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정한 산업안전보건법이 18일 발효했다. 감정노동자 보호법으로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핵심 내용은 노동자가 위협에서 벗어날 권리, 전화 끊을 권리를 요구하면 사업주는 이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에서 규정한 감정노동자는 고객을 대면하거나 정보통신망으로 상대하며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다. 고객이 무릎을 꿇리거나 때리는 영상이 공개되면서 공분을 샀을 정도로 빈번한 폭언과 폭행에 시달린다. 법이 시행됐으니 감정노동자들이 갑질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게 역할을 하길 기대하지만 기대만큼 사각지대가 너무 넓다는 목소리도 높다. 노조조차 만들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권리를 요구할 수 있겠느냐는 걱정, 고용한 사업주와 일하는 곳이 다른 노동자들을 보호할 방안이 없다는 비판은 풀어야 할 숙제다. 감정노동 당사자들과 전문가들에게 감정노동자 보호법 시행 의미를 들었다.


사업주 처벌조항만으로 감정노동자 보호할 수 없다
권미경 연세의료원노조 위원장

권미경 연세의료원노조 위원장

병원노동자도 감정노동의 피해를 심각하게 겪고 있다. 그래서 연세의료원노조는 2013년부터 감정노동 코칭센터를 만들었다. 감정노동 피해를 입은 조합원들에게 치유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다. 하지만 치유프로그램은 이미 폭언과 폭행의 피해를 입은 노동자에게 실시하는 사후적 조치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감정노동자 보호 조치는 사전예방이 가장 중요하다.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이제라도 시행하게 된 것을 환영한다.

그런데 현장에서 실효성 있게 작동할지 의문이다. 폭언이나 폭행 피해를 당한 노동자가 이 사실을 사업주에게 알리고 보호받는 프로세스가 법령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보호조치를 소홀히 한 사업주에 대한 처벌만 있을 뿐 구체적인 예방조치는 담고 있지 않다. 감정노동자 보호는 우리 모두가 나서야 가능한 일이다. 사업주 처벌조항이 만들어졌다고 감정노동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가 노동존중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10년 만에 맺은 결실, 정부 점검 강화 필요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18일 시행됐다. 2007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감정노동 해결을 위한 첫 간담회가 열린 이후 노동계·학계·시민단체·언론 등에서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면서 제도화됐다. 법안 내용은 노동계에서 요구한 것보다 미흡한 건 사실이지만 감정노동 논의 10년 만에 맺은 첫 결실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앞으로 현장에서 법이 잘 작동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법에 따르면 사업주는 고객의 폭언 등으로 고객응대 노동자에게 건강장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현저한 우려가 있는 경우 업무를 중단시키고 쉴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서는 노조가 적극적으로 사업주가 법에 따라 감정노동자들을 보호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노조가 없는 사업장은 정부가 나서야 한다. 고용노동부가 방학 기간 아르바이트 다수 고용 사업장 근로감독을 하는 것처럼, 적어도 법 시행 3년까지는 감정노동자 다수 고용 사업장을 대상으로 실태조사와 모니터링을 통해 감정노동자 보호법 이행 여부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서비스산업이 워낙 방대하다 보니 정부 실태조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사업장도 많을 것이다.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시민들이 곳곳에서 노동자 보호조치가 잘 이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제보할 수 있도록 ‘시민모니터링단’을 운영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직장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산업안전보건법·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이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감정노동자 보호방안을 산업안전보건법뿐만 아니라 근로기준법에 포함해 구속력을 높여야 한다.


콜센터 상담원 감정노동은 원청이 직접 책임져야
이정화 희망연대노조 경기도콜센터지부장

이정화 희망연대노조 경기도콜센터지부장

경기도 120경기도콜센터에서 위탁업체 소속 상담원으로 6년째 일하고 있다. 경기도는 120경기도콜센터 운영을 위탁업체에 맡기고 있다. 상담원들은 도정이나 교통 같은 경기도 내 각종 문의를 전화로 상담한다.

콜센터 상담원으로 일하다 보면 민원인에게 업무범위를 벗어나는 무리한 요구를 받기도 한다.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는 민원인도 있다. 심지어 욕을 하기도 한다. 민원인에게 ‘초등학교만 나왔냐’는 식의 모욕적인 말을 듣는지라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 우는 상담원도 많았다. 하지만 최근까지 120경기도콜센터 위탁업체 상담원들은 욕설을 들으면서도 자발적으로 전화를 끊을 수가 없었다. 상담원들이 관리자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관리자가 메신저를 통해 확인을 해 줘야 전화를 끊거나 처리를 할 수 있었다.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시행되는 10월에야 업체측은 “민원인이 욕설을 하면 상담이 어렵다는 코멘트를 두 번 한 뒤에 그래도 욕설을 하면 다시 전화를 달라는 코멘트를 한 뒤 전화를 끊어도 된다”는 공지를 내렸다.

오늘부터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시행됐다. 상담원 입장에서 환영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법의 취지에 맞게 현장에서 잘 적용되는 것이다. 사측은 실질적인 조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경기도는 콜센터를 민간업체에 위탁해 운영하고 있다. 실질적인 사용주인 경기도는 상담원 처우와 관련해 관리·감독을 한 적이 없다. 경기도가 책임지고 콜센터 상담원의 감정노동을 비롯한 처우개선에 힘써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경기도가 상담원을 직접고용해야 한다. 지난 12일 경기도콜센터 상담원들이 노조를 만들었다. 노조는 상담원들이 제대로 보호를 받는지 계속 지켜보겠다.


감정노동자 보호법 기대보다 걱정이 태산
이성종 서비스연맹 정책실장

이성종 서비스연맹 정책실장

감정노동자를 보호하는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됐지만 현장의 감정노동자들은 기대와 희망보다는 우려와 걱정이 태산이다. 법에 따르면 고객의 폭언 등 문제 상황으로 인해 건강장해가 발생되거나 발생할 현저한 우려가 있을 경우에 업무의 일시적 중단이나 전환 조치를 사업주가 해야 한다. 그런데 그 기준이 명확지 않다. 감정노동자가 피해를 입은 뒤에야 조치를 취하는 소극적인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감정노동자는 위와 같은 상황이 발생되면 업무를 중단하게 해 달라고 사업주에게 조치를 요구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누가 용기를 내서 그 요구를 할 수 있을까. 정당한 조치를 요구하고도 문제가 있는 직원으로 낙인찍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는 원청 사업주 소유 시설이나 매장에서 일하는 하청(협력) 소속 노동자에 대한 보호의무 조치가 없어서 상당수 감정노동자가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시급히 법 개정이 필요하다.

업무상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의 실효성을 확보하려면 일하는 현장에서 법이 온전히 작동이 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기준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는 사업주가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감정노동자 보호법 준수 여건 만드는 게 중요
이정훈 서울시 감정노동종사자권리보호센터 소장

이정훈 서울시 감정노동종사자권리보호센터 소장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18일부터 시행됐다. 현장에서 잘 적용하는 게 필요하다. 준수 여건을 잘 만드는 게 중요하다. 실제 은행법·보험업법 등 5개 금융관계법에는 감정노동자를 보호하는 ‘고객응대 직원에 관한 보호조치 의무’ 조항이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지만 실제 잘 지켜지지 않는다. 제도를 만들어 놓아도 안 지켜지면 허사 아닌가.

감정노동자 보호법에 대해 공통적으로 지적되는 문제점은 원·하청 관계에서 원청 책임이 빠져 있다는 점이다. 콜센터·유통업체 등에서 일하는 간접고용 노동자에 대해 원청 책임을 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원청이 상응하는 의무를 다하면 사회 분위기를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법적 의무가 없어도 선제적으로 원청이 적극적 자세를 취해야 다른 기업들도 그에 따라 보호제도를 만들 수 있다.

서울시는 감정노동종사자권리보호센터를 만들어 선제적으로 모범사용자 역할을 하려고 한다. 소비자들도 감정노동자를 보호하고 배려했으면 한다. 감정노동자 역시 감정노동자 보호법을 인지하고 노동자 권리를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센터는 앞으로 감정노동자 보호 제도화와 사전 예방을 위한 매뉴얼을 보급하고 교육을 하는 데 집중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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