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병욱 변호사(민변 노동위원장)

전국의 산마다 단풍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가을이 점점 깊어 가고 있다. 점점 깊어 가다 못해 이젠 춥다. 입에선 김이 나온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도 여전히 고 박선욱 간호사 사망은 진상규명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올해 설을 앞두고 직장 괴롭힘으로 사망한 고 박선욱 간호사에 대한 서울아산병원의 사과는 8개월을 넘기고 있는 지금에도 없다. 서울아산병원 앞에서는 진상규명과 사과를 바라는 유가족들의 1인 시위가 주말에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한여름의 폭염에도 1인 시위는 계속됐다. 그동안 정부의 직장 괴롭힘 근절대책 발표도 있었고 고용노동부에 대한 고발도 있었으며 국정감사도 있었지만 여전히 해결될 기미가 없다.

얼마 전에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직장 괴롭힘'을 금지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통과됐으나 본회의를 거쳐 법률로 공포될지는 미지수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발목이 잡혔기 때문이다.

개정안은 사용자나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정서적 고통을 주거나 업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금지하는 규정을 담았다. 또 개정안은 직장 괴롭힘 발생시 누구든지 사용자에게 신고할 수 있고, 사용자는 그 사실을 인지한 경우 조사를 실시하거나 가해자와 피해 근로자를 분리하는 등 적절한 조처를 하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개정안은 피해자가 신고 후 해고 등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하는 불이익 처우 금지의무도 신설했다.

겉으로 보면 직장 괴롭힘 방지와 근절을 위해 정부 대책이나 국회의 입법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변하는 것이 없다.

근로감독관 집무규정(산업안전보건)은 9조4호에서 “특별감독은 국장 또는 지방고용노동청장이 대형사고 발생 또는 중대재해 다발 사업장 등에 대해 필요하다고 판단해 실시하는 감독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의 특별근로감독이 가능한데도 고용노동청은 어떠한 감독도 하지 않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43조2항에는 “고용노동부 장관은 근로자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사업주에게 특정 근로자에 대한 임시건강진단의 실시나 그 밖에 필요한 조치를 명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직장 괴롭힘이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연결돼 있어서 노동부 장관이 서울아산병원에 임시건강진단명령도 충분히 내릴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대책이나 법률이 만들어져도 그것을 실행할 주체들의 의지가 없다면 결국 한낱 보여 주기나 포퓰리즘에 불과하다.

겨울이 오고 있다. 고 박선욱 간호사의 1주기도 다가오고 있다. 노동부는 더 늦기 전에 특별근로감독과 임시건강진단명령을 실시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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