 대한 세부항목도 부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학습중심 현장실습이라는 표현이 무색하게도 ‘전공 불일치’로 표시된 배점표에도 높은 점수가 주어져 있었으며, ‘사내 복지 없음’이라고 표시돼 있는데도 배점이 9점이 부여되는 등 객관성을 완전 상실한 배점기준표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변경할 의향이 없느냐는 질문에 “일일이 따지면 선정할 업체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리고 학습중심의 핵심인 업체의 학습프로그램이 심사에서 빠져 있다는 점 또한 문제였다. 양이 많아서 제출이 불가능하다는 변명이 참으로 궁색했다.

선정위원 선정이 객관성을 상실했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의 학교에서 신청한 선도기업 선정에 해당 학교 교장이 선정위원으로 참가하고 있음은 물론, 지나치게 사업주 중심으로 위원들이 선정됐다.

네트워크는 이런 상황에 대해 한 번의 기자회견과 두 번의 언론인터뷰를 통해 문제제기를 했고, 도교육감의 지시로 두 차례에 걸친 관련부서와의 협의회를 했다. 그러나 관련부서는 일부 배점기준 변경과 제척기준 등만을 수용했을 뿐 학교현장 요구라는 이유와 정부 방침에 따라야 한다는 이유로 대부분 요청들을 수용하지 않았다.

네트워크는 도교육청에 △현장실습 운영계획의 재수립 △학부모단체와 학생 당사자, 그리고 지역사회 노동·인권단체가 포함된 선정위로 재구성 △지역사회의 노동·인권·학부모 교육단체가 포함된 선도기업 실사단의 구성 △현장실습 참가 학생들에 대한 심층면접 설문조사 실시를 제안했다. 이를 위해 두 차례에 걸쳐 도교육감 면담을 요청했으나 뚜렷한 이유 없이 현재까지 면담은 성사되지 않고 있으며, 선정위원으로 참가했던 네트워크 소속 노무사는 위원직을 사임했다.

충남도교육청은 매월 1회 선정위를 개최해 선도기업을 승인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선정위를 개최했다. 다른 지역 선도기업 선정위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 11월19일 제주도에서 특성화고 현장실습 도중 사망한 이민호군의 1주기가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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