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력 철강회사인 세아그룹 계열사 세아창원특수강이 사내하청 노동자에게 작업지시를 내리고 근무태도를 관리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확인됐다. 세아창원특수강은 해당 업체 하청노동자 보직변경 같은 인사에도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 고용노동부는 조만간 불법파견이 실재했는지 여부를 조사한다.

◇"불법파견 수사 의뢰하자 부당전보"=<매일노동뉴스>가 5일 세아창원특수강 사내협력업체 A사에서 지난해 6월부터 일하고 있는 박아무개(30)씨로부터 원청의 불법파견 정황이 담긴 수십 개의 녹취파일·업무일지·문자메시지·사진을 입수했다. 박씨는 지난달 8일부로 교정파트에서 롤링그라인더파트로 보직이 변경됐다. 입사 후 네 번째 보직변경이다.

그는 "회사를 상대로 노동부에 불법파견 근로감독을 의뢰하고, 산업재해 신청으로 근로감독관들이 회사를 드나들게 되자 부당하게 보직이 변경됐다"고 주장했다.

노동부는 지난달 5일 A사에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에 따른 시정지시서를 보냈다. 노동부는 "근로자가 추락할 위험이 있는 대형압연공장 C라인에 적치된 팰릿 줄걸이 작업장소에 작업발판을 설치하라"고 지시했다. 박씨는 9월28일 무렵 공장 안 작업룸으로 나 있는 계단을 오르다 정강이 부위를 다쳐 산재를 승인받았다. 같은날부터 21일 동안 산재요양을 다녀왔다. 부상을 당한 뒤 노동부에 현장 점검을 요청했는데, 시정지시가 내려진 것이다. 그는 올해 8월28일 노동부에 불법파견 수사를 의뢰하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원청 근태관리·작업지시 정황 녹취파일 공개=박씨가 노동부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원청이 하청노동자에 대한 작업지시와 근태관리를 한 것으로 판단된다. 지난해 11월20일자 녹음파일을 들어보면 세아창원특수강 소속 B씨는 박씨가 일하는 공장을 찾아 "내가 지금 너를 보고 있는 거다" "바쁜 거면 바쁜 거 다 해 놓고 자빠져 놀던가" 같은 말을 했다.

전날 박씨가 작업 중 화장실에 간 뒤 오래 있었던 점을 문제 삼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다음달 5일 원청 소속 C씨도 박씨에게 “8.1 깎아야 되고, 많이는 필요 없고, 10개만 깍아라” “6.1 이지? 이거 되겠나, 이거 어느 정도 튀어 나왔나. 이거 봐라”라고 했다. 6.1과 8.1은 현장에서 깎아 쓰는 쇠재질 자재 이름이다. 원청의 직접적인 작업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와 유사한 내용을 담은 녹취파일 수십 개가 노동부에 제출됐다. 박씨와 A사 대표 D씨의 대화가 담긴 올해 3월2일자 녹음파일에는 원청이 하청노동자 인사에 개입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박씨가 D대표에게 “롤링그라인더 계속하면 안 돼요?”라고 묻자 D씨는 "직영에서 그런 요청이 있어 가지고"라고 답했다.

◇원·하청 "개입 없이 독립운영" 주장=부서 차원의 작업지시 정황이 담긴 문자메시지도 있다. A사 생산관리팀 E팀장은 6월27일 원청 생산관리팀에서 받은 문자메시지를 직원들에게 전달했다. 문자메시지는 “하기대상 재교정 발생 대상으로 우선진행될 수 있도록 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원청이 하청업체에 특정 생산품을 지목해 재작업을 하도록 지시한 것이다. 9월4일자 녹취파일에서 D대표는 박씨에게 근로감독 청원 취하를 요구하며 "바뀐 모습을 보고 F파트장한테 가서 얘기하겠다"고 말했다. F파트장은 세아창원특수강 선재공장장이다. 근로감독 청원을 취소하면 원청에 말해 원하는 보직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 주겠다는 얘기다.

원청이 개발해 하청노동자 작업관리에 쓴 것으로 보이는 전산프로그램(세아베스틸 창원특수강 통합정보관리시스템)도 눈길을 끈다. 박씨는 “입사 후 원청 프로그램에 제 아이디로 접속해 작업량과 업무내용 등을 기입했는데 9월12일 프로그램이 변경되면서 아이디가 삭제됐다”며 “이후 화면에 전에 없던 소속사 이름이 표시되는 것을 볼 때 회사측이 불법파견 증거를 지우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D대표는 이와 관련해 "박씨가 보직변경을 원하는 것 같아 고려해 보겠다는 취지로 말했고 원청 관리자를 언급하지 않았다"며 "직원 채용에서부터 모든 운영이 독립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반박했다.

노동부는 조만간 세아창원특수강과 A사의 불법파견 여부를 점검하는 근로감독에 나설 계획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세아창원특수강은 정기근로감독 대상이었는데 근로감독 청원으로 A사도 대상에 포함됐다”며 “현장 상황을 종합적으로 점검해 판단할 문제이기 때문에 현시점에선 박씨가 제출한 녹취파일 등이 불법파견 증거가 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밝히기 어렵다”고 말했다.

세아창원특수강 관계자는 "본래 예정됐던 근로감독을 받는 것이며 A사에 작업지시 같은 개입은 일체 없었다"며 "박씨 주장은 사실 무근"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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