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과잉과 노사분규로 빈사상태에 빠진 화섬업계가 대폭적인 인력감축, 임금동결, 생산설비의 해외이전 등 뼈를 깎는 구조조정에 나서기로 했다.

효성 고합 태광산업 등 화섬업계는 현재 1만6000명 규모의 고용인원을 5년 내에 1만명 수준으로 줄이고 평균 3700만원 수준인 생산직 근로자의 임금도 일정기간 동결한다는 것이다. 생산설비의 폐기, 교체 및 해외이전을 통해 생산을 줄이고 고용감축 효과도 이루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노조가 이 같은 구조조정 노력에 얼마나 협조하느냐는 것이다. 이미 지난달 12일부터 울산에서는 수천명의 노조원이 공장을 점거한 채 구조조정 중단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고 있다. 업계에서는 공멸의 위기에 빠져 있는데 노조가 대안 없는 파업투쟁을 벌여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고 우려한다. 반면 노조 측은 근로자의 희생을 강요하는구조조정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워크아웃 등 대부분 부실기업인화섬업계에서 노조 측은 아직도 대폭적인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인력감축, 설비이전 등에 반대하고 있다.

최근에 국내경기는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는데 노사관계가 악화되고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노사분규, 파업 등은 화섬업계에 그치는것이 아니다. 부실기업, 부실금융기관, 정부투자기관 등에서 노사분규로구조조정이 지연되고 있다. 경기회복이 지연되며 경쟁력 약
화 등 경제적손실이 적지 않다. 외국인투자 유치도 어렵다.

우리 경제의 시급한 과제가 구조조정이지만 이것은 노·사·정의 합의없이는 어렵다. 외국인투자자들에게 전투적(militant) 노조로 비춰지는극렬한 노조활동이나 불투명한 경영관행을 벗어나지 못하는 기업, 모두문제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정부 역시 노사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진지한노력이 부족하다. 이같이 중대한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도 고작 양비론(兩非論) 아니면 양시론(兩是論)에 그친다.

우리의 노사갈등이 심화된 지도 이제 상당기간이 지났다. 노와 사 그리고 정부가 그만큼 갈등을 겪었으면 이제 어느 정도 학습효과를 얻을 만하지 않을까. 아직도 노사관계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더 많은 희생과 더 많은 시간이 요구되는 것인가. 우리 경제는 침체라고 하지만 그래도 4% 정도의 성장률을 유지하고 실업률도 4%를 밑돌고 있다. 경상수지는 흑자이며 외환보유액도 940억달러에 이른다. 경제성장 잠재력이 남아 있는 한 노·사·정의 갈등은 계속될지 모른다. 노·사·정 간의 이전투구(泥田鬪拘)가 갈 데까지 가고 경제는 황폐할 대로 황폐해서 더 이상 갈등이 계속될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한 후에 비로소 노·사·정 합의가 이뤄질 수도 있다. 장기적으로 세상만사는 모두 합리적인 균형점을 찾게 된다면,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이것도 노사갈등을 해소하는하나의 해법이라고 하겠다.

실제로 근래에 고용 및 노동시장 여건을 크게 개선한 일부 선진국들도상당기간 극심한 실업문제로 고민한 끝에 과감한 노동시장의 구조개혁을이룩할 수 있었다. 유럽연합(EU)은 80년대 이후 높은 실업률로 인해 경제의 활력을 잃었다. 그 원인은 무엇보다도 노동시장에 대한 광범위한 규제 때문이라고 하겠다. 즉 노동시간, 임금협상, 일용고용, 해고 등에대한 과도한 정부 규제와 지나치게 관대한 실업보험제도 등이 실업을 조장해왔다고 하겠다. 정부와 노조가 근로자의 권익을 지나치게 보호한 나머지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대규모 실업을 양산한 것이다. 기업의욕뿐 아니라 노동의욕을 떨어뜨림으로써 성장잠재력을 고갈시키고 경제를 황폐하게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태가 한없이 지속될 수는 없다. 아일랜드 덴마크 등 일부 국가에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동시장 개혁이 이루어졌다. 물론 이러한 개혁은 노·사·정의 합의 아래 가능하게된 것이다. 노사는 임금삭감, 실업보험 축소, 노동시장 여건개선 등에 합의했다. 정부도 노동시장의 과도한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또한 임금삭감을 당한 근로자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소득세도 인하했다. 그럼으로써 노동시장의 유연성
을 높이고 고용을 확대했다. 정부도 노사관계개선을 뒷받침한 것이다. 그 결과 아일랜드는 1987년 17.5%까지 올랐던실업률이 최근에는 4.2%로 크게 안정됐다. 덴마크도 80년대 중반에 11.0%이던 실업률이 2.8%로 대폭 낮아졌다. 그러나 유럽연합의 평균 실업률은 아직도 8.2%에 머물러 있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노사관계가 본격적으로 개선되기 위해서는 노동시장 개혁이 반드시 이뤄져야 하며 이를 위해서 노·사·정의 합의가 절대로 필요하다. 특히 노사관계 개선을 위한 정부의 분명하고 적극적인 노력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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