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곧 넘어가는 누렇고 붉은빛이 여의도 어느 국책은행 외벽에 맺혀 빛났다. 거기 노란 낙엽 더미 위로 시가 흘렀다. 가을에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시의적절한 것이었다. 저마다 노랗고 빨간 나무 아래 서성이던 노동자가 고개 들어 시를 훑는다. 그의 등에도 얼핏 해가 들어 빛났다. 거기 구호가 흘렀다. 진짜 사장이 직접 고용하라, 그건 노동존중 사회의 핵심 약속 중 하나였으니 이 또한 시의적절했다. 간결한 말에 은유, 직유법 따위가 녹아들고 운율이 곧잘 실리니 구호는 시를 닮았다. 입에 달고 사니 배고픈 시인이 거리에 많았다. 우리는 엘지유플러스 노동자다, 이 말이 여태 은유에 머물러 시는 실은 가혹했다. 사랑하던 것들도 미워지는 가을이라고, 길에서 시 낭송회 하던 사람들이 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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