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충방제업체 세스코가 노조설립을 막기 위해 문건을 작성해 체계적으로 대응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사측이 지난해 2월 노조설립 주동자에게 퇴직하면 위로금 2억원가량을 지급하는 내용의 협상안을 문건으로 작성했고, 실제로 이를 해당 노동자에게 제안했다는 주장이다.

11일 민주연합노조 세스코지부(지부장 고영민)는 위로금 2억5천만원에서 3억원을 지급하는 방안이 담긴 문건을 공개하고 “회사 내부 자료”라고 밝혔다. 사측은 “노조측이 제시한 자료는 처음 보는 것이고 회사는 노조와 관련해 어떤 부당행위도 하지 않았다”며 “해당 노동자가 회사를 비방하며 거액을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세스코 노조설립추진위원회는 지난해 2월 노조설립 당시 “회사가 노조설립을 추진하는 노동자에게 노조설립 추진 중단을 제안하며 2억원을 주겠다고 하는 등 각종 회유작업을 했다”고 밝혔는데, 회사는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한 바 있다.

노조가 1년9개월 만에 회사 문건을 공개하면서 부당노동행위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지 관심이 모아진다. 노조는 지난달 세스코를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고용노동부에 고소했다.

노조 "2억원 위로금 협상안에 대응 시나리오까지"

<매일노동뉴스>가 이날 입수한 문건 제목은 ‘K.Y.M 협상안’이다. 노조는 ‘K.Y.M’을 고영민 지부장 이니셜로 판단했다. 지난해 2월16일 작성한 것으로 표기된 문건 표에는 위로금 2억5천만원~3억원을 지급하는 방안이 A안·B안·C안으로 나뉘어 있었다.

A안은 "퇴직 후 10년간 매월 고문료 지급", B안은 "퇴직 후 1년간 매월 고문료 지급+1년 경과시 잔액 일시불로 지급", C안은 "퇴직 후 일시불로 지급"이다. "2월16~17일 진해, 2월20~24일 서울(교육) 면담을 통해 분위기 파악 후 협상안 제시"라는 내용도 있다.

같은 문건 또 다른 표의 A안에는 "위로금(총액) 2억5천만원 : 10년간 월 2백1십만원"과 "위로금(총액) 3억원 : 10년간 월 2백50만원"이라고 명시됐다. B안에는 "위로금(총액) 2억5천만원 : 최초 1년간 월 2백만원(총 2천4백만)+1년 경과 후 일시불 잔액(2억2천6백만)" 등이 적시됐다.

노조는 이와 함께 ‘이슈대응방안’이라는 제목의 문건도 공개했다. 고영민 지부장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는 해당 문건 ‘세부안’ 항목에서는 "본사 근무" "숙소제공" "지역본부장 처우" 같은 내용이 눈에 띈다. 오른쪽 'K(고영민 지부장) 예상반응' 항목에는 "초반 무반응, 스트레스, NJ(노조)·언론이용·문자 발송을 비롯한 움직임, 돈 얘기 한 적 없다, 적다, 거부, 수용"이라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대응방안 항목에는 "모니터링, 원칙적 대응일관, 형사소송 추진, 고문위촉 제안(추가 카드), 징계명분 추가 확보, 인사발령 거부로 징계 절차, 징계에 따른 해고, 성과 관리"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노조 "찾아다니며 회유" vs 사측 "요청에 따라 퇴직면담"

노조는 회사가 문건에 적힌 방안을 고영민 지부장에게 제안했다고 주장했다. 고영민 지부장은 “노조설립을 추진하던 지난해 2월 서울에서 근무하던 인사팀 직원이 보름 정도 우리집이 있는 창원에 상주하면서 나를 따라다니며 노조설립 추진을 중단하라고 회유했다”며 “또 다른 인사팀 관계자는 나를 호텔로 데려가 나가지도 못하게 하고 부사장과 함께 새벽까지 ‘노조 또 해야겠냐, 사장이 노조를 싫어하기 때문에 안 된다’는 말로 나를 설득했다”고 말했다.

노조는 이와 관련한 증거라며 지난해 2월 고영민 지부장과 인사팀 직원들이 주고받은 전화 내역과 문자를 공개했다. 노조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같은해 2월14일 인사팀 직원은 고영민 지부장에게 "시간과 장소 정해서 알려 주시면 내일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라거나 "시간 되실 때 연락 좀 주세요"라는 내용의 문자를 보냈다.

노조가 공개한 녹취록을 보면 지난해 2월 인사팀 직원은 고영민 지부장에게 "원하는 게 뭔가" "나를 창구로 생각하고 이야기하면 사장님께 보고하겠다" 같은 말을 했다. 고영민 지부장은 "인사팀 직원이 나를 쫓아다니며 노조설립을 회유하며 한 말"이라고 설명했다.

세스코 관계자는 이에 대해 “고영민 지부장이 회사를 퇴직하겠다며 퇴직면담을 요구했다”며 “당시 고영민 지부장 퇴직면담 요청에 따라 인사담당 직원이 퇴직면담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고영민 지부장은 퇴직면담 요구와 동시에 최저임금과 영업비밀 보호각서 강요 등을 주장하고 회사를 비방하며 거액을 요구했다”며 “노조측이 제시한 자료는 회사가 처음 볼 뿐 아니라 당시 인사담당 직원도 지난해 퇴사해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노조는 지난달 25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서울동부고용노동지청에 회사를 고소했다. 서울동부지청 관계자는 “진정인 출석을 요구한 상태”라며 “곧 조사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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