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태일재단 이사장 이수호

이제는 페이스북 절친이 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올린 글을 읽으며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진보정당에서 출발해 어린시절과 중고교 학창시절을 보낸 지역구에서 10년 이상을 준비하고 끈질긴 도전을 통해 비로소 국회의원이 된 그였기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20대 국회의원이 돼 전반기는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하며 삼성·현대 등 재벌들의 부정과 비리를 비롯한 불법행위를 들추며 싸우다가 미운털이 박혀 후반기에는 교육위원회로 밀렸답니다.

교육위원회로 오면서 평소 문제의식을 가졌던 사립학교 비리와 문제점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던 중 사립유치원 비리 문제가 터진 것입니다. 처음에는 토론회 등을 통해 대안 중심의 해결책을 모색해 보려 했으나, 사립유치원단체의 방해로 무산되면서 불똥이 국정감사장으로 튀게 된 것입니다. 박용진 의원이 적발한 감사 자료를 공개하겠다고 나서자 비리를 저지른 사립유치원과 한국유치원총연합회가 들고일어나 소송으로 맞서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이에 이르자 박 의원도 페이스북을 통해 소신을 밝히며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됐습니다.

“소송 위협에 굴하지 않고 유치원 비리 해결 끝을 보겠습니다! 어제 한 방송에서 토론자로 함께 출연한 서정욱 변호사로부터 한국유치원총연합회가 국내 3대 로펌인 법무법인 광장을 통해 저에 대한 민사소송을 제기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습니다. 처음 비리유치원 명단 공개를 결심할 때부터 어느 정도 각오는 했지만 막상 닥쳐오니 걱정도 되고, 순간 머리가 멍해졌습니다.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떡값 검사 실명을 폭로했을 때가 떠올랐습니다. 당시에도 온 국민이 노회찬 의원을 지지하고 성원했지만 결과는 유죄, 의원직 상실로 이어졌습니다. 그가 힘들어하던 모든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며 가슴이 아팠는데, 지금은 내가 그런 상황에 처했구나 하는 생각에 약간 서글퍼졌습니다. 저는 한유총이 어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학부모들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말할 때까지만 해도 반성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앞에서는 고개 숙이고 뒤로는 소송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너무나 큰 배신감이 들었습니다. 이는 국민의 기대와 신뢰를 명백히 배신한 것입니다. 국회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지적하고 온 국민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유치원 비리 문제를 해결할 생각은커녕 소송으로 무마해 보려는 한유총의 태도는 누가 봐도 비겁합니다. 유치원은 아이들에게 첫 학교이자, 처음 만나는 사회입니다. 모든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랄 수 있는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어른들의 의무이자 책임입니다. 또한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고, 세금이 쓰인 곳에는 당연히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혜택과 권한은 누리고, 책임은 지지 않겠다는 한유총의 태도는 그 누구에게도 절대 납득받지 못할 것입니다.”

‘유치원은 아이들에게 첫 학교이자, 처음 만나는 사회입니다. 모든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랄 수 있는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어른들의 의무이자 책임입니다’라는 그의 유치원교육 관점은 어느 교육전문가 못지않게 전문적입니다. 대체로 국회의원들은 모든 사안을 정치적 입장에서 바라보고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판단하기에 늘 적당히 타협하기 일쑤였습니다. 이번 유치원 비리건만 하더라도 동료 의원들의 우려와 지역위원회의 걱정이 많았다는 것만으로도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선거에서의 표와 영향력 앞에서 어느 선출직이 당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어느 집단에서 집단이기주의나 부정비리가 활개쳐도 정치권이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사례를 우리는 많이 봐 왔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포기하며 살아왔습니다. 그 잘못된 정치의 검은 카르텔을 박용진 의원이 깨고 나선 것입니다. 아직은 힘이 없어서 재벌들에게 맞서다가 정무위에서 쫓겨나고, 사립유치원과 맞서다가 소송에 걸려 교육위는 말할 것도 없고 국회에서 쫓겨나는 일이 있더라도 포기할 수 없다는 그의 결의가 가상합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한평생을 전문직 교육노동자로 살아오면서 교육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부정과 비리를 해결하고 예방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책임 있는 간부로 잘난 척하면서 살아온 자신을 되돌아보면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입니다. 노동운동의 지도단위인 전교조나 민주노총이 제 역할을 제대로만 했더라도 이런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청출어람이란 말이 그렇게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 가을날, 용진아 부디 굳세고 굳세어라.

전태일재단 이사장 (president1109@hanmail.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