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tvN 드라마 <혼술남녀> 조연출로 일하다 부당한 드라마 제작환경에 문제를 제기하며 목숨을 끊은 고 이한빛 PD. 그의 2주기 추모제를 앞두고 아버지 이용관(62·사진)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에게 심정을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추모제에서 발언할 추모사라며 종이를 내밀었다. “여기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거의 담겨 있어요.” 언젠가 한 행사에서 그가 “감정 처리를 잘 못할 것 같아 종이에 써 온 것을 읽겠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고 이한빛 PD의 2주기 추모제가 열린 지난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빛센터에서 이 PD의 아버지 이용관 한빛센터 이사장을 만났다. 담담한 표정과 목소리였지만 눈시울이 빨갰다. 목소리엔 물기가 섞여 있었다. 인터뷰가 깊어지면서 아들 이야기를 하는 대목에선 "아깝다. 너무 아깝다"는 말을 몇 차례 반복했다.

고 이한빛 PD는 과도한 노동과 비정규직 스태프 해고 문제로 괴로워하다 2016년 10월26일 목숨을 끊었다. 입사 9개월 만의 일이었다. 당시 만 27세였던 고 이한빛 PD가 남긴 유서에는 “하루에 20시간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두세 시간 재운 뒤 다시 현장으로 노동자를 불러내고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 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 떠밀고 제가 가장 경멸하는 삶이기에 더 이어 가긴 어려웠어요”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짧은 인생, 평생 약자에게 신경 쓴 아들”

이용관 이사장은 고 이한빛 PD를 “짧은 인생이지만 평생을 약자와 비정규직 문제에 신경 쓰다 간 아들”로 기억했다.

“대책위 활동할 때 수많은 분들이 도와줬는데, 그중 용산 참사 유가족나 기륭전자 노동자, 세월호 유가족분들이 있었어요. 한빛이가 용산 참사가 일어났을 때나 기륭전자 노조가 농성할 때 거기서 살고, 또 소외되고 약한 사람들에게 많이 베풀었던 것이 힘이 돼 돌아온 거라 생각해요.”

고 이한빛 PD는 CJ E&M에 입사한 뒤 첫 월급을 세월호 유가족과 KTX 해고승무원 후원금으로 썼다. 숨지기 전 “통장 정리하고 남는 돈이 있으면 부모님이 쓰시되 몇 개 단체에 후원금을 내 달라”는 뜻을 남기기도 했다.

“너무 아까운 아들…. 한빛이는 제 아들이지만 이 땅 어떤 청년보다 소외받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 노력하다가 죽었어요. 살아 있으면 계속 엄청난 일들을 해 나갈 것으로 보였어요. 엄마·아빠가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고 했는데도 공부 열심히 하고 대학에 간 뒤에도 개인의 안위보다 사회 문제에 눈을 떠서 소위 말하는 운동에 참여했죠. 지금 KTX 승무원이 복직된 걸 한빛이가 본다면 정말 좋아할 겁니다.”

이 이사장은 “이제는 가 버리고 없는”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열악한 방송노동 환경 개선에 힘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한빛센터 활동에 매진하는 이유다.

한빛센터는 방송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겠다는 목적으로 올해 1월 설립됐다. 방송노동자를 위한 법률상담·노조결성 지원, 강연·교육·쉼터 제공 같은 역할을 한다. 중학교 국어교사였던 이 이사장은 올해 8월31일 정년퇴임한 뒤부터는 한빛센터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한빛이의 죽음이 방송노동자를 깨어나게 했다”

이 이사장은 방송 노동환경 구조개선에 초점을 맞췄다. 회사나 가해자 처벌은 애초부터 센터의 활동 방향이 아니었다. 이 이사장이 이한빛 PD의 죽음을 ‘사회적 죽음’으로 봤기 때문이다.

“저도 인간입니다. 처음에는 왜 분노가 없었겠어요. 그런데 개인인 가해자한테 화풀이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에요. 개인에 대한 분노로 환원하면 한빛이의 죽음도 결국은 개인적인 죽음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CJ E&M에도 ‘이곳만 특출 나게 나쁜 사람들이 모여서 그런 것이 아니다. 방송 노동환경이 다 문제가 많은 가운데 우리 아들이 죽은 것이다’고 이야기했어요. 난 (한빛이의 죽음이) 사회적 죽음이고, 구조적 문제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가야겠다고 처음부터 생각했어요.”

이 이사장 노력 덕분일까. 고 이한빛 PD의 죽음 이후 당사자를 포함해 어떤 단체에서도 문제를 제기하기 쉽지 않았던 방송 제작현장의 현실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크고 작은 변화들도 일어나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정부 5개 부처는 '방송프로그램 외주제작시장 불공정 관행 개선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올해 초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방송업이 노동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됐다. 올해 9월에는 고용노동부가 방송 스태프의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근로감독 결과를 내놓았고, 주요 대형 드라마 제작사에서는 드라마 제작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졌다.

이 이사장은 “한빛이의 죽음이 방송노동자를 깨어나게 했다”고 밝혔다. 그는 “방송 노동현장의 변화가 이렇게 빨리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특히 노동시간 특례업종에서 방송업을 빼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한빛이의 죽음 이후 꿈틀거리는 힘과 촛불혁명을 일으키는 힘이 모아져서 예상보다 빠르게 이뤄진 것 같다”고 말했다. 힘을 실어 준 방송노동자와 시민들에게도 감사인사를 건넸다

그가 생각하는 과제는 무엇일까. 그는 여전히 깨지지 않는 장시간 노동 관행,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야기하는 턴키계약, 스타급 작가·배우에게만 과도하게 쏠리는 제작비 지급 양극화 현상 문제 해결을 언급했다. 센터는 계속 적자 운영을 하고 있지만 후원금이 모이고 있어서 힘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아들이 꿈꾸던 세상을 위해”

당연하지만 이 이사장과 유가족들에게 고 이한빛 PD의 빈 자리는 크다. 이 이사장은 “한빛센터 일에 바빠지니 개인적인 슬픔에 젖어 있는 시간이 조금 덜한 것 같다”면서도 “어디 가서 마음 놓고 울 곳도 없고 학교 퇴임 이전엔 매일 슬픈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일 수도 없어서 그냥 꿋꿋이 살았다”고 털어놓았다.

이 이사장에게 마음 아픈 일은 또 있었다. “한빛이 엄마가 너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일”이었다. 그는 “한빛이 엄마는 매일매일 아파하고 눈물을 흘렸다”며 “사람도 거의 안 만나고 말문을 닫고 살았다”고 전했다.

요새 아내는 조금씩 힘을 찾아가고 있다고 한다. 아내가 <오마이뉴스>가 연 독후감대회에서 며칠 전 우수상을 받은 일은 어둠 속 빛이 됐다. 이 이사장에 따르면 아내의 독후감엔 ‘한빛이의 죽음 때문에 지우고 살았던 행복, 희망이란 단어를 학생들을 생각하면서 다시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김씨의 독후감 제목은 ‘하늘나라로 떠난 아들이 꿈꾸던 세상을 위해’였다.

“한빛이 엄마가 글을 통해 세상을 향해 첫 번째 문을 열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났어요. ‘이제 가느다란 희망이라도 잡겠다’는 독후감 내용처럼 저도 남은 인생을 한빛이의 뜻을 이어 가는 일에 바치며 희망을 잡으려 합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