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비 요란스레 쏟아졌다. 우수수 낙엽 졌다. 서울 광화문광장에선 사물놀이패가 무대에 올라 영남농악을 두들겼다. 관계자 몇몇이 흥을 돋우느라 그 앞에서 비 맞아 가며 덩실댔다. 팔도 농촌 특산물 천막에는 낙엽만 다닥다닥 붙었다. 가을, 광장엔 이런저런 축제가 많았으니 이상할 일도 아니었다. 비가 온대도 약속은 지켜야 했다. 청와대 앞길엔 약속을 지켜라, 구호 소리가 요란스러웠다. 일회용 우비에 조끼차림 사람들이 줄줄이 서 단풍처럼 붉었다. 앉지를 못해 가만 선 채로 낙엽을 맞았다. 등에 새긴 구호를 종종 외쳤고, 반주 없이 노래했다. 그 길엔 오래도록 농성 천막이 빼곡했으니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비 온다고 집회 약속을 어길 수는 없었다. 내일 광장에서 다시 만나기를 약속하고 해산했다. 돌아갈 곳 없는 해직자들이 남아 선전물을 들고 기약 없는 길가 시위를 이어 갔다. 은행잎 다닥다닥 붙어 온통 노랗던 비닐 움막에 들어 젖은 양말을 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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